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업 안전, 처벌이 능사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안전에 대한 인식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전사고를 줄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자녀가 집에 혼자 있을 때 화재가 발생할 경우의 대처 방법을 가르쳐 줬을까. 화재와 싸우기보다 산소가 부족해지기 전에 그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려줬는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화재 시 불에 타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보다 산소 부족으로 질식해 사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사고 위험은 생활 곳곳에 만연해 있다. 생활 안전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사고가 빈발한다. 산업안전은 생활 안전에서 시작한다. 결국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안전이 일상생활 속에 배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아침부터 안전 조례를 하고, 작업 중 위험 요인을 충분히 설명하고, 안전 수칙을 누누이 강조해도 늘 예기치 못한 곳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회사 분위기는 극도로 나빠진다.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변고가 생겼는데, 일할 분위기가 날 리 없다. 회의도 취소되고 아무도 말이 없다. 안전사고는 적자를 내는 것보다 훨씬 무겁게 경영진을 압박한다.

안전사고에 경영진이 무관심하고 사고 예방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여론이 거세다.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 경영자를 단죄하겠다는 시행령까지 입법예고돼 있어 기업 경영인으로서뿐 아니라 안전 일선에서 일했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과연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이 재해 근절의 만능 기제로 작용할까. 지금까지는 근로자의 개인 과실에 의한 재해라고 하더라도, 산업현장에서 발생했을 때 크게 잘못을 따지지 않고 기업이 보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 법으로 단죄하는 상황이 되면, 관리자의 잘못과 근로자의 잘못을 법적으로 가려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관리자와 근로자가 산업현장에서 서로 싸우는 처절한 ‘2차 재난’이 시작되는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평화가 깨지고 신뢰가 무너지면 협업이 되지 않고 핑계가 앞서며 또 다른 안전사고가 잉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플랜트산업은 업의 특성상 해외 수주가 많고, 까다로운 해외 발주처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더욱 강화된 현장 안전기준을 준수하고 있다. 플랜트 기업뿐 아니라 이미 자체적인 안전 관리 체계와 안전 문화가 잘 정착돼 있는 기업도 많다.

정부가 처벌보다는 중대재해 방지에 중점을 두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선진적 안전보건 시스템을 갖추고, 재해율을 낮추는 데 노력하는 모범적인 사업장과 기업 및 경영자에게 혜택이 주어진다면 안전한 산업 현장을 넘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업들이 앞장서 나갈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많다. 처벌로 인한 강제성이 얼마만큼 산업 안전 강화로 이어질지 의문도 크다. 산업안전보건법, 건설산업기본법 등 이미 기존 법령의 많은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 사고 방지보다 형사처벌에 중점을 둔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으로 하여금 국내 현장 작업이 필요한 국내 투자보다는 해외 투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유도한다. 기업 경영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국내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정부는 기업 활동의 자율성과 재해 예방 효율성에 중점을 둬 중대재해처벌법을 보완·시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