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의 통찰과 전망] 美 구축함 벤폴드에서 배우는 '혁신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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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식사 등 함선 생활 유대감 높여
개인 역량, 협력, 자발적 참여 이끌어내
타율적 병사가 '자율적 전사'로 탈바꿈
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
개인 역량, 협력, 자발적 참여 이끌어내
타율적 병사가 '자율적 전사'로 탈바꿈
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 인접한 국제법상 공해의 90%를 자국 영해로 주장하고 군사기지까지 설치하면서 분쟁이 촉발됐다. 미국과 관련 당사국들은 중국 주장을 일축하고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과 항공모함 전단 기동훈련까지 실시했다. 또한 중국이 통일을 명분으로 대만에 군사적 압박을 가하면서 미군 군함들은 대만해협의 정기적 항해로 맞대응하고 있다. 상기 해역의 최전선에서 미 해군의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벤폴드(DDG-65)가 맹활약하고 있다. 지난 7월 12일 남중국해 파라셀제도(중국명 시사군도, 베트남명 호앙사), 7월 28일 대만해협을 항해했다.
1996년 태평양 함대로 배치된 벤폴드의 함명과 함급은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이 있다. 함명은 6·25전쟁에 미국 해군 위생병으로 참전한 에드워드 벤폴드 상병(1931~1952)에게서 유래했다. 중공군과 맞붙은 서부전선 벙커힐 전투에서 부상병을 돌보다가 21세에 전사했고 명예훈장이 추서됐다.
알레이 버크(1901~1996)는 2차대전 태평양 전선에서 구축함 전대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제독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후 해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총장 재직 시절 함정 32척을 공여하는 등 대한민국 해군 발전에 공로가 크다. 미 해군은 그의 공헌을 기려 이지스 구축함을 알레이 버크급으로 명명했다.
USS 벤폴드는 미 해군에서 혁신과 리더십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함대의 최하위 골칫덩어리가 신임 함장 부임 후 1년 만에 최우수 함정으로 변모했고, 창의적 아이디어는 미 해군 전체로 전파돼 전투력을 높이고 운영 비용을 절감하는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마이클 에브라소프 중령(1961~)은 1997년 7월 장병 310명인 벤폴드의 함장으로 부임해 20개월을 근무했다. 단기간에 무기력한 병사들을 투지충만한 전사로 변모시킨 리더십은 ‘평범한 사람들이 특별한 방식으로 함께 일한다’로 압축된다.
아날로그 시대 구식 군함의 함장은 배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판단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이지스함은 병사 개개인의 역량을 발휘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야 했다.
최첨단 하이테크 장비를 다루는 병사들의 전문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우수한 병사가 해군을 떠나는 이유도 급여보다는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책임감 없이 일하는 데 대한 불만이 컸다. 신임 함장은 상하관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위계질서를 지키면서도 서로 협조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리더십을 발휘했다.
병사들의 활기찬 일상생활을 위한 프로그램도 실시했다. 출발은 식당이었다. 규정된 예산 범위 내에서 맛을 더하는 민간 식료품을 구입하고 취사병 전원을 민간 요리학원에서 실습시켰다. 식사시간은 맛집 탐방처럼 변했고, 소문이 나면서 기지에 정박하면 다른 군함 승조원들이 벤폴드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항해 중에는 금요일 저녁에 비행갑판에서 병사들이 선곡한 음악을 같이 듣는 시간을 가졌다. 병사 부모의 생일에는 함장이 서명한 축하카드를 보내 가족과의 유대감도 높였다.
함정의 성과는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장비 고장이 1997년 75건에서 1998년 24건으로 감소했고 유지비 예산 2400만달러 중 60만달러, 수리비 예산 300만달러 중 80만달러를 남겼다. 이 외에도 다양한 혁신사례로 모범이 되면서 1998년 미 해군에서 가장 우수한 함정에 수여하는 스포캔 트로피를 받았다.
구축함장의 권한은 제한적이다. 상명하복과 규율 준수라는 상황에서 주어진 인력과 제한된 예산으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런 제약조건에서 에브라소프 함장은 꼴찌를 단기간에 챔피언으로 변모시켰다. 장병들은 더 많은 책임이 부여될수록 더 많이 배워나갔고,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질수록 더 많은 성취를 이뤄냈다.
이는 아날로그 시대 타율적인 병사들의 집단을 디지털 시대 자발적인 전사들의 팀으로 변모시키는 과정에 비유된다. 디지털 전환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비중 확대라는 환경 변화에서 조직문화와 리더십의 새로운 지향점을 모색하는 우리나라 기업에도 벤폴드의 혁신과 리더십은 생생한 교훈이다.
1996년 태평양 함대로 배치된 벤폴드의 함명과 함급은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이 있다. 함명은 6·25전쟁에 미국 해군 위생병으로 참전한 에드워드 벤폴드 상병(1931~1952)에게서 유래했다. 중공군과 맞붙은 서부전선 벙커힐 전투에서 부상병을 돌보다가 21세에 전사했고 명예훈장이 추서됐다.
알레이 버크(1901~1996)는 2차대전 태평양 전선에서 구축함 전대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제독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후 해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총장 재직 시절 함정 32척을 공여하는 등 대한민국 해군 발전에 공로가 크다. 미 해군은 그의 공헌을 기려 이지스 구축함을 알레이 버크급으로 명명했다.
USS 벤폴드는 미 해군에서 혁신과 리더십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함대의 최하위 골칫덩어리가 신임 함장 부임 후 1년 만에 최우수 함정으로 변모했고, 창의적 아이디어는 미 해군 전체로 전파돼 전투력을 높이고 운영 비용을 절감하는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마이클 에브라소프 중령(1961~)은 1997년 7월 장병 310명인 벤폴드의 함장으로 부임해 20개월을 근무했다. 단기간에 무기력한 병사들을 투지충만한 전사로 변모시킨 리더십은 ‘평범한 사람들이 특별한 방식으로 함께 일한다’로 압축된다.
아날로그 시대 구식 군함의 함장은 배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판단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이지스함은 병사 개개인의 역량을 발휘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야 했다.
최첨단 하이테크 장비를 다루는 병사들의 전문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우수한 병사가 해군을 떠나는 이유도 급여보다는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책임감 없이 일하는 데 대한 불만이 컸다. 신임 함장은 상하관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위계질서를 지키면서도 서로 협조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리더십을 발휘했다.
병사들의 활기찬 일상생활을 위한 프로그램도 실시했다. 출발은 식당이었다. 규정된 예산 범위 내에서 맛을 더하는 민간 식료품을 구입하고 취사병 전원을 민간 요리학원에서 실습시켰다. 식사시간은 맛집 탐방처럼 변했고, 소문이 나면서 기지에 정박하면 다른 군함 승조원들이 벤폴드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항해 중에는 금요일 저녁에 비행갑판에서 병사들이 선곡한 음악을 같이 듣는 시간을 가졌다. 병사 부모의 생일에는 함장이 서명한 축하카드를 보내 가족과의 유대감도 높였다.
함정의 성과는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장비 고장이 1997년 75건에서 1998년 24건으로 감소했고 유지비 예산 2400만달러 중 60만달러, 수리비 예산 300만달러 중 80만달러를 남겼다. 이 외에도 다양한 혁신사례로 모범이 되면서 1998년 미 해군에서 가장 우수한 함정에 수여하는 스포캔 트로피를 받았다.
구축함장의 권한은 제한적이다. 상명하복과 규율 준수라는 상황에서 주어진 인력과 제한된 예산으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런 제약조건에서 에브라소프 함장은 꼴찌를 단기간에 챔피언으로 변모시켰다. 장병들은 더 많은 책임이 부여될수록 더 많이 배워나갔고,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질수록 더 많은 성취를 이뤄냈다.
이는 아날로그 시대 타율적인 병사들의 집단을 디지털 시대 자발적인 전사들의 팀으로 변모시키는 과정에 비유된다. 디지털 전환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비중 확대라는 환경 변화에서 조직문화와 리더십의 새로운 지향점을 모색하는 우리나라 기업에도 벤폴드의 혁신과 리더십은 생생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