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영
김남영
10여 년 전 비(非)수도권 지방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갔다. 본격적으로 꿈을 좇는 것은 대학에 발을 디뎌야만 가능한 줄 알았다.

그런데 대학에서 만난 서울 친구들은 달랐다. 그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다양한 전문가에게 특강을 들어 시야가 넓어진 상태에서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인생 항로를 정한 친구도 있었다. 그들이 부러웠다. 박탈감도 느꼈다.

지난 23일 교육부는 일반계 고등학교의 단계적 학점제 시행을 발표했다. 지역 간 교육격차 해소 방안으로 공유학교, 지역 대학과의 네트워크 구축, 순회교사제 등의 카드도 내놨다. 문제는 그 실효성을 믿는 사람이 적다는 점이다.

교원단체와 입시업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고교학점제가 지역 간 교육격차만 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의당 관계자는 “도농 간 격차는 물론 서울 내에서도 ‘좋은 학군’으로 꼽히는 곳과 아닌 곳의 차이가 극명하게 대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남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A씨는 “고교학점제의 도입 취지인 ‘미래교육’은 지방에서는 공허한 얘기일 뿐”이라고 털어놨다. 고교학점제하에서 다양한 교육이 가능하려면 우선 전문적인 교사 공급부터 가능해야 한다. 그렇지만 지방에서는 이를 충족할 고급 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이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인프라가 압도적으로 좋은 서울의 강남 지역 학교가 유리하다”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벌써부터 ‘8학군 부활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강남은 교사 인재풀이 확보돼 있는 데다 사교육 인프라도 좋다. 전문가들은 “되레 고교 서열화가 부활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학부모들이 모여 있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학점제에 유리한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일찌감치 이사를 가야 하냐”는 질문들이 벌써부터 올라오고 있다. 그뿐인가. 유튜브에서도 “고교학점제하에서는 강남에 살아야 명문대를 보낼 수 있다”는 내용의 영상이 잇따르고 있다. 한 유명 유튜버는 “대치동, 삼성동, 청담동, 잠실동에 살지 않으면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을 못 할지도 모르는 만큼 고교학점제가 강남 집값을 더 끌어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후배들은 어떻게 될까. 기자가 느꼈던 박탈감을 그들이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강남의 고등학생이든, 지방의 고등학생이든 학교 안에서는 같은 교육을 받는 게 공교육의 이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고교학점제가 공교육이 추구하는 바를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걸 교육당국은 아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