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기린이 나타났다. 아파트 단지 앞 공원에서 주변을 살펴보고 있는 이 기린들은 조형물이다. 스위스 사진가 마리오 델 쿠르토가 홍콩의 기린상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한 앵글에 담은 작품으로 올해 부산국제사진제 전시작의 하나다.

이번 부산국제사진제의 주제는 ‘인류세(人類世)’다. 인류세는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첸이 제시한 용어다. 지질시대를 연대로 구분하는 단위인 세(世)를 산업혁명 이후 현재까지의 시간에 적용한 것이다. 인류로 인해 지구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 시대를 의미한다.

쿠르토는 세계 여러 도시에서 촬영한 인공구조물과 자연의 모습으로 변화된 지구의 질서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아프리카 초원의 상징적 동물인 기린의 조형물, 인공의 정원 그리고 고층아파트 단지를 대비시켰다. 콘크리트 건축물이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수풀과 기린은 그 주변을 꾸미는 장식물로 존재할 뿐이다. 쿠르토는 불과 2~3세기 만에 뒤바뀐 지구의 질서를 상징적으로 담아냈다. 부산국제사진제는 오는 28일~9월 26일 부산 복합문화공간 F1963에서 열린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