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공개채용 기업은 삼성물산이다. 1957년 1월 한국 최초의 종합상사가 직원을 뽑는다는 소식에 전국에서 1200여 명이 몰렸고, 이 중 27명이 뽑혔다. 그 후 공채는 주요 기업의 인재 채용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공채 직원들은 한 번 들어간 직장에서 뼈를 묻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10년, 20년 근속 때 기념패와 함께 황금 명함·열쇠, 해외여행 상품권 등을 받고 정년퇴임식에선 후배들의 박수를 받으며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는 게 자연스러운 코스였다.

‘공채=평생직장’ 공식이 깨진 건 1997년 외환위기 때였다. 구조조정 한파 속에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회사에 남으면 도둑) 같은 우울한 신조어가 등장했고, 직장이 한평생 기댈 곳이라는 인식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것도 옛날 얘기가 됐다. 바야흐로 ‘잡호핑(job-hopping)족’ 시대다. 직장인들이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더 나은 연봉이나 근무 환경, 커리어 관리 등을 위해 회사를 쇼핑하듯 옮겨 다니는 세태다. 한국경제신문과 국내 최대 비즈니스앱 리멤버가 직장인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8.2%(818명)가 최근 6개월 내 인맥 관리 어려움 등을 이유로 이직과 퇴사를 고민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직을 생각만 하고 있는 걸까. 구인 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2030세대 응답자 1724명 중 38%는 능력 개발과 더 높은 연봉을 위해 1~3년 단위로 이직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스텔스 이직’(소리 소문 없이 직장을 옮기는 행위)을 겨냥한 구인·구직자 연결 플랫폼들이 성업 중이고, 자격증 시장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2년 연속 ‘가장 가고 싶은 기업’ 1위인 카카오에서도 전 직원의 6.3%(2020년)가 이런저런 이유로 이직했다고 한다. ‘신의 직장’으로 부러움을 사는 공기업에서조차 기회만 되면 자리를 옮기겠다는 사람이 전체의 절반 이상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남들에게는 아무리 부러운 직장이어도 누군가는 옮기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아예 떠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지금 우리 곁에도 이직을 생각하는 동료가 있을 수 있다. 계속 함께 일하고 싶은 인재라면 카톡이나 전화 한통이라도 해보자. 이직을 원하는 직장인 중 상당수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딴섬에 있는 것 같다”며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다니 말이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