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범준기자
사진=김범준기자
내 이름은 진꼬, 다섯 살 웨스트하이랜드화이트테리어 숙녀예요. 옛날옛적 스코틀랜드에서 토끼와 새를 잡던 사냥개지요. 나를 낳아준 엄마(금순·9), 사람 할머니·할아버지와 살고 있어요.

우리 할머니·할아버지는 내게 잘해주려 노력하세요. 우리와 함께 여행도 가고요, 잘 말린 양고기나 캥거루 꼬리 등도 자주 주세요. 두 달에 한 번 전문가가 손으로 일일이 다듬는 특수미용으로 털도 관리한답니다. 하지만 약간 서운한 점도 있어요. 소셜미디어를 보니 요즘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친구들과 놀이공부도 하고, 간식도 먹고, 소풍도 간다니! 혼자서 부러워만 했죠.

그런데 내게도 드디어 유치원에 갈 기회가 생겼어요. 경기 수원 광교에 있는 ‘털로 덮인 친구들’에 1일 체험을 가게 됐지요. 낯선 냄새에 처음 보는 친구들, 나를 반겨주는 선생님, 모든 게 신났어요.

두근대며 기다리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죠? 선생님이 내 이름을 ‘A반’에 올리더니, 다른 친구들과 놀 수 없다고 하셨어요. 옆에서 얌전하게 꼬리만 흔들고 있던 엄마는 ‘B반’에서 바로 수업을 받는데 말이죠. “진꼬는 너무 예민하고 흥분을 잘해서 사회성 교육이 필요합니다”라는 선생님 말씀에 할머니는 ‘올 게 왔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사실 나는 겁이 많아요. 항상 긴장한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어요. 일단 쫓아가서 짖기부터 해요. 이게 다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거였는데 할머니·할아버지는 “우리 진꼬는 왜 이리 유별날까”라고만 해요. 선생님은 이런 나를 단박에 알아보셨어요. 그리고 이날, 나는 할머니와 함께 예절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할머니가 시도때도 없이 나를 불러대서 좀 귀찮았어요. 선생님은 할머니에게 “강아지 이름은 귀하게 불러야 한다”고 지적하셨어요. “맛있는 거 줄 때, 예뻐해줄 때만 부르세요. 그래야 보호자가 이름을 부를 때 반응합니다.”

아휴,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고요. 반가운 말씀이라 앞발을 들고 펄쩍펄쩍 뛰어드렸어요. 그런데 선생님이랑 할머니가 날 외면하는 거 아니겠어요? 난 너무 당황해서 앞발을 내리고 ‘할머니 왜 나 안 쳐다봐?’ 했어요. 그랬더니 “옳지~” 하며 간식을 주네요. 간식이 맛있어서 또 두 발로 서서 뛰었더니 할머니가 등을 돌려버렸어요. 고개를 갸웃하며 네 발로 서니 또 간식을 줬어요. “두 발로 서서 뛰는 버릇은 허리와 슬개골에 좋지 않습니다. 네 발을 땅에 딛고 있을 때만 간식을 주며 칭찬해주세요.” 선생님의 말에 할머니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이제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에요. 문이 열리네요. 낯선 개가 들어오죠. 이 유치원의 터줏대감 포메라니언 노지심이래요. 푸들 루이, 비숑프리제 파이도 들어왔어요. 친구들이 내게 다가와 냄새를 맡길래 짖으면서 선생님의 팔을 마구 할퀴었어요. 달려들려는 나를 선생님이 한참 동안 꼬옥 안아줬어요.

흥분이 좀 가라앉자 선생님이 나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풀어주셨어요. 용기를 내 다가가봤어요. 나도 모르게 또 짖었더니 선생님이 몸으로 제 앞을 막네요. 짖고 싶은 걸 꾹 참고 지심이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아봤어요. 지심이도 내 냄새를 맡으려고 하길래 엉덩이를 조금 내어줬어요.

나의 유치원 첫날은 이렇게 끝났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집에 와서도 두 발로 서려다가 멈칫하게 되고, 산책할 때 다른 개를 만나면 지심이, 루이, 파이랑 놀 때가 생각나서 덜 긴장돼요. 할머니는 이런 내가 신기하고 기특하대요. 앞으로 몇 번 더 수업을 받으면 나도 매너 좋고 교양 있는 강아지가 될 수 있겠지요?

조수영/이수빈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