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공항에서 채찍질…"여행증명서로 390명 통과"
“탈레반이 버스를 막는 바람에 사람들이 에어컨도 안 나오고 밖도 보이지 않게 칠해진 버스에서 14~15시간을 갇혀 있었습니다.”

390명의 아프가니스탄인을 한국에 입국시키는 ‘미라클 작전’을 지원한 김일응 주아프간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사진)은 27일 기자들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탈출자들은) 그 더운 날씨에 에어컨도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창고같이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고, 한 사람은 버스에 들어온 탈레반에 의해 구타도 당한 모양”이라고 했다.

탈출자 중 364명은 지난 24일 50인승 버스 4대를 이용해 카불공항으로 이동했다. 현지는 자살 폭탄 테러 가능성을 경고하는 첩보가 들어올 만큼 위기 상황이었다. 실제 이들이 모두 아프간을 탈출한 직후인 26일(현지시간) 카불공항으로 가는 입구(애비게이트)에서는 테러가 발생해 100여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제일 먼저 도보로 공항에 들어온 탈출자 26명이 이용한 게이트다. 당시 수천 명의 피란민이 몰려 있던 이곳에서 탈레반은 채찍까지 이용해 사람들을 쫓아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공사참사관을 비롯해 대사관 관계자들은 이곳에서 ‘KOREA’라 적힌 종이를 들고 이들을 찾았고 26명이 무사히 공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김 공사참사관은 “여권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예외적으로 여행증명서를 (외교부) 본부에서 만들어 외교행낭으로 보내줬다”며 “탈레반은 이들의 여행증명서가 사본이라고 시비를 걸었고 내가 공항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버스를) 통과시켜줬다”고 말했다.

목숨을 건 작전은 가족에게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김 공사참사관은 “걱정할까봐 딸들에게 말도 못 했다”며 “내가 카타르에 있는 줄 알던 딸들이 뉴스를 보고 ‘카불에 다녀왔냐’고 물었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잘 정착해서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국내에 입국한 아프간인 중 절반 이상인 190여 명이 10세 이하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