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지난 2일 국회에서 입당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지난 2일 국회에서 입당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화에 대한 이 거친 생각들, 그걸 바라보는 전통적 당원들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6월 11일 당선 수락 연설에서 한 말이다. 기자가 지난 6월 이 말을 인용해 기사를 쓴적이 있는데, 다시 이 문장을 적은 것은 지금 돌아가는 국민의힘 내부 사정과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당시 이 대표는 36세의 정치 초년병이 거대 야당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한 당내 불안한 시선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이 말을 썼다.

초기엔 불안보다 기대가 더 컸다. 이 대표는 당선됐을 때만 해도 여론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정치 신데렐라’가 된 듯했다. 그때까지 거대 여당의 기라성 같은 대선 주자들에게 맞설 만한 인물이 잘 보이지 않는 무기력한 국민의힘에 ‘30대 0선’ 대표는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당 지지율도 올라갔다. 이게 중도를 고집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민의힘 대선판으로 끌어들이는 원동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대선 빅텐트’ 구상도 어느정도 먹혀들었다. 그러나 두 달여가 지난 지금 국민의힘 내에선 이 대표에 대한 기대치가 점점 낮아지고 ‘불안한 눈빛과 시선’은 더 강해지는 듯하다.

지금 국민의힘이 돌아가는 형세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이 대표 취임 이후 벌어진 집안싸움은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대선전에서 공방은 으레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다. 나라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를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엽적인 일을 두고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며 사사건건 마찰이 이어지는 바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를 지경’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의짐이 되고 있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대표와 대선 주자, 지도부, 의원들까지 뒤엉킨 이전투구

대표와 대선 주자, 대선 주자들 간 공방은 오합지졸들의 싸움판 같다는 관전평이 나올 정도다. 대표와 주자들이 직접 나서는 ‘대포 싸움’에 캠프 참모들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한 ‘소총 싸움’이 겹쳐 크고 작은 포연이 자욱하다. 주자들은 의원 줄 세우기에 바쁘다. 친이명박-친박근혜계 탄생 이후 15년 만에 윤석열계니, 최재형계니 신종 계파까지 생겼다. 야당으로서 어떻게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비전 제시는 저 뒷전으로 밀렸다.

싸움은 주로 이 대표와 윤 전 총장 간에 벌어졌다. 이미 윤 전 총장 입당 전은 물론 ‘기습 입당’ 이후 이 대표와 사사건건 충돌한 마당이다. 윤석열 캠프의 이 대표 ‘탄핵’을 두고 최고위원과 의원들까지 가세하며 싸움판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됐다. 멸치·고등어·돌고래까지 등장했다. 대선판에 동물의 왕국을 끌어들여 저질 공방을 벌이는 당이 ‘정권 교체’를 외칠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 ‘저거 곧 정리된다’는 발언과 친윤(친윤석열) 의원들이 당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을 위한 실무 작업에 착수했다는 한 언론 보도를 두고도 지루한 논란이 이어졌다.

파문이 커지자 이 대표는 “혼란을 일으키고 부족했던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했고 윤 전 총장은 캠프에 입단속을 주문하면서 사태 수습을 기했다. 두 사람이 급한불은 껐지만 내홍이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와 윤 전 총장이 왜 이렇게 사사건건 마찰을 빚을까. 내년 대선, 2024년 총선, 2027년 대선 등을 겨냥한 헤게모니 장악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대표로선 대표 임기 중 치러지는 이번 대선을 승리로 이끌어 정치판의 주역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세대 정치인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대선판을 자기식 대로 끌고 가면서 자신이 주인, 즉 킹 메이커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가져가겠다는 의도라는 것이 당내 시각이다.

정치 평론가인 서성교 건국대 초빙교수는 “윤 전 총장이 본선에 나갈 때 검증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미리 검증 과정을 거쳐 미래 리스크를 줄여 보자는 것이 이 대표의 의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윤 전 총장이 당 후보가 되더라도 당권과 주도권을 가지고 가면서 내년 지방 선거 공천과 차기 총선 공천도 주도해 차차기 대선을 위해 세력화하려는 뜻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대선 주자들이 마음껏 뛰도록 운동장을 만들어 줘 이들이 명실상부한 주인공이 되게 하고 대표는 공정한 관리에 치중해야 하는데 대표 스스로 주역이 되려는 것은 과욕이라는 것이다. 특히 현안마다 당 공식 회의 석상이 아닌 SNS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메시지를 내면서 불필요한 말꼬리 잡기식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표를 맡기 전 정치 평론을 할 때처럼 처신하는 것은 옳바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당 시너지 효과는 내지 못하고 내홍만 키운다는 것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제1야당 대표로서 대선을 어떻게 승리로 이끌 것인지에만 골몰하면 되지 발언들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훈수를 뒀다.

윤 전 총장 측은 이 대표가 윤 전 총장을 흔들어 낙마시키고 유승민 전 의원을 대선 주자로 키우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지우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정치권 입문 이후 유 전 의원 측 인사로 꼽혀 왔다. 윤 전 총장 측이 이 대표를 ‘저격’하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대표를 위기에 빠뜨린 뒤 최소한 무장 해제시켜야 상처를 덜 받고 대선전을 치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혹여라도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당권을 장악한 뒤 내년 지방 선거와 차기 총선 공천권 행사를 통해 명실상부한 ‘윤석열 정당’으로 만들려는 전략이라는 것이 서 교수의 분석이다. 당권을 확실하게 잡으면 2027년 대선 재도전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의도와 정면으로 부딪친다.

준비 안 된 대선 주자 …정책과 비전, 통찰력 ‘빈약’

대표와 유력 주자가 이렇게 다툼을 벌이느라 경선 흥행은 빨간불이 켜졌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힘 주자들이 준비가 덜 돼 있다는 점이다. 비전·통찰력·정책들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외부 영입인 윤 전 총장과 최 전 감사원장은 특히 더 그렇다. 대선 준비 기간이 짧았던 만큼 그럴 수밖에 없다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당내 다른 주자들조차 대선에 뜻을 품고 있었다면 좀 더 일찍 공직을 그만두고 준비하고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8월 25일 대선 주자들이 처음으로 함께 국민 앞에서 정책 선을 보인 방식이 토론회가 아닌 비전발표회가 된 것은 코미디다. 대선이 7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책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해도 모자랄 판에 마치 초등학교 학예회와 같다는 비아냥거림마저 들린다. 발표회에서 주자들은 자신의 순서가 끝나자 대부분 자리를 떠 썰렁했다.

국민의힘 당 대표와 대선 주자들이 이전투구를 벌이는 바람에 정권 견제라는 제1 야당의 역할은 뒷전이 됐다. 부동산 값이 폭등하고 한·미 연합 훈련은 형해화되다시피 하는 데도 날카로운 비판을 보기 힘들다. 특히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비판에 나선 언론중재법 대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 여당은 국회 통과를 위해 수개월 전부터 계획하고 차근 차근 실행에 옮겨 왔는데 국민의힘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기력 하기만 했다.

제1 야당으로서 시급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온통 집안싸움에 정신이 팔릴 뿐이었다. 국민의힘은 지금 ‘정권 교체’ 대의(大義)와 구호만 난무할 뿐 그럴 만한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지 스스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