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를 필두로 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들이 ‘슈퍼 을’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틈을 타 주요 고객사에 가격 인상을 통보했다. “가격을 더 내는 곳부터 반도체를 주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자동차, 스마트폰 등 시스템 반도체 수요처의 원가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6일 대만 매체들에 따르면 세계 1위 파운드리업체 TSMC는 내년부터 16㎚(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선단공정 제품 가격을 최대 20% 인상한다. 3위 업체인 UMC도 올해 9월과 11월, 내년 초 가격을 올릴 방침이다.

반도체업계에서는 파운드리 가격의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 업체가 라인을 완전 가동하고 있어서다. 가격을 올리더라도 경쟁사에 물량을 뺏길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다. 톰 콜필드 글로벌파운드리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생산능력을 계속 늘리고 있고, 전 라인이 100% 이상 가동 중”이라며 “적어도 2022년까지는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수급난에도 불구하고 파운드리업체들의 수익성은 이전만 못하다. 사업장 증설과 연구개발(R&D), 극자외선(EUV) 설비 구입 등에 들어가는 자금이 만만찮아서다. 수익성을 지키려면 주요 반도체 수요처에 추가 비용을 청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파운드리업체들의 설명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업체들이 증설 경쟁을 벌이는 데다 2㎚ 공정부터는 업그레이드된 EUV 장비를 써야 한다”며 “대당 2000억원이 넘는 EUV 장비가 더 비싸지겠지만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면 주문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했다.

업계에선 파운드리업계 2위인 삼성전자도 조만간 가격을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병훈 삼성전자 부사장은 지난달 29일 2분기 실적설명회에서 “파운드리 공급가격을 현실화하겠다”고 했다. “올해 파운드리사업부 매출이 20% 이상 뛸 것”이란 예측도 내놨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은 갤럭시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도 일부 외주를 줄 정도로 생산라인이 꽉 찼다”며 “고객사를 끌어오기 위해 경쟁사보다 낮게 잡았던 외주 생산 가격을 현실화할 적기”라고 설명했다.

이수빈/김형규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