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슨앤드존슨은 지난달 50억달러(약 5조8000억원) 규모 합의금을 부담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 중독 위험성이 있음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 44개 주와 카운티에 9년간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19년 오피오이드 남용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4만9860명에 달한다.

이를 계기로 비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선 비보존과 올리패스, 헬릭스미스 등이 중독 우려가 없는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비보존은 엄지건막류 환자를 대상으로 비마약성 진통제 ‘오피란제린’의 임상 3b상을 재개한다. 내년 1분기 임상 중간 결과를 확보하는 게 목표다. 이 회사는 지난해 6월 임상 참여자를 모집했다가 코로나19 유행으로 두 달 만에 임상을 중단했다.

비보존은 앞선 두 차례 임상에서 1차 유효성 지표였던 통증면적합을 충족하는 데 실패했다. 통증면적합은 환자가 시간대별로 느끼는 통증 강도를 그래프로 표시해 놓은 것이다. 회사 측은 엄지건막류 대상 임상 2b상에선 통계적인 유의성을 입증하기에 환자 수가 부족했다는 점, 복부성형술 대상 임상 3a상에선 통증 강도가 낮은 환자들이 섞이면서 약효 변별력이 낮아졌다는 점을 실패 원인으로 분석했다.

이를 감안해 이번 임상에선 두 가지를 바꿨다. 우선 환자 수를 2b상(60명)의 다섯 배인 300명으로 늘렸다. 오는 10월부터 환자 등록을 시작해 내년 1월 안에 환자 모집을 마칠 계획이다. 임상기관도 3곳에서 4곳으로 늘렸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일정 지연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다. 구제약물 투여 용량도 줄였다.

환자가 오피란제린을 투여받은 뒤에도 고통을 호소하면 구제약물로 오피오이드가 추가 투여된다. 이 경우 진통 효과가 어떤 약물로 나타났는지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약효 입증에 어려움을 겪은 올리패스와 헬릭스미스도 재기를 노리고 있다.

올리패스는 25일 비마약성 진통제로 개발 중인 ‘OLP-1002’의 호주 임상 2a상 시험계획을 호주인체연구윤리위원회(HREC)에 제출했다. 이 회사는 지난달 마친 임상 1상에서 안전성 입증에는 성공했지만 가짜약 투여군의 진통 효과가 더 좋게 나타나는 문제가 발생했다. 임상 2상에선 투약 용량에 따라 피험자를 6개 군으로 나눠 적정 용량을 우선 확인한 뒤 추가 임상을 할 계획이다.

헬릭스미스도 당뇨병성 신경병증(DPN)을 대상으로 두 번째 미국 임상 3상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19년 약물 혼용 등 투약관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첫 임상 3상에서 약효를 입증하지 못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