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S 따라잡기
나이키는 1998년 공급망 하부 업체의 아동노동을 기업의 잘못된 노동 관행으로 인정했다. 이후 글로벌 공급망 개선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창설하는 등 자발적 공급망 개선을 주도했다. /한국경제신문
나이키는 1998년 공급망 하부 업체의 아동노동을 기업의 잘못된 노동 관행으로 인정했다. 이후 글로벌 공급망 개선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창설하는 등 자발적 공급망 개선을 주도했다. /한국경제신문
1992년, 나이키는 높은 성장세를 보이며 글로벌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언론사를 통해 인도네시아 소재 나이키 신발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여성의 월급명세서가 공개되어 충격을 주었다.

1996년 미국의 한 언론은 파키스탄 시알코트 지역 아동이 나이키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줘야 할 축구공이 개도국 아동노동을 통해 제작된다는 사실에 미국과 유럽 전역은 들끓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 소비자 단체를 중심으로 나이키 축구공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마이클 조던 같은 광고 모델도 격렬한 비난을 받았으며, 견고하던 나이키의 주가도 급락했다.

언론에 처음 보도되었을 때 나이키는 직접 고용한 인력이 아닌 공급망 하부 협력업체에서 일어난 일이라 직접 책임지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 해당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며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일할 수 없던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었다는 점에서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핵심은 “우리가 아니라 하도급업체가 잘못한 것”이었다. 나이키는 연간 보고서에도 공급망 노동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등 공급망에서 발생한 이슈에 대해 거리를 두었다.

나이키의 이러한 대응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CBS와 뉴욕타임스·이코노미스트 등 주요 언론은 인도네시아·파키스탄·인도에서 이루어지는 아동노동 실태를 폭로하는 기사를 앞다퉈 실었다. 소비자들은 나이키의 행태에 분개해 불매운동을 벌였고,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나이키의 실적은 크게 떨어졌다. 주요 언론뿐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나이키의 대응을 희화화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더 빅 원(The Big One)〉이라는 영화가 대표적으로, 나이키의 평판은 급속히 나빠졌다.

나이키 사례,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

결국 필 나이트 나이키 회장은 1998년 5월 공개 연설을 통해 노동 관행의 잘못을 인정했다. 나이키는 사회적 책임을 담당하는 부서를 만들고, 최저임금 인상, 독립적 지위에 있는 감시자 설정, 나이키의 공급망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연구 지원 등을 포함해 새로운 조치를 발표했다. 이후에도 글로벌 공급망 개선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창설하는 등 업계의 자발적 공급망 개선을 주도했다. 오랜 노력의 결과로 나이키는 단지 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망 내 업체와 지역사회, 협력사, 소비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좋은 평판을 얻으며 지속 가능성을 갖춘 다국적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나이키의 사례는 최근 ESG 경영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더욱 주목받으며 여러 연구에서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 ESG 경영의 주체는 대기업이었고, 그 공급망 내 2·3차 협력사는 보호와 모니터링의 ‘객체’이자 ‘대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ESG 경영 관점에서 협력사인 중소기업은 ESG 경영의 ‘파트너’이자 ‘주체’다.

2021년 8월 대한상공회의소는 ‘중소기업 ESG 추진 전략 연구’라는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ESG 경영이 단순히 대중에게 알려진 대기업의 과제가 아니며, 특히 중소기업의 생존과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 스스로 ESG 경영을 실천해야 하는데 이러한 전제에서 이루어진 최신 연구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에서는 중소기업의 ESG 경영을 위해 시급한 과제로 ‘고용 관행 개선’, ‘차별 및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품 안전 및 품질관리’, ‘공급망 포함 아동노동 및 강제노동 금지’ 등을 꼽았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ESG 경영 실천을 통해 자본 조달력 강화 및 거래선 확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결론을 도출했다.

실제로 우리 정부에서도 ESG 성과가 우수한 중소기업에 정책자금 융자 우대 혹은 중소기업 사업 지원 시 가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가령, 동반성장위원회는 우수 중소기업에 동반위 명의의 ‘ESG 우수 중소기업 확인서’를 발급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금리우대 등의 금융 지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협력사에 ESG 교육을 실시하는 대기업에는 세액공제 혜택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가세해 ESG 성과가 우수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대출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1차 협력사보다 리스크 큰 공급망 하부

이러한 인센티브 제공은 중소기업이 ESG 경영을 도입하는 데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보다 인적인 한계와 물적인 제약이 많고, 지속 가능성보다는 당장의 생존이 절박한 중소기업에 ESG 경영은 먼 나라 이야기인 것도 사실이다.

미국 경영학자 베로니카 H. 빌레나, 데니스 A. 조이아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2020년 3·4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보통 대기업은 1차 공급업체 관리에만 집중하곤 한다. 하지만 진짜 리스크는 공급업체의 공급업체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하며 공급망 하부에 내재된 ESG 리스크를 지적했다.

이처럼 리스크 관리 관점에서도 ESG 경영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급망 상부에 있는 대기업 경영진의 철학, 그뿐 아니라 중소기업과의 현업을 담당하는 임직원의 태도가 변해야 중소기업은 비로소 ESG의 주체라는 점을 실질적으로 자각하고 변화할 것이다.

ESG 경영은 시급한 과제지만 그렇다고 조급하게 성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ESG 경영은 패러다임의 변화이며, 그 변화를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이는 갈 길 바쁜 중소기업에 큰 부담이 될 뿐이다.

중소기업이 실질적 변화의 주체가 되기 위해 현 단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는 ESG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기 위한 ‘소통’과 ‘설득’이며, 이를 위한 ‘ESG 직무교육’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SG 경영, 혼자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경영자와 근로자 모두 함께 가야 오래, 또 멀리 갈 수 있을 것이다.

오지헌 법무법인 원 ESG센터 수석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