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탄소중립 '과속'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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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시행착오 확인하고
한 걸음 뒤따라 가는 전략을
원전 없는 탄소중립은 불가능
박주헌 <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
한 걸음 뒤따라 가는 전략을
원전 없는 탄소중립은 불가능
박주헌 <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지표면의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하는 예상 시점을 2052년에서 2040년으로 12년이나 앞당기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1~2020년 지구 온도는 이미 1.09도 상승했다고 한다. 인류가 과거에 저질러 놓은 이산화탄소 배출만으로도 마지노선까지 불과 0.4도 차이로 접근했다는 뜻이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강력한 경고다.
제한된 시간 제약은 기술 제약으로 구체화된다. 현재로는 이미 상용화된 무탄소 에너지기술인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술 제약 앞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는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원자력, 천연가스로 전원을 구성하고 천연가스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흡수, 포집기술로 상쇄시키는 전략을 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의 기술 제약을 감안한 전략이다. 물론 여전히 미래기술로 분류되는 포집기술 등이 포함돼 있어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이 없지는 않지만,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확대로 천연가스 사용을 최소화함으로써 실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재난 영화로 빚어진 상상 속 공포심에 사로잡혀 탈원전 깃발을 앞세우고 스스로 한 손 묶은 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애써 헤쳐 나가려고 한다. 원자력을 포기하면 남는 것은 재생에너지뿐이다. 재생에너지는 날씨 사정에 따라 제멋대로 들쑥날쑥해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해치는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아주 고약한 전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비현실적으로 높이고, 이에 따라 야기되는 수급 불안정성을 완화하기 위해 수소, 탄소포집저장, 수소터빈, 암모니아 발전 등 설익은 상상 속 기술을 죄다 동원해 꿰맞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내놓아 판타지 소설 같다는 조롱을 받고 있다.
모든 원인은 탈원전 때문이다. 원전 없는 탄소중립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는 환경원리주의자들은 ‘어떻게?’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상상할 수 있는 답은 오직 하나다. 문명의 퇴보다. 재생에너지만으로 문명의 퇴보 없는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권하는 속임수와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문명을 지키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처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사용하면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길이다. 원전은 현재 기술 수준에서 전기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유일한 전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전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원전에 영원히 의존하자는 말이 아니다. 태양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미래기술을 확보하면, 원전은 자동적으로 박물관으로 가야 할 기술이다.
탄소중립은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그만큼 사전에 알 수 없는 많은 시행착오,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현재의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해서 조심조심 헤쳐 나가야 한다. 적절한 대체기술도 없는 채, 기술적 낙관주의에 빠져 멀쩡한 원전기술을 남보다 먼저 서둘러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르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남들보다 한 걸음만 뒤처져 따라가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사이클 선수들은 선두 바로 뒷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고 한다. 선두가 맞바람을 온몸으로 막아줘 편안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도 원전을 적절히 사용하며 미래기술 개발, 다른 나라가 겪는 시행착오 등을 확인하며 한 걸음 뒤따라가는 전략이 나빠 보이지 않는다.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가요가 흘러나온다.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냐~.”
제한된 시간 제약은 기술 제약으로 구체화된다. 현재로는 이미 상용화된 무탄소 에너지기술인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술 제약 앞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는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원자력, 천연가스로 전원을 구성하고 천연가스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흡수, 포집기술로 상쇄시키는 전략을 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의 기술 제약을 감안한 전략이다. 물론 여전히 미래기술로 분류되는 포집기술 등이 포함돼 있어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이 없지는 않지만,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확대로 천연가스 사용을 최소화함으로써 실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재난 영화로 빚어진 상상 속 공포심에 사로잡혀 탈원전 깃발을 앞세우고 스스로 한 손 묶은 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애써 헤쳐 나가려고 한다. 원자력을 포기하면 남는 것은 재생에너지뿐이다. 재생에너지는 날씨 사정에 따라 제멋대로 들쑥날쑥해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해치는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아주 고약한 전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비현실적으로 높이고, 이에 따라 야기되는 수급 불안정성을 완화하기 위해 수소, 탄소포집저장, 수소터빈, 암모니아 발전 등 설익은 상상 속 기술을 죄다 동원해 꿰맞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내놓아 판타지 소설 같다는 조롱을 받고 있다.
모든 원인은 탈원전 때문이다. 원전 없는 탄소중립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는 환경원리주의자들은 ‘어떻게?’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상상할 수 있는 답은 오직 하나다. 문명의 퇴보다. 재생에너지만으로 문명의 퇴보 없는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권하는 속임수와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문명을 지키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처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사용하면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길이다. 원전은 현재 기술 수준에서 전기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유일한 전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전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원전에 영원히 의존하자는 말이 아니다. 태양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미래기술을 확보하면, 원전은 자동적으로 박물관으로 가야 할 기술이다.
탄소중립은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그만큼 사전에 알 수 없는 많은 시행착오,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현재의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해서 조심조심 헤쳐 나가야 한다. 적절한 대체기술도 없는 채, 기술적 낙관주의에 빠져 멀쩡한 원전기술을 남보다 먼저 서둘러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르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남들보다 한 걸음만 뒤처져 따라가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사이클 선수들은 선두 바로 뒷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고 한다. 선두가 맞바람을 온몸으로 막아줘 편안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도 원전을 적절히 사용하며 미래기술 개발, 다른 나라가 겪는 시행착오 등을 확인하며 한 걸음 뒤따라가는 전략이 나빠 보이지 않는다.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가요가 흘러나온다.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