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선 파생결합펀드(DLF), 라임 사태 등으로 빚어진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징계 국면이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의 개인 소신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평소 소비자 보호를 강조해온 윤 전 원장이 2019년 글로벌 채권금리가 급락하는 이례적 상황에서 불거진 DLF 사태로 민간 금융사의 리더십을 과도하게 흔들었다는 것이다. CEO 징계는 이들의 향후 거취에 대한 영향이나 금전적 손실이 막대하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행정 불복 소송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27일 판결 이후 금융권의 이목은 금감원이 다시 법원에 항소할지 여부에 쏠린다. 금감원은 이날 “법원 판결문을 상세히 검토한 후 금융위원회와 논의를 거쳐 조속히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금융당국 안팎에선 금감원이 항소를 포기할 가능성도 상당하다는 관측이 흘러나온다. 금감원 리더십이 최근 교체됐다는 점이 첫손에 꼽힌다. 정은보 신임 금감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수차례에 걸쳐 시장 친화적 행정을 예고해왔다. 임원 전원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하는 등 윤 전 원장의 색채 지우기에 나선 것도 항소 포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정 원장은 제재와 징계보다는 사전 지도 위주의 금융감독을 하겠다고 수차례 소신을 밝힌 바 있다”며 “항소하지 않는다면 당국의 제재 정당성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있지만, 전임 원장 시절 무리한 제재로 일어난 일인 만큼 조기에 매듭 지으려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이날 최종 확정 판결이 아닌 만큼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짤막한 입장문을 냈지만 재판 결과에 크게 반색하고 있다. 다만 법원은 우리은행 DLF 사태에 대해 “우리은행의 금융상품 선정 절차에 심각한 흠결이 있다”며 “현행 금융지주사 지배구조법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고 입법 정비의 필요성이 크다”고 이례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그동안 고객 피해 회복이 가장 시급하다는 판단 아래 금감원 분쟁조정안을 즉각 수용해왔다”며 “앞으로 내부 통제 강화와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융당국의) 정책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내부통제 기준 불비에 대한 (우리은행) 제재 여부는 판결문 세부 내용을 분석한 뒤 방향을 정할 계획”이라며 “금융사에 대한 사전적 감독을 강화하고, 법과 원칙에 따른 사후적 제재로 균형감 있게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소람/김대훈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