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불가능한 감축 목표 논란
공장 멈추거나 해외 이전할 판
이건호 편집국 부국장
법안대로라면 2030년까지 2억4000만t가량의 탄소를 줄여야 할 것으로 산업계는 추산했다. 포스코 연간 탄소배출량(8148만t)의 세 배 수준이다. 기존 목표는 2018년 대비 26.3% 감축이었다.
탄소 감축은 가야 할 길이지만, 문제는 절차와 방법, 속도에 있다. 탄소배출이 많은 제조업 중심의 우리 산업 구조와 관련 기술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들이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의 목표를 일방적으로 던져놓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태양광을 비롯한 각종 신재생 에너지를 급격히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상태에서 탄소배출을 대폭 줄이려면 생산라인을 멈추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런 중대 사안을 결정하면서 업계와 협의는커녕 의견조차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게 기업들의 불만이다. 법안 통과 당일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단체가 “환노위가 산업현장과 충분한 논의 없이 탄소중립기본법을 처리했다”고 일제히 반발논평을 낸 이유다.
23일엔 자동차산업연합회(KAIA)가 “산업 위축이나 대량 실직 등 자동차산업 생태계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2030년 탄소 24% 감축’을 위한 전기 동력차 전환(2030년 누적 364만 대)을 385만 대로 확대하는 방안을 정부와 협의하는 와중에 느닷없이 국회가 입법을 추진하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협회는 내연기관 시장 축소와 전기차 부품 감소의 이중고를 겪을 부품업체는 생존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걱정했다.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도 기업엔 ‘시한폭탄’이다. 정부는 기업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독소조항을 다수 포함한 법 시행령을 고치지 않고 강행할 태세다.
대한상의 등 36개 경제단체 및 업종별 협의회가 이날 “경영책임자의 의무내용이 포괄적이고 불분명해 많은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며 개선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사업장 내 중대재해 사고 우려가 거의 없는 대학과 금융회사 등도 안전관리 계획을 세우고 관련 조직·인력을 확충하느라 바빠지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지방대학의 경우 학생 수 감소로 직원 구조조정을 해야 할 판인데, 안전관리 인력을 충원할 여력이 있을지 의문시된다.
중소기업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달부터 시행된 5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제는 주요 산업단지의 활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특근·야근을 못 해 임금이 줄어든 근로자들은 규제가 없는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줄줄이 이직에 나섰다. 코로나19 사태로 외국인 노동인력 입국이 끊긴 상태에서 사업주는 일손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과 비종사 조합원(해고·실업자)의 사업장 출입을 허용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도 지난달 6일부터 정부 뜻대로 시행됐다. 경총 등 재계가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내 출입 및 활동을 제한하도록 법 시행령 보완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음 대통령 선거가 200일도 안 남은 정권 말기다. 정권 초기처럼 규제의 칼을 휘두르고 거여(巨與)의 힘을 이용해 반기업·반시장적인 규제 폭탄을 쏟아내는 행태를 이해하기 힘들다. 당면과제인 코로나 백신 수급불안을 해소하고, 그동안 시행했던 정책들을 되돌아보면서 잘못과 부작용을 바로잡는 데도 시간이 한참 모자랄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