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블랙리스트' 피해자 승진 막혀 극단 선택…법원 "업무상 재해"
A씨는 1986년부터 환경부에서 근무했고 2006년 한국환경산업기술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 기술원 내부 단장(이후 처장으로 명칭 변경) 등을 역임한 고위직 근로자였다. 기술원은 2018년 상임이사 직위가 공석이 되자 공개 모집을 결정했고 A씨도 이 자리에 지원했다. A는 청와대 인사검증까지 거쳐 최종 후보 2인에 올랐지만, 당시 인사권자였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외부 전문가 영입을 위해 다시 임용절차를 밟겠다”고 결정했다. 기술원 내부에서는 “A가 노동조합으로부터 존경받는 등 조직 내 신망이 두텁고 기여도가 탁월하다”며 임명을 건의했지만 김 전 장관은 상임위원 자리만 계속 공석으로 놔뒀다.

이로 인해 스트레스에 시달린 A는 수첩에 ‘자괴감을 느낀다, 지난 12년간 일할 만큼 했는데 이해할 수 없다’는 심경을 적기도 했다. 이후 기술원은 A씨를 다른 단장으로 전보하려 했지만 이는 사실상 좌천이었고, A씨는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 “벌거벗겨진 심정”이라며 전보를 강하게 거부했다. 진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 A는 2018년 11월초부터 스트레스로 10일동안 출근하지 못했고, 이후 수면장애와 수면부족, 우울감을 호소하며 입원치료를 받았다. 결국 12월 초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의 배우자는 “업무상 재해”라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신청했지만 공단이 ‘부지급 처분’을 내리자 소송을 낸 것이다.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김국현 수석부장판사)는 숨진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단장 A씨의 배우자가 “유족급여 등을 지급하지 않은 결정을 취소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상임이사 모집 절차가 공정하지 않았던 데다 30년 넘게 근무한 곳에서 좌천성 인사까지 예상되자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라며 “가정적·경제적 문제 같은 다른 이유도 없었고 이전에 정신과 진료 이력이 없던 점에 비춰보면, A가 인사와 관련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우울증세가 발현 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김 전 장관은 자신이 추천한 B를 상임이사 자리에 앉히려고 했지만 청와대 인사검증에서 탈락하자 임원 공개모집을 다시 추진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김 장관은 서류 및 면접 심사 업무를 방해했다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오현아/곽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