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서 매미 소리 같은 게 자꾸 들리고 구토와 현기증 때문에 못 견디겠어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와의 국교 재개를 기념해 수도 아바나를 방문한 2016년, 아바나 주재 미 대사관 직원들이 두통과 이명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터질 듯 아프거나 호흡곤란 때문에 실신한 사람도 있었다.

휴가에서 돌아온 한 직원은 냉장고 플러그가 뽑혀 있는 등 외부 침입 흔적을 발견했다. 얼마 후 그도 심한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뇌손상까지 입었다. 본국에서 급파된 의사마저 아바나 시내 호텔에 투숙한 날 같은 증상으로 고통을 받았다. 피해자는 금세 50여 명으로 늘었다. 인근 캐나다 대사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미국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증상을 ‘아바나 증후군’이라고 불렀다. 이 사태는 결국 외교 문제로 번졌고 미국 주재 쿠바 외교관 15명이 추방됐다. 2018년엔 중국 광저우에서 미 대사관 직원 15명이 ‘아바나 증후군’을 겪었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증상이 이어졌다.

피해자 대부분은 거주지를 옮긴 직후 이 증세를 겪었다. 최근에는 워싱턴DC의 국가안보회의 당국자와 백악관 직원 등 미 본토에서도 이런 사건이 터졌다. 그동안 아바나 증후군을 겪은 미국 공무원과 가족은 200명이 넘는다. 미 국립과학공학의학원은 지난해 12월 “이는 극초단파를 포함한 고주파 에너지 공격인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극초단파는 사람의 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측두엽으로 파고들어 뇌 신경을 손상시킬 수 있다. 미국 언론들은 러시아를 배후로 꼽으며 “1970~1980년대 모스크바의 미 대사관이 극초단파에 공격당한 적이 있고, 6~7년 전엔 러시아가 극초단파를 이용한 최신 ‘음파 무기’를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엊그제는 동남아 순방 중인 미국 부통령이 베트남 주재 미 대사관 직원들의 ‘아바나 증후군’ 때문에 현지 도착 일정을 3시간이나 늦췄다. 이에 미 정부 최고위층까지 극초단파 위험에 노출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음파 기술은 조류퇴치 등 긍정적인 데 쓰이는 ‘약’이기도 하지만, 전장이나 첩보 현장에서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 강대국들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에게도 언제 ‘총성 없는 음파탄’이 날아올지 모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