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모가디슈와 카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소말리아 반군이 수도 모가디슈를 장악한 1991년 1월, 도시는 무법천지로 변했다. 미국과 중국 대사관은 재빨리 철수했다. 한국 대사관이 공격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공관을 지키던 경비병력마저 달아난 뒤였다. 기댈 곳이라고는 한때 소말리아를 신탁통치했던 이탈리아 대사관뿐이었다.
한국 대사는 적십자 수송기 지원을 약속받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직원들을 긴급 수송하기 시작했다. 반군들의 이슬람 예배시간을 틈타 대사관으로 이동한 일행 7명은 포연을 뚫고 공항까지 진출했고, 극적으로 케냐행 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사지에 남겨진 북한 대사관 직원과 가족 14명까지 함께 태우고 탈출해 화제를 모았다.
20년 후인 지난 15일,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이번에도 목숨 건 탈출행렬이 이어졌다.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먼저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헬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한 다음 미군 수송기로 카불을 벗어났다. 대사 등 3명은 교민 1명을 이송하기 위해 다음날까지 있다가 함께 탈출했다.
문제는 390명이나 되는 현지 협력자들이었다.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던 공관원 4명이 카불로 잠입해 이들을 비밀 집결지로 모이도록 한 뒤 미군 버스에 싣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그 사이에 탈레반에게 15시간이나 붙잡혀 있는 곤욕도 치렀지만 마침내 파키스탄행 수송기 탑승에 성공했다. 이후 한국 공군 수송기로 인천공항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이런 두 도시의 운명과 공관 철수 과정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한때 번성했던 무역도시가 내전으로 아수라장이 된 배경부터 그랬다. 모가디슈는 동아프리카와 페르시아를 연결하는 황금·상아 교역 중심지였다. 카불도 실크로드를 잇는 주요 무역로였다. 그런 번영이 물거품이 돼 버렸다. 종교적으로는 이슬람 국가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모가디슈 탈출 얘기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는 카불 사태와 맞물려 이목을 집중시키며 벌써 300만 명 돌파 기록을 세웠다. 관객들은 “현재 아프간의 비극에 모가디슈 상황이 겹쳐진다”며 “북한 대사관 가족들이 흔들던 태극기와 아프간 협력자들이 외친 ‘코리아’의 울림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고 말했다. 때론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기도 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한국 대사는 적십자 수송기 지원을 약속받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직원들을 긴급 수송하기 시작했다. 반군들의 이슬람 예배시간을 틈타 대사관으로 이동한 일행 7명은 포연을 뚫고 공항까지 진출했고, 극적으로 케냐행 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사지에 남겨진 북한 대사관 직원과 가족 14명까지 함께 태우고 탈출해 화제를 모았다.
20년 후인 지난 15일,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이번에도 목숨 건 탈출행렬이 이어졌다.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먼저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헬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한 다음 미군 수송기로 카불을 벗어났다. 대사 등 3명은 교민 1명을 이송하기 위해 다음날까지 있다가 함께 탈출했다.
문제는 390명이나 되는 현지 협력자들이었다.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던 공관원 4명이 카불로 잠입해 이들을 비밀 집결지로 모이도록 한 뒤 미군 버스에 싣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그 사이에 탈레반에게 15시간이나 붙잡혀 있는 곤욕도 치렀지만 마침내 파키스탄행 수송기 탑승에 성공했다. 이후 한국 공군 수송기로 인천공항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이런 두 도시의 운명과 공관 철수 과정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한때 번성했던 무역도시가 내전으로 아수라장이 된 배경부터 그랬다. 모가디슈는 동아프리카와 페르시아를 연결하는 황금·상아 교역 중심지였다. 카불도 실크로드를 잇는 주요 무역로였다. 그런 번영이 물거품이 돼 버렸다. 종교적으로는 이슬람 국가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모가디슈 탈출 얘기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는 카불 사태와 맞물려 이목을 집중시키며 벌써 300만 명 돌파 기록을 세웠다. 관객들은 “현재 아프간의 비극에 모가디슈 상황이 겹쳐진다”며 “북한 대사관 가족들이 흔들던 태극기와 아프간 협력자들이 외친 ‘코리아’의 울림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고 말했다. 때론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기도 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