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주사와 지분관계 없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 세워
中 당국 규제 위험성 명시 요구
회계 규정 어기면 상폐 가능성도
SEC “VIE 구조 설명하라”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뉴욕증시 상장을 추진하는 중국 기업에 VIE 구조와 관련해 더 자세한 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VIE 구조는 미 증시에 상장하려는 중국 기업이 자국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즐겨 쓰는 꼼수 기법이다.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중국 기업은 일종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VIE를 설립한다. 미 증시에 상장하는 페이퍼컴퍼니는 중국에 100% 자회사를 설립하는데, 이 자회사가 VIE를 지배한다는 계약을 맺는다. 사업을 운영하는 본체와 상장사가 지분관계를 형성하지 않는 셈이다. 해외 자금이 필요한 중국의 많은 빅테크가 이 같은 방식으로 뉴욕증시에 입성했다. 2000년 시나닷컴을 시작으로 알리바바 징둥닷컴 바이두 디디추싱 등이 이런 구조를 통해 상장했다.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 상장한 중국 기업 가운데 VIE 구조를 이용한 곳이 69%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중국이 미 증시 상장을 막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기업 옥죄기가 심해지자 상장 우회로인 VIE 점검에 나선 것이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이 지난달 말 “일반 투자자는 중국에서 운영되는 회사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명의만 있는 페이퍼컴퍼니의 주식을 사들인다는 것을 알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당시 SEC는 VIE를 활용한 중국 기업 상장을 일시 중단시켰다.
SEC는 중국 기업에 “VIE 구조가 투자자와 투자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VIE 구조가 직접 지배 관계보다 효과적이지 못한 이유에 대한 설명도 포함된다.
투자자들이 중국 기업의 지분을 직접 보유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하라고 했다. 또 VIE를 설명할 때 ‘당사(We)’와 같은 표현은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중국 규제당국이 해당 기업의 데이터 보안정책에 개입할 위험을 밝히라고도 요구했다. 디디추싱 상장 후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중국의 규제가 이어지자 ‘차이나 리스크’를 적시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美 회계 따르지 않는 中 기업 감독도
SEC는 미국 자체 회계기준을 따르지 않는 중국 기업도 겨냥했다. 외국기업문책법(HFCAA)에 따른 회계 공시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중국 기업에 세부 내용을 요구한 것이다. 이 법은 중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이 미국 회계기준으로 감사를 받아야 미 증시에 상장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3년 연속 미국 회계감사를 받지 않으면 상장이 폐지된다.외국기업문책법은 중국의 국가보안법과 충돌한다. 중국은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고 외국 감독기관의 지시를 이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 기업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에 관련 자료를 공유할 수 없었다. 미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이 무더기 상장폐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로이터는 “SEC의 이런 움직임은 최근 몇 년간 미국의 자체 회계기준을 따르는 것을 꺼린 중국 기업에 대한 기습공격”이라며 “SEC는 미국 감사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중국 기업에 대한 상장폐지 규정을 확정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