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몇몇 게시글에 영상으로 직접 답했다는 소식은 훈훈함보다 불편함을 안긴다. 정작 챙겨야 할 국정 현안은 멀리한 채 생색내기 쉬운 것만 골라 홍보하는 ‘선택적 소통’으로 다가와서다. 대통령은 영상 답변에서 보건소 간호 인력 지원,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 확대 등의 세세한 약속을 쏟아냈지만, 그런 정도면 소관부처 공보관이 답해도 충분하다.

대통령의 세심한 국정 챙기기를 홍보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이런 식이면 번지수가 한참 틀린 것이다. 대통령 앞에는 국민과 야당이 답변을 요구하는 더 시급하고 중대한 현안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런 현안에는 마치 묵언 수행하듯 침묵으로 일관한다. 국내외에서 언론 자유 침해 우려가 쏟아지는 언론중재법을 대하는 자세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은 일절 언급이 없다가 며칠 전 한국기자협회 창립 행사에선 “언론 자유는 누구도 흔들 수 없다”는 유체이탈식 화법으로 허탈감만 키웠다. 충북동지회 간첩단 사건, 김경수 경남지사 댓글 조작 판결, 군 및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문 이슈 때도 빗발치는 답변 요구에 불응하며 국민의 인내를 시험했다.

어쩌다 침묵을 깨고 발언할 때마다 자화자찬을 쏟아내는 것도 곤혹스럽다. 문 대통령은 최근 주재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성과 보고대회’에서 부실해진 건보재정 문제는 회피한 채 “문재인 케어의 효과를 확인해 보자”는 등의 민망한 발언을 쏟아냈다. 청해부대 코로나 집단감염 때는 ‘대통령의 탁월한 아이디어로 후송작전에 성공했다’는 자랑이 빈축을 샀다.

국민 화를 돋우는 침묵과 유체이탈 화법은 이 정부의 고질병이 된 듯하다. ‘퍼펙트 스톰’ 우려가 커지는 판국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제일 열심히 하는 일이 ‘성과 부풀리기’다. 2분기 가계소득이 4년 만에 감소하고 상위 20%만 소득이 증가했다는 그제 통계청 발표 때도 그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시장소득이 전반적으로 개선됐다”고 자랑했다.

총리를 지낸 여당 대선후보들까지 재임 시 ‘부동산 대실패’를 남의 일처럼 비판하니 할 말을 찾기 어렵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더 센 규제로 집값을 잡겠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한 줌 강성 지지층 눈치를 더 보는 ‘나쁜 정치’의 씁쓸한 단면들이다. 대통령은 국민청원 답변에서 “끝까지 국민과 함께 가겠다”고 강조했다. 침묵하면서 아쉬울 때만 국민을 찾는 게 민주 정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