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중재법 합의 처리” >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방식에 합의한 뒤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가운데는 박병석 국회의장. 김범준 기자
< “언론중재법 합의 처리” >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방식에 합의한 뒤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가운데는 박병석 국회의장. 김범준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9월 27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때까지 한 달가량 언론계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대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입법 독재’ ‘오만과 독선’이란 비판 여론에 청와대마저 야당과의 협의를 당부하면서 민주당이 ‘숨 고르기’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언론중재법에 침묵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여야 합의 이후 “(언론중재법의) 남용 우려를 검토해야 한다”고 뒤늦게 입장을 내놨다.

가까스로 합의한 여야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1일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한 뒤 언론중재법 처리 방식에 합의했다. 우선 여야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오는 26일까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협의체는 양당 국회의원 각 2명과 여야가 추천한 전문가 각 2명 등 총 8명으로 구성된다. 여야는 협의체 논의를 거쳐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27일 열리는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기로 했다.

윤 원내대표는 “양당은 협의기구를 통해 원만한 토론과 간담회 시간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합의를 계기로 여야가 언론 환경을 더욱 선진화된 환경으로 정착해가는 데 앞장서 나가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나가는 가장 큰 기둥은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며 “국민의 알 권리는 어떤 경우에도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도층 이탈 우려 작용

전날까지 언론중재법 강행 방침을 굽히지 않았던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전격 합의에 나선 것은 ‘입법 독주’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선 언론중재법의 조속 처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수였다. 하지만 김원기·문희상·유인태·임채정 상임고문 등 당 원로들은 송영길 대표에게 신중한 처리를 당부했다. 대선주자인 박용진 의원, 5선 중진 이상민 의원, 검사 출신인 조응천 의원 등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도 전날 예고 없이 국회를 찾아 윤 원내대표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언론중재법에 대한 청와대의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중재법 추진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중도층 지지율이 급락한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지난 30일 31.9%로 전주 대비 0.2%포인트 내리는 데 그쳤다. 하지만 중도층 지지율은 4.3%포인트 급락한 27.6%를 기록했다.

‘외교통’인 송영길 대표가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유엔은 지난 24일 민주당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세계인권선언 및 자유인권규약을 위반했다는 의혹에 대한 반론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송 대표는 전날 의원총회에서 이런 사실을 의원들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석 의장이 여야 합의를 요구한 것도 한몫했다. 법안의 본회의 상정은 의장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국회 핵심 관계자는 “박 의장은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아홉 차례나 주재하는 등 여야 합의를 강조했다”며 “여당에는 양보를, 야당에는 대안을 계속 요구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된 요인으로 박 의장을 지목하는 의원도 있다.

협의체 공전 가능성도

문 대통령은 여야의 언론중재법 합의 소식이 전해지자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추가 검토를 위해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다. 국민의 알 권리와 함께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며 “관련 법률이나 제도는 남용의 우려가 없도록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언론중재법에 대해 직접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안전보장법” “대통령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법” 등 야당의 공세와 “한국은 가짜뉴스 방지법을 대형 언론사를 표적 삼아 사용하는 유일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일 수 있다”는 등 해외 언론의 비판에도 침묵했었다. 청와대도 그동안 “국회가 논의할 문제”라며 언론중재법에 대한 언급을 피해왔다.

여야가 가까스로 협의체 구성 등 합의에 다다랐지만, 결국 한 달간 ‘줄다리기’만 하다 끝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협의체 가동이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강행 명분이 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국내외 언론계에서 ‘독소 조항’으로 지목하는 규제를 고수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해당 조항이 폐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협의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언론중재법 강행 의사도 숨기지 않았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협의체가 잘 안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럼 (원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며 “박 의장도 (27일) 상정 처리를 약속했기 때문에 무조건 상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미현/임도원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