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판 CD 굽던 한국 해커, 이젠 美 보안 시장 뚫는다 [황정수의 인(人) 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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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표 SEWORKS 대표 인터뷰
실리콘밸리 보안 스타트업 운영
학창시절 해킹 기술 독학
해적판 CD 팔며 돈 벌어
2000년부터 해킹대회 휩쓸며
'세계적 해커' 명성
세계 최초 스마트폰 백신 개발
화이트해커로 이름 떨쳐
2013년 미국 시장 도전
"제대로 기업 가치 인정 받겠다"
실리콘밸리 보안 스타트업 운영
학창시절 해킹 기술 독학
해적판 CD 팔며 돈 벌어
2000년부터 해킹대회 휩쓸며
'세계적 해커' 명성
세계 최초 스마트폰 백신 개발
화이트해커로 이름 떨쳐
2013년 미국 시장 도전
"제대로 기업 가치 인정 받겠다"
홍민표 에스이웍스(SEWORKS)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는 털모자(비니)와 수염이다. 비즈니스 미팅 때도 비니를 벗지 않고 수염을 밀지 않는다. 자유분방한 문화의 실리콘밸리에서도 비니와 수염에 대해 가끔 질문을 받을 정도다. 바꿀 생각은 없다고 한다. 거창한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편하다' 게 이유다.
이처럼 홍 대표는 솔직하고 직선적이란 평판을 듣는다. 해커 출신 사업가란 그의 정체성 영향이 크다. 2009년 디도스 사태 때 국가정보원이 배후로 '북한'을 지목했지만 그가 "미국에 공격자 서버가 있다"고 반박한 게 대표적이다. 저작권 개념이 약했던 1990년대 초중반 '홍CD'란 이름으로 해적판 CD를 팔았던 것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는다. '가격 후려치기' 같은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고질병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에서 그는 '세계 3대 해커'라고 불릴 정도로 잘나가는 해커였다. 스타트업을 세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백신을 최초로 개발했고, 성공적으로 엑시트(스타트업 창업자가 회사를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했다.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런 홍 대표가 2013년 돌연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와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실력과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겠다'는 목표 때문이었다. 사업 초기 소프트뱅크, 퀄컴에서 시드머니(종잣돈)를 받았고 2016년엔 삼성벤처투자 등에서도 투자금이 들어왔다.
외부(미디어) 노출이 뜸해진 건 2018년께부터다. 친한 후배들이 '형 별 일 없죠'라고 물을 정도라고 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사업에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홍 대표는 "최근 2~3년 간 사업이 궤도에 오르는 속도가 빠르진 않았다"고 털어놨다.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 조금 돌아간 게 경험과 노하우를 쌓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를 기반으로 홍 대표는 조만간 신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공식 런칭 전인데도 미국 기업 3~4곳과 계약을 체결했다. '뭔가를 발전시키고 보완한다'는 해커(hacker)의 어원 'hack'의 의미처럼 홍 대표는 묵묵히 '미국 증시 상장'이란 목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지금 삶도 예전과 다름 없이 계속 '해킹 관련'한 일을 하니까 해커에 가깝죠. 현업에서 플레이어로 뛰는 건 아니지만요. 해커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일반사람하고 달라요. 이게 제가 하는 사업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면 해커의 정의는 뭔가요.
"시스템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모르는 취약점과 실수들을 '발견'하고 '보완'하는 사람이죠. 요즘엔 긱(geek, 열정적인)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도 해커라고 하더라고요."
▶해커는 뭔가를 발전시키는 사람이란 거네요.
"네, 'hack' 이란 의미가 예컨대 이케아(IKEA) 의자를 갖고 목마처럼 만드는 것도 해킹이거든요. 보완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대표님을 '화이트해커'라고 하던데요. 블랙하고 화이트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요.
"솔직히 큰 차이는 없어요. 기술은 같아요. 이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차이죠. 화이트는 윤리적인 의식을 갖고 하는거고 '누가 생각해도 잘못된 것이다' 이런 거는 기본적으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뭔가 유혹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제가 대학 다니던 1998년에 '와우해커'라는 해커 집단을 만들었어요. 동생들이 많았죠. 최대한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게 몸에 배었죠. 사실 그 땐 법도 애매했지만 윤리적인 교육도 많이 하고 노력했어요."
▶어떻게 해커가 됐죠.
"국민학교 4학년때였죠. 어머니가 동네에 컴퓨터학원 생겼다고 가보라고 했어요. 토요일에 갔는데 애들이 학원에서 오락을 하고 있는거에요. '이게 뭐야' 이런 생각이 들었죠. 바로 다니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어요. 사실 그 때 주산학원 다니면서 1급 따고 전국대회 나가는 걸 준비중이었거든요. 오락하는 걸 보니까 못참겠더라고요. 꾐에 넘어간거죠." (1990년대엔 수강생들에게 토요일에 문을 열고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동네 컴퓨터학원이 많았다.)
▶컴퓨터 학원은 재밌었나요.
"월요일에 가니까 오락이 아니라 다른 걸 가르쳐주더라고요. 속았단 생각은 들었는데 저도 모르게 깊게 빠졌어요. 원래 호기심이 많고 푹 빠지는 성격이에요.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다 재밌더라고요."
"독학했어요. 당시 대학생들이 배우던 게 C언어였거든요. 너무 공부하고 싶어서 서점가서 두꺼운 책을 다 봤어요. 교과서를 보라면 안 봤을텐데 법전보다 두꺼운 책을을 여러권 봤어요. 헌책방 가서 책도 샀고요. 학원은 1년도 안 다녔어요. 챕터 하나로 한 달 하는 게 지겨웠거든요."
▶당시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식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걸 싫어하셨을텐데요.
"아니에요. 부모님이 제가 컴퓨터를 좋아하는 걸 알게되셨죠. 첫 컴퓨터로 286 XT 사주셨고요. 그 다음부터는 제가 알아서 다 업그레이드했어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해커, 뭔가를 공격하고 이런... 그런 해커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요.
"어렸을 때 정품 게임을 사면 비밀번호라고 하는 숫자 넣는 게 있었잖아요. 중학생때였는데 게임은 하고 싶은데 돈이 없었어요. 가만히 보니까 게임 소프트웨어 안에서 뭔가 해결이 될 것 더라고요. 그래서 크래킹(복사 보호하는 걸 조작하는 것)이랑 어셈블러(컴퓨터 언어 번역) 관련된거 찾아보고 몇 개 만지니까 비번 안 넣고도 게임을 할 수 있더라고요. 사실 그 때는 법도 없었고 백화점에서도 복사본을 팔던 시기니까 불법은 아니었어요."
▶다른 프로그램까지 복제했나요.
"네, 정품 소프트웨어를 크래킹하고 다 모아서 CD로 만들었죠. 또 컴퓨터 포맷하고 다시 깔 때 필요한 것들, 그래픽툴, MP3 등등 그리고 그걸 CD로 구워서 PC통신에서 팔았어요. '홍씨디'라는 브랜드(?)를 썼고요. '데이터랜드', '데이터맨', '데이터월드' 이런 브랜드도 썼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사업을 한 거네요.
"네, 처음엔 내 컴퓨터에 있는 걸 사설 호스트에 접속해서 다운받아가라고 했는데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CD를 보내주겠다'고 했고요. 한 장에 8000원~1만원에 팔았어요. CD 원가가 2500원이었거든요. 물론 벌크(대량)로 사면 1700원까지 떨어지긴 했죠. 그걸 하나하나 CD 케이스에 넣어서 포장하고 그래서 팔았죠. 그걸 2000년대 초반까지 했는데, 소프트웨어 저작권법이 생기고 불법복제에 대해 금지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접었죠. 법에 어긋나는 일은 하기 싫었거든요."
▶불법은 아니었네요. 원래 사업에 뜻이 있었던 건가요.
"누구보다 빠르게 없던 걸 선점하자. 이런 마음이 강했어요. 그 때 '인류의 발전'을 생각했으면 더 큰 일을 했을텐데 아쉽죠. 어린 나이에 비해선 큰 돈을 벌었지만 돈에 대한 갈망은 없었고요, 재밌었어서 했고 돈이 생기니까 다른 사업도 했죠."
"2006년까지는 친구랑 함께 '파츠빈'이라고 외제차 튜닝 부품 같은 걸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 가져와서 팔았어요. 2년 정도 했고요. 그 이후에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홍테크'란 기업을 했어요."
▶홍테크는 뭐하는 회사였나요.
"백신회사였는데 기존 업체들과는 달랐어요. 기존 업체들은 바이러스 데이터베이스가 있고 여기에 걸리는 애들을 잡는건데요. 홍테크는 '행위 기반' 그러니까 나쁜 행동을 하거나 거동이 수상한 자를 차단하는 방식이었어요. 그 때 우리의 경쟁자는 안랩 같은 국내 업체가 아니라 러시아 '카스퍼스키' 같은 글로벌 기업이라고 생각했어요."
▶큰 포부를 갖고 시작했는데 잘 됐나요.
"잘 안됐어요.(웃음) '새싹'이라고 제품을 내놨는데, 갑자기 이스트소프트가 알약이란 백신을 만들고 광고 심어서 공짜로 뿌렸죠. 새싹 베타1.0을 내놨을때에요. 결국 베타 2.0까지만하고 관뒀어요."
▶홍테크의 운명은요.
"2008년에 법인으로 전환하려고 했는데, 마침 홍테크란 홍삼 판매 회사가 있는거에요. 근데, 홍테크가 사기쳤다는 기사가 계속 나오더라고요. 안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시프트웍스'로 사명을 정했어요. 여러 의미가 있어요. 패러다임 '시프트', 그리고 제가 차를 좋아하는 데 닛산 GTR의 슬로건에 '시프트'가 있어요. 그리고 '시프트워크'는 교대근무, 24시간 돌아간다는 뜻이거든요. 그리고 컴퓨터키에 '시프트'는 뭔가를 추가하는 거잖아요."
▶시프트웍스의 사업도 PC용 백신이었나요.
"아니요. 당시에 '안드로이드'가 나왔어요. 구글이 안드로이드 인수하기 전인데, 안드로이드는 우리가 할 줄 아는 리눅스 기반이거든요. 그때 안드로이드 단말기도 나오고 했고요. 그래서 아, 모바일 관련된 거 해보자. 이렇게 생각했죠. 마침 정부에서 모바일 보안 관련 프로젝트를 했어요. 그 때 들어가서 백신을 만들었죠. '딱 이거다' 싶었어요. PC 백신과 싸울 필요도 없었고요. 안드로이드 백신 중에 세계최초인 '브이가드', 'V-GUARD' 이걸 만들었고 2년 1개월 만에 인프라웨어란 회사가 인수해갔어요."
"아니요. 인프라웨어에서 좀 일하다가 2012년 11월6일 에스이웍스 법인등기를 했습니다. 에스이(SE)는 '세컨드에디션'의 뜻도 있고요. 의지를 담은 표현이죠. 그리고 2013년 여름에 본사를 미국에도 법인을 세우고 본사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겼어요."
▶에스이웍스는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가요.
"쉽게 말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모바일 앱의 분석(디컴파일, 역공학)을 못하게 하는 앱보안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제품명은 '앱솔리드'고요. 앱을 업로드했다가 다운로드만하면 됩니다. 제가 크래킹도 했었고 모바일 백신도 만들어봤으니까 잘 할 수 있는 사업이었죠."
▶초기에 투자를 받는 게 어렵진 않았나요.
"네, 제 미래에 베팅해주는 투자자들이 계셨어요. 심사과정은 어려웠지만 결국 통과했죠. 생각보다 수월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소프트뱅크벤처스랑 퀄컴벤처스에서 설립하자마자 20억원 정도를 투자해줬어요." ▶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세웠죠.
"(작심한듯) 한국시장이 아니라 미국 또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회사에요. 솔직히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은 재밌지가 않아요. 성장하는 데 한계가 커요. 지금은 제가 창업할 때(2012년)보다 나아졌지만 규제도 더 많았고 자금 조달도 쉽지 않았죠."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이 재미 없는 구체적인 이유를 말씀해주시죠.
"한국의 B2B(기업 대 기업) 보안제품 시장에서 가격 정책에 문제가 있죠. 일단 가격 후려치기가 너무 심해요. 첫 해 계약하고 '100'을 받았다고하면 다음해부터는 유지보수비 5%만 줘요. 2년차라고해서 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이 첫 해보다 작은 게 아니거든요. 영원히 5만 받아선 사업이 안돼요. 그리고 입찰 때도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다 주려고 하지 않고 경쟁을 붙여서 90, 70, 60 수준으로 계속 가격을 낮춰요. 제 값을 다 받으려고하면 이상하게 취급하죠."
▶'서비스 제 값주기' 문화가 부족한 게 사실이죠.
"네. 그게 다가 아니에요. 국내 유명 대기업은 3년 연속으로 저희 회사에 희망고문만 시켰죠. 계약을 체결하고 싶다고 저희 제품 정보를 달라고 해서 거의 다 오픈해줬죠. 물론 중요한 것은 가리고요. 기술평가 등 그 쪽 기준에 맞추려고 협의하고 정말 노력해서 맞췄거든요. 담당자가 구매부서로 넘겼는데, 구매부서에서 계약을 안 한다는 거에요. 단념하고 있었는데 이듬해에 또 연락이 와요. 다시 해보자고요. 그래서 또 준비했는데 역시 '보류'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다음해에 '잘 지내셨냐'면서 또 연락이 왔어요. 총력을 다 했는데 아직도 '홀딩' 상태입니다.스타트업은 정말 절실한데, 대기업들은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보통 계약하기 직전에 '15% 깎아달라'고 하고요. 한국에선 수금도 쉽지 않아요. 이런 게 싫어서 미국으로 왔어요."
▶미국 시장은 어떤가요.
"미국은 영업 방식이 한국과 달라요. 평가 프로세스가 잘 갖춰져 있죠. 실무자, 엔지니어들과 미팅하고 제품 도입 전에 명확하게 테스트를 해요. 그리고 그쪽에서 우리 제품에 대해 'OK'라고 판단하면 내부에서 드라이브를 걸어요. 그리고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요. 선순환 구조인거죠. 한국과 다르게 인맥 영향은 거의 없어요. 서비스에 대한 대금 지불도 한국보다 확실하고요. 만약 대금이 늦어지면 이자도 붙여서 받을 수 있어요."
"처음엔 자신감이 넘쳤죠. 그런데 만만한 곳이 아니에요. 지금도 고생하고 있고요. 모든 사업 분야에서 도전하고 있죠. 가장 힘든 점은 사람 뽑는 거에요. 스타트업은 성장 단계마다 필요한 사람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초기 단계인데 엄청난 스펙의 직원은 필요 없을 수 있거든요. 이걸 맞추는 게 쉽지 않아요.
▶한국에도 지사가 있는데 두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는 건가요.
"처음엔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보니까 다르더라고요. 한국하고 미국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는 게 어려워요. 이걸 인정한 게 2~3년 전이에요. 미국에 좀 더 집중하려고요. 고생하면서 노하우도 많이 쌓았고요, 제 목표대로 진행되고 있어요."
▶현재 고객사들이 많나요.
"한국 대기업, 공공기관, 금융회사, 게임회사 등이 많고요. 미국 회사 중에도 유명 스타트업들이 몇 곳 있어요. 앞으로 더 늘려야죠."
▶신사업을 추진 중이라던데요.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신규 서비스를 준비 중이죠. 아직 정식 출시 안 했는데 미국 기업 세 군데 정도 이미 고객으로 확보했어요. 인정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창업 이후 지금까지 시간이 좀 걸렸는데 신사업은 본격적으로 확장할겁니다. 잘 되고 있어요."
▶자금 추가 유치도 계획 중이신가요.
"2012년 창업 때 소프트뱅크, 퀄컴에서 받고 2015년과 2019년에 삼성벤처투자 같은 데서 투자를 받았어요. 시리즈A의 두번째 단계 정도였죠. 지금은 투자유치가 급한 건 아니에요. 의미 있는 성과가 있을 때 받고 싶어요. 사업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고 외부 투자금이 '휘발유'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됐을 때 적극적으로 유치할 계획입니다. 투자에 연연하기보다 사업을 제대로 하는 데 주력하려고요."
▶해커가 아닌 사업가로서 성공했다고 보세요.
"애당초 계획보다 사업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시간이 걸린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낸 게 아니거든요. 완전하게 내공이 많이 올라갔습니다."
"저도 한창 하고 있는 입장이라 정답이라고 조언은 못하겠지만, 기왕이면 미국이든 어디든간에 '고객'들이 있는 곳에 가서, 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사업하는 걸 추천합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아니면 말지' 식의 그런 게 아니라 '와서 1년이든 10년이든 될 때까지 하고 간다'이런 마인드요. 묵묵히 걸어가면 배우는 게 많더라고요."
▶미국에 온 걸 후회하지 않으세요.
"저도 한국에 있을 때는 '비즈니스는 도가 텄다. 어떤 사업을 해도 성공시킬 수있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해보니까 '내가 우물안의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들고 그 동안 '창피한 소리를 많이 했구나' 이런 걸 스스로 깨닫고 인정하게됐어요."
▶미국 스타트업 업계 문화의 장점을 알려주신다면요.
"한국에선 한 번 잘못되면 '망한 사업자, 낙오, 재기불능, 실패자' 이렇게 낙인찍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미국은 문화 자체가 계속 실패해도 노력한 부분에 대해선 인정해주고, 배운 것이라고 생각해줘요. 어떻게 천재도 아니고 한 방에 성공하겠어요. 그리고 미국은 도움이 필요했을 때 관계가 좋았으면 웬만하면 도와줘요. 저도 에너지 100이 있으면 80은 쓰고 20은 돕는데 쓸 수 있어요. 전쟁터지만 너무 눈 앞의 것만 계산 안 하고 경쟁자끼리도 '함께 마켓을 만들어간다'는 나이스한 생각을 해요."
▶앞으로 포부도 말씀해주세요.
"미국 시장에 대한 경험이 없었고 미국 와서 고생한 게 이제 거의 9년이네요. 솔직하게 애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속도는 나지 않았어요. 방향은 맞게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직진으로 못 오고 돌아왔지만 목표를 향해 가는 건 맞다는거죠. 그 동안 쌓은 노하우를 발휘하고 비즈니스에 집중할 거에요. 목표는 미국에서 상장(IPO)하는 것이고요. 저를 믿어준 직원들, 고객사, 투자자들을 위해서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차근차근 묵묵하게 걸어가겠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
이처럼 홍 대표는 솔직하고 직선적이란 평판을 듣는다. 해커 출신 사업가란 그의 정체성 영향이 크다. 2009년 디도스 사태 때 국가정보원이 배후로 '북한'을 지목했지만 그가 "미국에 공격자 서버가 있다"고 반박한 게 대표적이다. 저작권 개념이 약했던 1990년대 초중반 '홍CD'란 이름으로 해적판 CD를 팔았던 것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는다. '가격 후려치기' 같은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고질병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에서 그는 '세계 3대 해커'라고 불릴 정도로 잘나가는 해커였다. 스타트업을 세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백신을 최초로 개발했고, 성공적으로 엑시트(스타트업 창업자가 회사를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했다.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런 홍 대표가 2013년 돌연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와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실력과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겠다'는 목표 때문이었다. 사업 초기 소프트뱅크, 퀄컴에서 시드머니(종잣돈)를 받았고 2016년엔 삼성벤처투자 등에서도 투자금이 들어왔다.
외부(미디어) 노출이 뜸해진 건 2018년께부터다. 친한 후배들이 '형 별 일 없죠'라고 물을 정도라고 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사업에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홍 대표는 "최근 2~3년 간 사업이 궤도에 오르는 속도가 빠르진 않았다"고 털어놨다.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 조금 돌아간 게 경험과 노하우를 쌓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를 기반으로 홍 대표는 조만간 신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공식 런칭 전인데도 미국 기업 3~4곳과 계약을 체결했다. '뭔가를 발전시키고 보완한다'는 해커(hacker)의 어원 'hack'의 의미처럼 홍 대표는 묵묵히 '미국 증시 상장'이란 목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해커는 취약점을 발견하고 보완하는 사람"
▶본인은 아직 해커인가요, 사업가에 가깝나요."지금 삶도 예전과 다름 없이 계속 '해킹 관련'한 일을 하니까 해커에 가깝죠. 현업에서 플레이어로 뛰는 건 아니지만요. 해커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일반사람하고 달라요. 이게 제가 하는 사업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면 해커의 정의는 뭔가요.
"시스템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모르는 취약점과 실수들을 '발견'하고 '보완'하는 사람이죠. 요즘엔 긱(geek, 열정적인)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도 해커라고 하더라고요."
▶해커는 뭔가를 발전시키는 사람이란 거네요.
"네, 'hack' 이란 의미가 예컨대 이케아(IKEA) 의자를 갖고 목마처럼 만드는 것도 해킹이거든요. 보완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대표님을 '화이트해커'라고 하던데요. 블랙하고 화이트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요.
"솔직히 큰 차이는 없어요. 기술은 같아요. 이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차이죠. 화이트는 윤리적인 의식을 갖고 하는거고 '누가 생각해도 잘못된 것이다' 이런 거는 기본적으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뭔가 유혹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제가 대학 다니던 1998년에 '와우해커'라는 해커 집단을 만들었어요. 동생들이 많았죠. 최대한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게 몸에 배었죠. 사실 그 땐 법도 애매했지만 윤리적인 교육도 많이 하고 노력했어요."
▶어떻게 해커가 됐죠.
"국민학교 4학년때였죠. 어머니가 동네에 컴퓨터학원 생겼다고 가보라고 했어요. 토요일에 갔는데 애들이 학원에서 오락을 하고 있는거에요. '이게 뭐야' 이런 생각이 들었죠. 바로 다니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어요. 사실 그 때 주산학원 다니면서 1급 따고 전국대회 나가는 걸 준비중이었거든요. 오락하는 걸 보니까 못참겠더라고요. 꾐에 넘어간거죠." (1990년대엔 수강생들에게 토요일에 문을 열고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동네 컴퓨터학원이 많았다.)
▶컴퓨터 학원은 재밌었나요.
"월요일에 가니까 오락이 아니라 다른 걸 가르쳐주더라고요. 속았단 생각은 들었는데 저도 모르게 깊게 빠졌어요. 원래 호기심이 많고 푹 빠지는 성격이에요.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다 재밌더라고요."
독학으로 해킹 기술 습득...해적판 CD 팔기도
▶스승이 있었을 것 같아요."독학했어요. 당시 대학생들이 배우던 게 C언어였거든요. 너무 공부하고 싶어서 서점가서 두꺼운 책을 다 봤어요. 교과서를 보라면 안 봤을텐데 법전보다 두꺼운 책을을 여러권 봤어요. 헌책방 가서 책도 샀고요. 학원은 1년도 안 다녔어요. 챕터 하나로 한 달 하는 게 지겨웠거든요."
▶당시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식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걸 싫어하셨을텐데요.
"아니에요. 부모님이 제가 컴퓨터를 좋아하는 걸 알게되셨죠. 첫 컴퓨터로 286 XT 사주셨고요. 그 다음부터는 제가 알아서 다 업그레이드했어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해커, 뭔가를 공격하고 이런... 그런 해커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요.
"어렸을 때 정품 게임을 사면 비밀번호라고 하는 숫자 넣는 게 있었잖아요. 중학생때였는데 게임은 하고 싶은데 돈이 없었어요. 가만히 보니까 게임 소프트웨어 안에서 뭔가 해결이 될 것 더라고요. 그래서 크래킹(복사 보호하는 걸 조작하는 것)이랑 어셈블러(컴퓨터 언어 번역) 관련된거 찾아보고 몇 개 만지니까 비번 안 넣고도 게임을 할 수 있더라고요. 사실 그 때는 법도 없었고 백화점에서도 복사본을 팔던 시기니까 불법은 아니었어요."
▶다른 프로그램까지 복제했나요.
"네, 정품 소프트웨어를 크래킹하고 다 모아서 CD로 만들었죠. 또 컴퓨터 포맷하고 다시 깔 때 필요한 것들, 그래픽툴, MP3 등등 그리고 그걸 CD로 구워서 PC통신에서 팔았어요. '홍씨디'라는 브랜드(?)를 썼고요. '데이터랜드', '데이터맨', '데이터월드' 이런 브랜드도 썼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사업을 한 거네요.
"네, 처음엔 내 컴퓨터에 있는 걸 사설 호스트에 접속해서 다운받아가라고 했는데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CD를 보내주겠다'고 했고요. 한 장에 8000원~1만원에 팔았어요. CD 원가가 2500원이었거든요. 물론 벌크(대량)로 사면 1700원까지 떨어지긴 했죠. 그걸 하나하나 CD 케이스에 넣어서 포장하고 그래서 팔았죠. 그걸 2000년대 초반까지 했는데, 소프트웨어 저작권법이 생기고 불법복제에 대해 금지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접었죠. 법에 어긋나는 일은 하기 싫었거든요."
▶불법은 아니었네요. 원래 사업에 뜻이 있었던 건가요.
"누구보다 빠르게 없던 걸 선점하자. 이런 마음이 강했어요. 그 때 '인류의 발전'을 생각했으면 더 큰 일을 했을텐데 아쉽죠. 어린 나이에 비해선 큰 돈을 벌었지만 돈에 대한 갈망은 없었고요, 재밌었어서 했고 돈이 생기니까 다른 사업도 했죠."
스마트폰 백신 최초 개발...2010년 성공적으로 회사 매각
▶본격적인 사업은 언제 시작했죠."2006년까지는 친구랑 함께 '파츠빈'이라고 외제차 튜닝 부품 같은 걸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 가져와서 팔았어요. 2년 정도 했고요. 그 이후에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홍테크'란 기업을 했어요."
▶홍테크는 뭐하는 회사였나요.
"백신회사였는데 기존 업체들과는 달랐어요. 기존 업체들은 바이러스 데이터베이스가 있고 여기에 걸리는 애들을 잡는건데요. 홍테크는 '행위 기반' 그러니까 나쁜 행동을 하거나 거동이 수상한 자를 차단하는 방식이었어요. 그 때 우리의 경쟁자는 안랩 같은 국내 업체가 아니라 러시아 '카스퍼스키' 같은 글로벌 기업이라고 생각했어요."
▶큰 포부를 갖고 시작했는데 잘 됐나요.
"잘 안됐어요.(웃음) '새싹'이라고 제품을 내놨는데, 갑자기 이스트소프트가 알약이란 백신을 만들고 광고 심어서 공짜로 뿌렸죠. 새싹 베타1.0을 내놨을때에요. 결국 베타 2.0까지만하고 관뒀어요."
▶홍테크의 운명은요.
"2008년에 법인으로 전환하려고 했는데, 마침 홍테크란 홍삼 판매 회사가 있는거에요. 근데, 홍테크가 사기쳤다는 기사가 계속 나오더라고요. 안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시프트웍스'로 사명을 정했어요. 여러 의미가 있어요. 패러다임 '시프트', 그리고 제가 차를 좋아하는 데 닛산 GTR의 슬로건에 '시프트'가 있어요. 그리고 '시프트워크'는 교대근무, 24시간 돌아간다는 뜻이거든요. 그리고 컴퓨터키에 '시프트'는 뭔가를 추가하는 거잖아요."
▶시프트웍스의 사업도 PC용 백신이었나요.
"아니요. 당시에 '안드로이드'가 나왔어요. 구글이 안드로이드 인수하기 전인데, 안드로이드는 우리가 할 줄 아는 리눅스 기반이거든요. 그때 안드로이드 단말기도 나오고 했고요. 그래서 아, 모바일 관련된 거 해보자. 이렇게 생각했죠. 마침 정부에서 모바일 보안 관련 프로젝트를 했어요. 그 때 들어가서 백신을 만들었죠. '딱 이거다' 싶었어요. PC 백신과 싸울 필요도 없었고요. 안드로이드 백신 중에 세계최초인 '브이가드', 'V-GUARD' 이걸 만들었고 2년 1개월 만에 인프라웨어란 회사가 인수해갔어요."
한국의 '서비스 가격 후려치기' 문화에 실망...미국으로 건너와 '새로운 도전'
▶바로 지금 회사(에스이웍스)를 열었나요"아니요. 인프라웨어에서 좀 일하다가 2012년 11월6일 에스이웍스 법인등기를 했습니다. 에스이(SE)는 '세컨드에디션'의 뜻도 있고요. 의지를 담은 표현이죠. 그리고 2013년 여름에 본사를 미국에도 법인을 세우고 본사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겼어요."
▶에스이웍스는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가요.
"쉽게 말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모바일 앱의 분석(디컴파일, 역공학)을 못하게 하는 앱보안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제품명은 '앱솔리드'고요. 앱을 업로드했다가 다운로드만하면 됩니다. 제가 크래킹도 했었고 모바일 백신도 만들어봤으니까 잘 할 수 있는 사업이었죠."
▶초기에 투자를 받는 게 어렵진 않았나요.
"네, 제 미래에 베팅해주는 투자자들이 계셨어요. 심사과정은 어려웠지만 결국 통과했죠. 생각보다 수월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소프트뱅크벤처스랑 퀄컴벤처스에서 설립하자마자 20억원 정도를 투자해줬어요." ▶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세웠죠.
"(작심한듯) 한국시장이 아니라 미국 또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회사에요. 솔직히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은 재밌지가 않아요. 성장하는 데 한계가 커요. 지금은 제가 창업할 때(2012년)보다 나아졌지만 규제도 더 많았고 자금 조달도 쉽지 않았죠."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이 재미 없는 구체적인 이유를 말씀해주시죠.
"한국의 B2B(기업 대 기업) 보안제품 시장에서 가격 정책에 문제가 있죠. 일단 가격 후려치기가 너무 심해요. 첫 해 계약하고 '100'을 받았다고하면 다음해부터는 유지보수비 5%만 줘요. 2년차라고해서 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이 첫 해보다 작은 게 아니거든요. 영원히 5만 받아선 사업이 안돼요. 그리고 입찰 때도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다 주려고 하지 않고 경쟁을 붙여서 90, 70, 60 수준으로 계속 가격을 낮춰요. 제 값을 다 받으려고하면 이상하게 취급하죠."
▶'서비스 제 값주기' 문화가 부족한 게 사실이죠.
"네. 그게 다가 아니에요. 국내 유명 대기업은 3년 연속으로 저희 회사에 희망고문만 시켰죠. 계약을 체결하고 싶다고 저희 제품 정보를 달라고 해서 거의 다 오픈해줬죠. 물론 중요한 것은 가리고요. 기술평가 등 그 쪽 기준에 맞추려고 협의하고 정말 노력해서 맞췄거든요. 담당자가 구매부서로 넘겼는데, 구매부서에서 계약을 안 한다는 거에요. 단념하고 있었는데 이듬해에 또 연락이 와요. 다시 해보자고요. 그래서 또 준비했는데 역시 '보류'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다음해에 '잘 지내셨냐'면서 또 연락이 왔어요. 총력을 다 했는데 아직도 '홀딩' 상태입니다.스타트업은 정말 절실한데, 대기업들은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보통 계약하기 직전에 '15% 깎아달라'고 하고요. 한국에선 수금도 쉽지 않아요. 이런 게 싫어서 미국으로 왔어요."
▶미국 시장은 어떤가요.
"미국은 영업 방식이 한국과 달라요. 평가 프로세스가 잘 갖춰져 있죠. 실무자, 엔지니어들과 미팅하고 제품 도입 전에 명확하게 테스트를 해요. 그리고 그쪽에서 우리 제품에 대해 'OK'라고 판단하면 내부에서 드라이브를 걸어요. 그리고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요. 선순환 구조인거죠. 한국과 다르게 인맥 영향은 거의 없어요. 서비스에 대한 대금 지불도 한국보다 확실하고요. 만약 대금이 늦어지면 이자도 붙여서 받을 수 있어요."
목표는 '미국 상장'..."포기하지 않고 전진할 것"
▶미국에서 사업하며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처음엔 자신감이 넘쳤죠. 그런데 만만한 곳이 아니에요. 지금도 고생하고 있고요. 모든 사업 분야에서 도전하고 있죠. 가장 힘든 점은 사람 뽑는 거에요. 스타트업은 성장 단계마다 필요한 사람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초기 단계인데 엄청난 스펙의 직원은 필요 없을 수 있거든요. 이걸 맞추는 게 쉽지 않아요.
▶한국에도 지사가 있는데 두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는 건가요.
"처음엔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보니까 다르더라고요. 한국하고 미국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는 게 어려워요. 이걸 인정한 게 2~3년 전이에요. 미국에 좀 더 집중하려고요. 고생하면서 노하우도 많이 쌓았고요, 제 목표대로 진행되고 있어요."
▶현재 고객사들이 많나요.
"한국 대기업, 공공기관, 금융회사, 게임회사 등이 많고요. 미국 회사 중에도 유명 스타트업들이 몇 곳 있어요. 앞으로 더 늘려야죠."
▶신사업을 추진 중이라던데요.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신규 서비스를 준비 중이죠. 아직 정식 출시 안 했는데 미국 기업 세 군데 정도 이미 고객으로 확보했어요. 인정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창업 이후 지금까지 시간이 좀 걸렸는데 신사업은 본격적으로 확장할겁니다. 잘 되고 있어요."
▶자금 추가 유치도 계획 중이신가요.
"2012년 창업 때 소프트뱅크, 퀄컴에서 받고 2015년과 2019년에 삼성벤처투자 같은 데서 투자를 받았어요. 시리즈A의 두번째 단계 정도였죠. 지금은 투자유치가 급한 건 아니에요. 의미 있는 성과가 있을 때 받고 싶어요. 사업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고 외부 투자금이 '휘발유'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됐을 때 적극적으로 유치할 계획입니다. 투자에 연연하기보다 사업을 제대로 하는 데 주력하려고요."
▶해커가 아닌 사업가로서 성공했다고 보세요.
"애당초 계획보다 사업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시간이 걸린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낸 게 아니거든요. 완전하게 내공이 많이 올라갔습니다."
미국시장에 뜻 있다면 현지에 와서 도전해야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분들께 조언이 있다면요."저도 한창 하고 있는 입장이라 정답이라고 조언은 못하겠지만, 기왕이면 미국이든 어디든간에 '고객'들이 있는 곳에 가서, 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사업하는 걸 추천합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아니면 말지' 식의 그런 게 아니라 '와서 1년이든 10년이든 될 때까지 하고 간다'이런 마인드요. 묵묵히 걸어가면 배우는 게 많더라고요."
▶미국에 온 걸 후회하지 않으세요.
"저도 한국에 있을 때는 '비즈니스는 도가 텄다. 어떤 사업을 해도 성공시킬 수있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해보니까 '내가 우물안의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들고 그 동안 '창피한 소리를 많이 했구나' 이런 걸 스스로 깨닫고 인정하게됐어요."
▶미국 스타트업 업계 문화의 장점을 알려주신다면요.
"한국에선 한 번 잘못되면 '망한 사업자, 낙오, 재기불능, 실패자' 이렇게 낙인찍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미국은 문화 자체가 계속 실패해도 노력한 부분에 대해선 인정해주고, 배운 것이라고 생각해줘요. 어떻게 천재도 아니고 한 방에 성공하겠어요. 그리고 미국은 도움이 필요했을 때 관계가 좋았으면 웬만하면 도와줘요. 저도 에너지 100이 있으면 80은 쓰고 20은 돕는데 쓸 수 있어요. 전쟁터지만 너무 눈 앞의 것만 계산 안 하고 경쟁자끼리도 '함께 마켓을 만들어간다'는 나이스한 생각을 해요."
▶앞으로 포부도 말씀해주세요.
"미국 시장에 대한 경험이 없었고 미국 와서 고생한 게 이제 거의 9년이네요. 솔직하게 애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속도는 나지 않았어요. 방향은 맞게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직진으로 못 오고 돌아왔지만 목표를 향해 가는 건 맞다는거죠. 그 동안 쌓은 노하우를 발휘하고 비즈니스에 집중할 거에요. 목표는 미국에서 상장(IPO)하는 것이고요. 저를 믿어준 직원들, 고객사, 투자자들을 위해서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차근차근 묵묵하게 걸어가겠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