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이 단어가 떠오른 것은 하도 국민들을 대상으로 '현금 살포'를 자주하는 문재인 정부 때문이다. 각종 기금이 바닥이 드러나고 나라 빚마저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복지·고용 관련 퍼주기는 끝이 없다. 마침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국민을 대상으로 한 현금 뿌리기는 명분까지 쌓을 수 있었고 지난해 4·15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둔데는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결코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상에 공돈 준다는 데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게 재난지원금을 받고 히히덕 거리던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었고 정치인들이 노린 점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제 재난지원금이 조만간 다시 뿌려진다. '국민 하위 88%'라는 코미디 같은 수치를 기준으로 1인당 25만원씩 돈을 쏴준다는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재미를 봤으니 내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의 '약발'을 기대하며 사실상 매표(買票)를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상위 12%만 빼고 다 준다"고 하면 될 것을 '하위 88%'라는 말도 안되는 기준을 고집하는 것도 웃긴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국민 하위 99%'라는 말까지 나올 참이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또 다시 국민들을 오염시키는 재난지원금이라는 것이 과연 '공돈'인지 좀 생각들 해봤으면 한다. 연소득 5800만원짜리 1인 가구에까지 주는 재난지원금 대상 선정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논쟁은 다른 기사에서 많이들 다뤘으니 오늘은 그 얘기보다는 12조원이라는 재난지원금이 어디서 나온 돈인지를 좀 얘기할까 한다.
코로나 발발 이후 이번이 다섯번째인 재난지원금에 대해서 흔히 '나라가 주는 공돈'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이는 틀린 생각이다. 우선 '나라'라는 말은 매우 중의적인 말이어서 그렇고 실제로는 집권 여당 정치인들이 지급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공돈'은 결코 아니다. 나라 살림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것은 다들 알 것이다. 재난지원금에 필요한 돈을 우리들의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 기타소득 등에서 걷어들이는 세금으로 충당된다. 세금이 모자라면 나라가 빚을 내서 조달하는데 그 빚은 전부 국민들이 두고 두고 갚아야 한다.
정말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돈을 국민들에게 지급하는 것이라면 '국민 하위 88%'는 고사하고 단 한명에게 1원조차도 내주려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정치인들이 생색내며 그것도 모자라 나라 빚까지 내가며,미래 젊은이들에게까지 빚을 떠넘기면서 생색을 내는게 재난지원금이다.
엊그제 정부가 발표한 내년 예산을 보면 604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이고 이같은 막대한 지출을 위해 77조6000억원의 빚을 내야 한다. 이로인해 내년도 나라 빚은 사상 처음 1000억원을 넘어서 1068조3000억원이 된다. 나라 빚은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갚는 게 아니고 그냥 평범한 보통 국민들이 다 세금 내서 갚아야 한다.
이렇게 국민들에게 나중에 알아서 갚으라며 정치인들이 흥청망청 써대는 돈 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재난지원금이다. 그런 점에서 재난지원금은 우리가 미래에 갚아야 할 돈을 당겨 쓰는 것으로, ATM에서 뽑는 현금서비스와 그 본질에서 전혀 다르지 않다. 다르다면 현금서비스를 쓸지 여부, 얼마나 쓸지를 우리 스스로가 아닌 저들, 정치인들이 결정한다는 것 뿐이다.
5차 재난지원금이 뿌려지며 당장 국민들에게는 내년부터 늘어난 세금 청구서가 날아든다. 정부는 내년 국세수입을 올해보다 19.8% 늘려 잡았다. 그만큼 세금을 더 걷겠다는 얘기다. 그 결과 내년 국민들의 조세부담율은 20.7%로 사상 최고치로 높아진다. 국민들은 다음주 재난지원금을 받고 그 돈을 이자까지 더해 바로 내년부터 갚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재난지원금은 '나라에서 주는 공돈'이 아니라 내가 현금서비스 받은 나의 빚, 다시 말해 '내돈내낸'(내 돈으로 내가 낸 돈)일 뿐이다. 그걸 받고 키득거리기 전에 내 동의도 없이 내 이름으로 빚을 낸 정치인들부터 준엄하게 꾸짖어야 한다. 언론들도 재난지원금 받는 방법, 쓸 수 있는 곳에 대해 장황하게 떠들지 말고 재난지원금의 본질이 '내돈내낸'의 현금서비스 일 뿐이라는 점부터 좀 부각하길 바란다.
김선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