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파죽지세’로 글로벌 영토를 확장하던 크래프톤의 게임 ‘배틀그라운드’가 지난해 9월 급제동이 걸렸다. 인도 정부가 배틀그라운드의 모바일 버전 ‘배틀그라운드 모바일’(배그 모바일)을 포함해 중국 스마트폰 앱 사용을 금지한 것이다. 중국과의 국경 분쟁에 따른 보복 성격이 강했다. 크래프톤이 배그 모바일의 해외 유통을 중국 게임사에 맡긴 게 빌미가 됐다.

크래프톤 내부엔 비상이 걸렸다. 글로벌 시장 전략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2017년에 PC 게임으로 먼저 나온 배틀그라운드는 아시아, 북미 등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을 휩쓸던 터였다.

직접 유통으로 최대 위기 정면 돌파

작년 6월 크래프톤 수장을 맡은 김창한 대표의 리더십이 처음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인도 다운로드 수 1억8000만 건을 달성한 ‘배그 모바일 인도 신화’의 중단 여부가 그의 손에 맡겨진 것이다. 김 대표는 “인도 시장은 인구 등을 감안하면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큰 지역이어서 포기할 수 없었다. 결단이 필요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글로벌 게임산업의 요충지라는 점도 배수진을 친 이유 중 하나.

김 대표는 현지 직접 유통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국 게임사로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한국 게임이 인도에서 출시된 경우가 드물다는 게 시장 침투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그는 결제 편의성 등이 높은 모바일 게임 환경에서 인도에 게임을 직접 유통해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크래프톤은 신속히 움직였다. 인도 정부가 배그 모바일을 금지시킨 지 2개월 만에 인도 법인을 설립했다. 국내 게임사가 인도에 해외 지사를 설립한 것도 크래프톤이 처음이었다. 김 대표는 “인도 맞춤형 아이템 및 현지 유명 인사와의 협업 콘텐츠 등 현지 친화적인 방식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게임 안에 인도 배경 가상 훈련 공간을 만들었고, 게임이 폭력적이라는 지적에 혈흔 효과를 녹색으로 변경한 게 대표적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크래프톤은 한국 기업 중 제조업을 제외하고 인도에서 가장 많은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올 들어 인도 최대 웹소설 플랫폼 프라틸리피, 인도 e스포츠 기업인 노드윈게이밍 등에 7000만달러(약 802억원)를 투자했다. 인도 정보기술(IT)업계와 상생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다.

크래프톤은 인도 시장 복귀에 성공했다. 7월에 인도 지역에만 따로 출시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는 출시 1주일 만에 누적 이용자 수 3400만 명을 돌파했다. 9개월의 공백 기간이 있었지만 인도의 ‘국민 게임’ 반열에 다시 올랐다.

다국적·다문화 개발 체계 구축

김 대표는 배틀그라운드 개발을 주도해 ‘배그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경기과학고를 나와 KAIST에서 전산학 학사부터 박사 학위까지 모두 땄다. 게임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때가 박사 과정 재학 중의 일이다. 2000년부터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3개를 만들었지만 모두 쓴맛을 봤다. 2014년 크래프톤의 전신인 블루홀에 합류했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개발한 게임이 배틀그라운드였다. 그는 “그게 글로벌 대박을 터뜨릴 줄은 몰랐다”고 했다.

김 대표는 배틀그라운드 지식재산권(IP)의 글로벌 확산만큼 인기 유지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가 택한 전략은 e스포츠다. “게임이 ‘하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 재빨리 움직였다. 배틀그라운드가 흥행에 성공하자마자 e스포츠 대회를 연 것이다. 2018년에는 첫 글로벌 e스포츠 대회인 펍지 글로벌 인비테이셔널(PGI)을 독일 베를린에서 열었다. 3만여 명이 현장에서 관람했다. 올 3월에도 ‘펍지 글로벌 인비테이셔널.S(PGI.S)’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세계 8개국 32개 팀이 총 상금 705만6789달러(약 82억원)를 놓고 경쟁했다. 하루 평균 1000만여 명이 온라인으로 관람했다.

숙제도 쌓여 갔다. 크래프톤은 하나의 게임에 의지하는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게임사라는게 취임 초기부터 제기된 시장의 우려다. 그는 “제2, 제3의 배틀그라운드를 만들고 게임이 가장 강력한 미디어가 되도록 혁신해 나가는 게 내 역할이라고 본다”고 했다.

크래프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게임 IP를 추가로 발굴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인력만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크래프톤은 5개의 독립 스튜디오와 15개의 해외 지사에서 다양한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그만큼 회사 운영이 만만찮다. 하지만 김 대표는 관련 경험이 풍부하다. 그는 배틀그라운드 개발 초기부터 해외 인력을 직접 영입해 짧은 시간에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했다. 김 대표는 “어떤 규정에 스스로를 가둘 필요는 없다”며 “우리가 잘하는 것을 중심으로 해외 인력의 장점과 합치려 한다”고 말했다.

기승전 ‘인재’

김 대표가 대표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온 키워드는 ‘독창성’이다. 심지어 그는 “게임 제작 목적은 흥행이 아니다”고까지 말한다.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직원이 즐거워야 하고, 게임을 가슴 설레며 즐기는 열광적인 이용자(코어 팬)가 내부에서부터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매출이라는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게임의 완성도와 재미에 집중하면 다른 성과는 따라온다고 생각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크래프톤이 올해 주요 경영 방향으로 ‘인재 중심 체계’를 설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인재에게 전폭적으로 투자해야 독창성 강한 명작이 탄생한다. 그래야 구성원과 회사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크래프톤은 지난 3월 ‘개발자의 연봉 일괄 2000만원 인상’ ‘총 300억원 규모 인센티브 지급’ 등 국내 게임업계 최고 수준으로 급여를 단숨에 올려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인공지능(AI)이다. 직접 관련 연구를 이끌고 있다. 국내 AI 스타트업 보이저엑스와 딥러닝 언어모델을 공동 개발 중이다. 김 대표는 “앞으로 게임 이용 시간이 늘어나면서 게임은 가장 강력한 미디어가 될 것”이라며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게임의 영향력도 훨씬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 배틀그라운드는
2017년 출시 이후 흥행 신기록…모바일 버전 다운로드 10억건 돌파
사실적인 그래픽과 음향 효과…다양한 영역으로 콘텐츠 확장

크래프톤의 게임 ‘배틀그라운드’는 국내 대표적인 글로벌 레벨 게임 지식재산권(IP)이다. 세계 곳곳에서 배틀그라운드만큼 두루 인기를 끈 한국 게임은 그동안 없었다.

배틀그라운드 게임 내용은 간단하다. 섬, 사막 등 특정 게임 공간에서 게이머 100명이 모여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총싸움하는 것이다. 게임에서 이길 확률이 1% 정도로 낮아 승리에 대한 쾌감도 크다. 사실적인 게임 그래픽과 음향 효과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배틀그라운드는 2017년 3월 세계 최대 PC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출시된 뒤 흥행 신기록을 써오고 있다. 한때 최대 동시접속자 수가 320만 명에 달했다. 스팀 사상 역대 최대 기록이다. 한국에서 개발한 게임 중 처음으로 미국 매체들이 꼽은 ‘올해의 게임’에 이름을 올리며 ‘K게임’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도 받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역대 최다 판매된 PC게임이기도 하다. 7500만 개(콘솔 포함) 이상 판매량을 기록했다. 2018년에 나온 모바일 버전인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은 지난 3월 기준으로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수 10억 건을 기록했다. 크래프톤이 7월에 인도 지역에만 따로 출시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는 출시 1주일 만에 누적 이용자 수 3400만 명, 하루 이용자 수 1600만 명, 최대 동시 접속자 수 240만 명을 돌파했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IP 확장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배틀그라운드 IP를 활용한 첫 게임인 ‘배틀그라운드: 뉴 스테이트’를 연내 출시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게임뿐만이 아니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IP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배틀그라운드의 핵심인 ‘생존’을 바탕으로 배틀그라운드 기반 이야기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크래프톤은 관련 콘텐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올해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제작자인 아디 샨카를 영입했다. 10년 이상 할리우드에서 영화 ‘더 그레이’ ‘저지 드레드’ ‘론 서바이버’ 등을 만든 샨카와 배틀그라운드 IP 기반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 김창한 대표는

△1974년 서울 출생
△1997년 KAIST 전산학과 졸업
△2003년 넥스트플레이 CTO
△2007년 KAIST 전산학 박사
△2009년 지노게임즈 CTO
△2015년 블루홀지노게임즈 개발본부장
△2017년 펍지 대표
△2020년 크래프톤 대표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