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완의 21세기 양자혁명] 양자물리가 '불평등성 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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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프랑스 수교 120주년을 맞은 2006년, 한국과 프랑스는 다양한 정치 문화 행사를 펼쳤다. 우리나라가 프랑스에서 어떤 행사를 했는지 모르지만, 프랑스 대사관이 펼친 행사 중에는 물리학 강연 시리즈가 있었다. 프랑스의 자존심은 과학, 수학, 기술 분야에서 세계 도량형 표준을 주도하기 위한 노력에서도 잘 나타난다. 북극과 적도의 최단 거리를 1000만m, 즉 1만㎞로 정한 것도 그중 하나다. 그래서 지구의 둘레를 4만㎞로 정한 주체는 프랑스다. 영미권에서는 아직도 인치나 마일처럼 자신들의 도량형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과학자들은 대체로 프랑스가 정한 미터법을 따른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들어온 ‘번개는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돈다’는 말도 미터법으로 확인하는 것이 쉽다. 빛의 초속이 30만㎞이니 30 나누기 4 해서 7.5가 된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특급 물리학자 알랭 아스페 교수는 서울과 대전 등 몇 군데에서 학생과 일반인들을 위해 양자물리학 강연을 했다. 프랑스 대사관에서 준비한 팸플릿에 소개된 그의 업적 중에 갑작스레 법률용어가 등장했다. 벨의 불평등성 위약? 주로 법률·사회·정치 용어에 익숙한 통역사들이 ‘벨 부등식 위배 (violation of Bell’s inequality)’라는 수학적 표현을 법률 용어로 번역한 것이다. 양자물리학에 나오는 비국소적 상관성을 뜻하는 얽힘 (entanglement)도 복잡성이라고 소개돼 있었다. 얽힘을 뜻하는 프랑스 용어(intrication)가 우리말로는 복잡성과 얽힘 등 완전히 다른 말로 번역되는데 잘못된 용어 선택을 한 것이다.
박사학위 과정 중이던 아스페는 벨이 제안한 사고실험을 실제 실험으로 해냈다. 양자물리학의 측정은 확률론적이고, 숨은 변수는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얽힘 양쪽의 측정 결과는 상관성은 즉시 이뤄지지만, 인과성은 없다는 말이다. 인과성이 없으니 양자얽힘을 이용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어떤 정보도 보낼 수 없고, 특수상대성 이론과도 모순되지 않는 셈이다.
비슷한 시기에 ‘양자얽힘을 이용하면 빛보다 빠른 통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닉 허버트의 제안이 유수 학술지에 발표된 일이 있었다. 논문의 심사위원은 후일 양자텔레포테이션 발명자 중 한 사람인 페레스 박사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모순되는 이 주장이 틀렸음을 알면서도 게재하도록 허락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 제안이나 허버트의 틀린 논문은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현재 진행 중인 양자정보과학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잘못된 주장도 진지한 과정을 거쳐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으로 탄생한 양자얽힘은 양자텔레포테이션, 양자암호, 양자계측 등 다양한 양자 기술의 모태가 되고 있다.
김재완 < 고등과학원 교수 >
프랑스가 자랑하는 특급 물리학자 알랭 아스페 교수는 서울과 대전 등 몇 군데에서 학생과 일반인들을 위해 양자물리학 강연을 했다. 프랑스 대사관에서 준비한 팸플릿에 소개된 그의 업적 중에 갑작스레 법률용어가 등장했다. 벨의 불평등성 위약? 주로 법률·사회·정치 용어에 익숙한 통역사들이 ‘벨 부등식 위배 (violation of Bell’s inequality)’라는 수학적 표현을 법률 용어로 번역한 것이다. 양자물리학에 나오는 비국소적 상관성을 뜻하는 얽힘 (entanglement)도 복잡성이라고 소개돼 있었다. 얽힘을 뜻하는 프랑스 용어(intrication)가 우리말로는 복잡성과 얽힘 등 완전히 다른 말로 번역되는데 잘못된 용어 선택을 한 것이다.
통역사가 오역한 양자물리학 용어
아인슈타인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은 많이 알려진 특수상대성 이론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광전효과를 이론적으로 설명해 양자물리학의 토대를 세운 공로 때문이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전개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확률론적인 양자측정 등 양자물리학의 비결정론적인 해석이 아인슈타인은 매우 불만스러웠다. 1935년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측정의 비결정론적인 해석은 자신의 특수상대성 이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양쪽이 얽혀 있을 때, 어느 한쪽도 상태가 정해져 있지 않고 측정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다. 그런데, 한쪽을 측정하면 ‘그 즉시’ 다른 쪽의 상태도 상관성이 있도록 결정된다는 것이 양자물리학의 주장이다. 양자암호와 양자텔레포테이션 발명자 중 한 사람인 IBM의 찰스 베넷 박사는 대학시절 히피족의 모토로 양자얽힘을 표현한다. “내 마음 나도 몰라, 네 마음 너도 몰라. 그렇지만 우리 마음 우리가 알고 있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쪽에서 벌어진 일이 다른 쪽과 연관이 된다면 빛보다 빨리 정보가 전달되는 것일까? 이는 특수상대성 이론과 모순되는 것이 아닐까?잘못된 주장도 좋은 결과 낳을 수 있어
그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실험이 1964년 존 스튜어트 벨 박사에 의해 제안됐다. 고전물리학의 주장대로 결정론적인 과정을 따른다면 얽힘 양쪽의 측정 결과가 벨이 제안한 부등식을 만족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숨어 있는 변수가 모든 과정을 결정하기에 비결정론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그에 비해, 양자물리학의 주장대로 확률론적인 측정이 이뤄진다면 벨 부등식을 위배하는 경우가 생긴다.박사학위 과정 중이던 아스페는 벨이 제안한 사고실험을 실제 실험으로 해냈다. 양자물리학의 측정은 확률론적이고, 숨은 변수는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얽힘 양쪽의 측정 결과는 상관성은 즉시 이뤄지지만, 인과성은 없다는 말이다. 인과성이 없으니 양자얽힘을 이용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어떤 정보도 보낼 수 없고, 특수상대성 이론과도 모순되지 않는 셈이다.
비슷한 시기에 ‘양자얽힘을 이용하면 빛보다 빠른 통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닉 허버트의 제안이 유수 학술지에 발표된 일이 있었다. 논문의 심사위원은 후일 양자텔레포테이션 발명자 중 한 사람인 페레스 박사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모순되는 이 주장이 틀렸음을 알면서도 게재하도록 허락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 제안이나 허버트의 틀린 논문은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현재 진행 중인 양자정보과학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잘못된 주장도 진지한 과정을 거쳐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으로 탄생한 양자얽힘은 양자텔레포테이션, 양자암호, 양자계측 등 다양한 양자 기술의 모태가 되고 있다.
김재완 < 고등과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