[특파원 칼럼] "가짜뉴스 없다"는 싱가포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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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국민 신뢰도는 최고
자유도는 세계 160위 그쳐
대안 언론도 자기검열 만연"
이태호 싱가포르 특파원
자유도는 세계 160위 그쳐
대안 언론도 자기검열 만연"
이태호 싱가포르 특파원
싱가포르는 국민이 자국의 주류 언론을 가장 신뢰하는 나라 중 한 곳이다. 간판 신문인 스트레이츠타임스는 올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서 국민 77%로부터 ‘신뢰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 40%의 신뢰도 얻지 못한 한국의 주류 신문은 물론 미국의 신뢰도 1위 신문 월스트리트저널(46%)과 2위 뉴욕타임스(44%)조차 넘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처럼 높은 신뢰를 받는 싱가포르의 신문산업은 역설적으로 정부의 강력한 언론 통제에 기반하고 있다. 1974년 만들어진 신문출판법을 보면 주무(현 정보통신부) 장관의 인가를 얻지 못한 편집장이나 오너는 신문을 발행할 수 없다. 라이선스의 유효 기간은 1년에 불과하다. 언제든 장관 ‘재량’으로 영구히 혹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기간 동안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같은 강력한 법적 통제 외에도 미디어 수를 제한하는 방법으로 언론 간 과도한 이윤 경쟁을 막고 있다. 스트레이츠타임스와 비즈니스타임스, 자오바오 등을 비롯한 싱가포르 주류 신문은 대부분 싱가포르프레스홀딩스(SPH)가 보유하고 있다. 신문시장의 독점 업체에 가깝다. 방송시장에선 미디어코퍼레이션이 대부분의 TV 방송과 라디오 채널을 운영한다.
주주의 정치적인 성향 차이에 따른 언론의 편향과 사회 분열 조장 위험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디어코퍼레이션의 최대주주는 정부 소유 투자회사인 테마섹홀딩스다. SPH는 상장사지만 공기업이 과반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간접적인 지배를 받고 있다.
무책임한 허위·조작 보도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이런 다양한 통제 장치는 의도한 대로 사실 전달에 충실한 보도 관행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트레이츠타임스에선 허위 보도는커녕 ‘따분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극적인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정부의 강력한 통제는 언론의 자유 관점에서 장기간 날카로운 비판을 받고 있다. 국경없는기자회(RSF)는 지난해부터 싱가포르 언론의 자유도를 아프리카나 중동의 일부 국가와 같은 ‘매우 나쁨’으로 표시하고 있다. 올해 조사에선 전체 조사 대상 180개 국가 중 160위에 그쳐 중국(177위)과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42위, 미국은 44위다.
RSF는 “명예훼손 소송이 일반적이고 때로는 7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며 “그 결과 대안·독립 언론까지 자기검열이 만연해 있다”고 싱가포르 미디어 환경을 혹평했다. 그러면서 “2015년 이후 미디어당국은 블로거에게 기사를 삭제하지 않고 적법한 내용을 지키지 않으면 최대 20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겠다고 위협하는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는 2019년 각종 언론과 인권단체의 강한 우려에도 이른바 ‘가짜 뉴스(fake news) 방지법’을 도입했다. 정부가 언론 매체와 디지털 플랫폼의 콘텐츠를 ‘바르지 않다’고 판단한 경우 이를 삭제하거나 수정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당초 가짜 뉴스는 언론 통제 수단을 갖지 못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불만스러운 언론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면서 유행한 표현이다. 이런 표현이 이미 강력한 통제 수단을 갖춘 나라에서 새로운 통제의 구실로 쓰인 셈이다.
한국에서도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일부 지지세력의 여론에 편승해 가짜 뉴스 방지법의 졸속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액의 다섯 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리는 내용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국내외 언론 관련 단체와 세계신문협회(WAN-IFRA), 국제언론인협회(IPI) 등에서 허위·조작 보도가 자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며 철회를 촉구했지만 강행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언론 통제를 통한 가짜 뉴스의 감소는 싱가포르 사례에서처럼 언론의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싱가포르 전문가들은 “언론의 비판 기능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국민의 눈을 가려 얻은 ‘가짜 신뢰’는 결국 정치 권력만 더욱 자유롭게 만들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SPH는 다음달 10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미디어 부문 분리(spin off)를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가 소유한 미디어코퍼레이션과 싱가포르 미디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SPH는 스트레이츠타임스와 비즈니스타임스 등을 발행한다. 경영권 지분은 싱가포르화교은행(OCBC), DBS은행, 싱텔 등 정부 투자은행과 공기업이 나눠 갖고 있다.
미디어 부문은 분리된 후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출자 규모를 포함하는 운영자금 조달 계획은 공개하지 않았다. 미디어 부문을 분리하고 남은 기업 서비스 및 부동산 부문은 케펠그룹이 공개 매수해 비상장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했다. 싱가포르 신문산업은 최근 수년간 지면 광고의 급격한 감소로 고전해왔다. SPH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0사업연도(8월 결산) 미디어 부문은 1140만싱가포르달러(약 100억원)의 세전 손실을 냈다. 1년 전엔 5470만싱가포르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이처럼 높은 신뢰를 받는 싱가포르의 신문산업은 역설적으로 정부의 강력한 언론 통제에 기반하고 있다. 1974년 만들어진 신문출판법을 보면 주무(현 정보통신부) 장관의 인가를 얻지 못한 편집장이나 오너는 신문을 발행할 수 없다. 라이선스의 유효 기간은 1년에 불과하다. 언제든 장관 ‘재량’으로 영구히 혹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기간 동안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같은 강력한 법적 통제 외에도 미디어 수를 제한하는 방법으로 언론 간 과도한 이윤 경쟁을 막고 있다. 스트레이츠타임스와 비즈니스타임스, 자오바오 등을 비롯한 싱가포르 주류 신문은 대부분 싱가포르프레스홀딩스(SPH)가 보유하고 있다. 신문시장의 독점 업체에 가깝다. 방송시장에선 미디어코퍼레이션이 대부분의 TV 방송과 라디오 채널을 운영한다.
주주의 정치적인 성향 차이에 따른 언론의 편향과 사회 분열 조장 위험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디어코퍼레이션의 최대주주는 정부 소유 투자회사인 테마섹홀딩스다. SPH는 상장사지만 공기업이 과반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간접적인 지배를 받고 있다.
무책임한 허위·조작 보도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이런 다양한 통제 장치는 의도한 대로 사실 전달에 충실한 보도 관행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트레이츠타임스에선 허위 보도는커녕 ‘따분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극적인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정부의 강력한 통제는 언론의 자유 관점에서 장기간 날카로운 비판을 받고 있다. 국경없는기자회(RSF)는 지난해부터 싱가포르 언론의 자유도를 아프리카나 중동의 일부 국가와 같은 ‘매우 나쁨’으로 표시하고 있다. 올해 조사에선 전체 조사 대상 180개 국가 중 160위에 그쳐 중국(177위)과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42위, 미국은 44위다.
RSF는 “명예훼손 소송이 일반적이고 때로는 7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며 “그 결과 대안·독립 언론까지 자기검열이 만연해 있다”고 싱가포르 미디어 환경을 혹평했다. 그러면서 “2015년 이후 미디어당국은 블로거에게 기사를 삭제하지 않고 적법한 내용을 지키지 않으면 최대 20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겠다고 위협하는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는 2019년 각종 언론과 인권단체의 강한 우려에도 이른바 ‘가짜 뉴스(fake news) 방지법’을 도입했다. 정부가 언론 매체와 디지털 플랫폼의 콘텐츠를 ‘바르지 않다’고 판단한 경우 이를 삭제하거나 수정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당초 가짜 뉴스는 언론 통제 수단을 갖지 못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불만스러운 언론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면서 유행한 표현이다. 이런 표현이 이미 강력한 통제 수단을 갖춘 나라에서 새로운 통제의 구실로 쓰인 셈이다.
한국에서도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일부 지지세력의 여론에 편승해 가짜 뉴스 방지법의 졸속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액의 다섯 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리는 내용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국내외 언론 관련 단체와 세계신문협회(WAN-IFRA), 국제언론인협회(IPI) 등에서 허위·조작 보도가 자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며 철회를 촉구했지만 강행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언론 통제를 통한 가짜 뉴스의 감소는 싱가포르 사례에서처럼 언론의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싱가포르 전문가들은 “언론의 비판 기능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국민의 눈을 가려 얻은 ‘가짜 신뢰’는 결국 정치 권력만 더욱 자유롭게 만들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하는 싱가포르 언론사
스트레이츠타임스 등 싱가포르 유력 신문사를 소유한 싱가포르프레스홀딩스(SPH)는 미디어 부문을 떼어 내 비영리법인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SPH는 다음달 10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미디어 부문 분리(spin off)를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가 소유한 미디어코퍼레이션과 싱가포르 미디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SPH는 스트레이츠타임스와 비즈니스타임스 등을 발행한다. 경영권 지분은 싱가포르화교은행(OCBC), DBS은행, 싱텔 등 정부 투자은행과 공기업이 나눠 갖고 있다.
미디어 부문은 분리된 후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출자 규모를 포함하는 운영자금 조달 계획은 공개하지 않았다. 미디어 부문을 분리하고 남은 기업 서비스 및 부동산 부문은 케펠그룹이 공개 매수해 비상장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했다. 싱가포르 신문산업은 최근 수년간 지면 광고의 급격한 감소로 고전해왔다. SPH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0사업연도(8월 결산) 미디어 부문은 1140만싱가포르달러(약 100억원)의 세전 손실을 냈다. 1년 전엔 5470만싱가포르달러 흑자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