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손짓에 맞춰 단원들이 화음을 맞췄다. 여린 선율이 물결처럼 객석으로 스며들었다. 무대 한 가운데 있는 피아니스트는 지휘자와 눈을 마주친 후 독주를 시작했다. 건반을 유려하게 짚으며 깊은 울림을 관객들에게 전했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지휘자 정명훈이 KBS교향악단을 이끌고 피아니스트 개릭 올슨과 함께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선사하는 순간이었다.

정명훈과 개릭 올슨 두 거장이 선보인 연주는 탁월했다. 올슨은 190cm가 훌쩍 넘는 거구였지만 건반을 짚는 손놀림은 섬세했다. 어린이가 동요를 부르듯 한없이 가녀린 선율을 들려줬다. 거세지는 구간에선 헤비메탈을 들려주듯 강렬한 독주를 이어갔다. 본인의 기교를 바탕으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이 품은 중후함을 극대화했다.

앙코르에서도 올슨은 장기를 발휘했다. 그는 쇼팽의 '화려한 대왈츠'를 관객들에게 선물했다. 여린 선율과 거센 연주를 반복하며 약 5분간 관객들 마음을 밀고 당겼다. 건반 하나씩 강하고 길게 누르며 울림을 증폭시키며 1부를 장식했다.
정명훈과 게릭올슨, 완벽한 클래식 성찬을 선사하다 [리뷰]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올슨은 슈만의 의도대로 담백한 연주를 선보였다"라며 "동시에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녹여낸 연주에도 감탄이 나왔다"라고 평했다.

공연장 분위기는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를 연주할 때 절정으로 향했다. 정명훈은 단상에 올라서자마자 프롬나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박자와 선율이 급변했지만 지휘자가 이내 중심을 잡아줬다. 관악기 소리는 흔들리지 않았고, 현악5부는 탄탄한 조직력을 보여줬다.

다채로운 편성으로 오케스트라 선율에 역동성을 더했다. 무대 위에 등장한 관악기만 열 두 가지. 플루트, 바순 등 관악기 기본편성에 피콜로와 잉글리시 호른, 베이스 클라리넷, 콘트라 바순 등이 추가됐다. 주선율을 다른 악기로 변주되며 몰입도를 높였다.

다양한 타악기 활용도 돋보였다. 네 명의 타악주자가 악기를 바꿔가며 실로폰, 탐탐, 라쳇, 종 등 열 한가지 타악기를 연주했다. 적재적소에 악기를 배치해 오케스트라 화음을 풍성하게 빚어냈다.

정명훈의 섬세한 조율이 빛을 발했다. 여러 악기를 사용하면 자칫 번잡하게 들릴 수 있다. 정 지휘자는 질서정연하게 단원들을 이끌었다. 그는 단원들이 음역대별로 악기를 나눠서 연주하게 했다. 현악기와 관악기 합주를 할 때도 중심부에 있는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 주자만 연주하게 해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소리의 파장까지 고려한 것. 거장다운 면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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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다 지나지 않았지만 클래식 애호가들에겐 '올해의 공연'으로 기억될 만한 무대였다. 허 평론가는 이날 공연을 두고 "과하지도 않게 딱 알맞은 정도로 연주의 긴장감을 유지했다"라며 "이렇게 다채로운 색을 지닌 '전람회의 그림'을 듣게 돼 놀라웠다"라며 호평했다.

두 거장의 협연은 다음달 1일 전남 여수 예울마루에서 한 차례 더 이뤄진다. KBS교향악단이 여수음악제 개막공연으로 똑같은 프로그램을 연주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