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만 따라가다…아프간 치욕 뒤 유럽 '홀로서기' 골머리(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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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동맹들에서 '배신·최악 실패' 자성 속출
"미국 리더십에 중독…안보자립 고민해야"
NYT "불만 많지만 현실적 대안·목표의식 없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계기로 그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동맹국들이 미국에 품은 누적된 불만과 걱정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24일 외신들에 따르면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미군의 아프간 철수를 '배신'으로 규정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아프간 국민, 서구 가치와 신뢰, 국제 관계에 재앙"이라고 꼬집었다.
차기 독일 총리로 유력한 아르민 라셰트 후보도 "나토 창설 이래 겪었던 가장 큰 실패"라고 비판에 가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 정부를 직격하는 동맹국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거의 모든 발언의 배경에서 미국을 향한 원망이 관측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아프간 사태가 미국에 대한 실망 때문에 유럽이 자립이 다시 고민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때리기,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집중전략 때문에 그간 소외감을 느껴왔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자립을 강화할 때가 왔다는 직설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는 "그저 미국을 따라가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었나"라면서 아프간 사태의 책임을 내부로 돌렸다.
이런 발언은 아프간 철군 과정에서 나토 동맹국들이 노출한 무기력 때문에 나온다.
유럽 국가들은 '조건부 철수'를 요구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확정된 기한을 고수하며 이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나토 고위 외교관의 말에 따르면 이후 그 어떤 국가도 반기를 들고 일어서지 않았다.
유럽으로서는 자신들이 미국을 대체하거나 미국 없이 아프간에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결정을 상당 부분 미국에 위임했다.
그 결과 과거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에서 겪은 실패가 아프간에서 재연됐고 이는 결국 나토 운영방식을 둘러싼 회의론으로 이어졌다.
미국이 이끌고 유럽이 따라가는 현재 방식이 비판론자들의 도마 위에 다시 오른 것이다.
유럽의 당혹감 속에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실망도 감지된다.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며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시절을 벗어나 유럽과의 관계를 재설정한다는 기대감을 모았다.
그러나 아프간 사태 때문에 기후변화, 무역 등과 달리 안보와 관련해서는 미국에 의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증폭됐다.
가뜩이나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들어 중국의 세력확장을 억제하려고 외교정책 역량을 급격히 아시아로 전환하고 있는 형국이다.
싱크탱크 대서양위원회의 벤자민 아다드는 NYT 인터뷰에서 미국이 변해가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나토의 집단방위(한 나라가 공격받으면 전체가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응수하는 체제) 약속을 어길 것 같진 않지만 유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쟁에는 개입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야프 데 후프 셰퍼 전 나토 사무총장도 BBC 인터뷰에서 "유럽은 미국 리더십에 중독된 상태"라며 "중국의 부상으로 대서양 동맹(미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체계)은 이제 예전 같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아프간 사태가 유럽에 교훈이 될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미국의 집중이 의미하는 것은 곧 유럽이 군사적, 정치적으로 자립할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럽의 자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오지만 실질적 변화가 뒤따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리처드 배런즈 전 영국 합동군사령관은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없는 나토는 매우 제한적인 개념이자 단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프간에서 영국을 비롯한 몇몇 유럽국이 미국이 내려놓은 역할을 맡으려고 했으나 정보, 감시, 정찰, 지휘 및 통제, 군사물자 보급관리, 정부군 지원 훈련 등에 걸친 장벽에 가로막혔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의 클링엔달 연구소 렘 코트웨그 선임 연구원은 "보스니아, 리비아 전쟁은 유럽이 미국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유럽이 들고 일어났지만 현실적으로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유럽의 자립을 위해 국방비 지출을 늘리는 것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이 또한 버거운 실정이다.
나토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2024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이상으로 늘리기로 2014년 합의했지만 실천까지는 아직도 먼 길로 평가되고 있다.
자립 그 자체보다는 궁극적으로 자립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유럽이 일어서기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코트웨그 선임 연구원은 "유럽의 전략적 자립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다.
근데 무엇을 하기 위해서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이 미국 없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어떤 것인지, 어떤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미국이 이끌지 않았으면 하는지에 대한 사전 논의와 목표가 없다는 점을 근본 원인으로 짚었다.
배런즈 전 사령관은 유럽 관점에서 주변적 사건과 정말 중요한 문제를 구분해야 하며 중요한 일에 대응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의 안보는 집단방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나토에서 현실적으로 한몫을 하는 방안에는 국방비 증액만 있는 게 아니라 해외 파트너들이 자체 역량을 키우도록 하고 원조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안도 있다고 제안했다.
/연합뉴스
"미국 리더십에 중독…안보자립 고민해야"
NYT "불만 많지만 현실적 대안·목표의식 없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계기로 그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동맹국들이 미국에 품은 누적된 불만과 걱정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24일 외신들에 따르면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미군의 아프간 철수를 '배신'으로 규정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아프간 국민, 서구 가치와 신뢰, 국제 관계에 재앙"이라고 꼬집었다.
차기 독일 총리로 유력한 아르민 라셰트 후보도 "나토 창설 이래 겪었던 가장 큰 실패"라고 비판에 가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 정부를 직격하는 동맹국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거의 모든 발언의 배경에서 미국을 향한 원망이 관측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아프간 사태가 미국에 대한 실망 때문에 유럽이 자립이 다시 고민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때리기,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집중전략 때문에 그간 소외감을 느껴왔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자립을 강화할 때가 왔다는 직설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는 "그저 미국을 따라가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었나"라면서 아프간 사태의 책임을 내부로 돌렸다.
이런 발언은 아프간 철군 과정에서 나토 동맹국들이 노출한 무기력 때문에 나온다.
유럽 국가들은 '조건부 철수'를 요구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확정된 기한을 고수하며 이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나토 고위 외교관의 말에 따르면 이후 그 어떤 국가도 반기를 들고 일어서지 않았다.
유럽으로서는 자신들이 미국을 대체하거나 미국 없이 아프간에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결정을 상당 부분 미국에 위임했다.
그 결과 과거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에서 겪은 실패가 아프간에서 재연됐고 이는 결국 나토 운영방식을 둘러싼 회의론으로 이어졌다.
미국이 이끌고 유럽이 따라가는 현재 방식이 비판론자들의 도마 위에 다시 오른 것이다.
유럽의 당혹감 속에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실망도 감지된다.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며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시절을 벗어나 유럽과의 관계를 재설정한다는 기대감을 모았다.
그러나 아프간 사태 때문에 기후변화, 무역 등과 달리 안보와 관련해서는 미국에 의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증폭됐다.
가뜩이나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들어 중국의 세력확장을 억제하려고 외교정책 역량을 급격히 아시아로 전환하고 있는 형국이다.
싱크탱크 대서양위원회의 벤자민 아다드는 NYT 인터뷰에서 미국이 변해가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나토의 집단방위(한 나라가 공격받으면 전체가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응수하는 체제) 약속을 어길 것 같진 않지만 유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쟁에는 개입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야프 데 후프 셰퍼 전 나토 사무총장도 BBC 인터뷰에서 "유럽은 미국 리더십에 중독된 상태"라며 "중국의 부상으로 대서양 동맹(미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체계)은 이제 예전 같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아프간 사태가 유럽에 교훈이 될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미국의 집중이 의미하는 것은 곧 유럽이 군사적, 정치적으로 자립할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럽의 자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오지만 실질적 변화가 뒤따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리처드 배런즈 전 영국 합동군사령관은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없는 나토는 매우 제한적인 개념이자 단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프간에서 영국을 비롯한 몇몇 유럽국이 미국이 내려놓은 역할을 맡으려고 했으나 정보, 감시, 정찰, 지휘 및 통제, 군사물자 보급관리, 정부군 지원 훈련 등에 걸친 장벽에 가로막혔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의 클링엔달 연구소 렘 코트웨그 선임 연구원은 "보스니아, 리비아 전쟁은 유럽이 미국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유럽이 들고 일어났지만 현실적으로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유럽의 자립을 위해 국방비 지출을 늘리는 것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이 또한 버거운 실정이다.
나토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2024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이상으로 늘리기로 2014년 합의했지만 실천까지는 아직도 먼 길로 평가되고 있다.
자립 그 자체보다는 궁극적으로 자립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유럽이 일어서기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코트웨그 선임 연구원은 "유럽의 전략적 자립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다.
근데 무엇을 하기 위해서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이 미국 없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어떤 것인지, 어떤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미국이 이끌지 않았으면 하는지에 대한 사전 논의와 목표가 없다는 점을 근본 원인으로 짚었다.
배런즈 전 사령관은 유럽 관점에서 주변적 사건과 정말 중요한 문제를 구분해야 하며 중요한 일에 대응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의 안보는 집단방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나토에서 현실적으로 한몫을 하는 방안에는 국방비 증액만 있는 게 아니라 해외 파트너들이 자체 역량을 키우도록 하고 원조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안도 있다고 제안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