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에게 잔인하게 폭행당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은 아프간 내무부에서 범죄수사 차장으로 근무한 굴라프로즈 엡테카르다. 여성 경찰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그는 많은 아프간 여성들의 롤모델로 꼽혔다. 다수의 방송 출연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극단주의를 비판하고 여성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프간 여성 최초로 경찰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달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장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탈레반은 1996~2001년 집권 시절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가혹하게 해석해 여성을 탄압했다. 여성은 어떤 교육도 받을 수 없었고, 일할 수도 없었다.
엡테카르도 생존을 위해 아프간을 탈출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는 카불공항 인근에서 5박을 지내며 아프간 탈출 비행기 탑승을 노렸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미군이 20년만에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한 다음날인 31일 엡테카르는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어디든 나와 가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에 가고 싶었다"며 "여러 국가의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말했다.
엡테카르는 카불공항으로 탈출을 시도하던 중 탈레반 대원들에게 붙잡혀 집단 구타를 당한 사실도 공개했다. 엡테카르는 "탈레반 대원들에게 주먹과 무기, 돌, 군화로 맞았다"며 "상황이 종료된 뒤에는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고 말도 못했다"고 했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여성은 엡테카르뿐만이 아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인터뷰한 아프간 여성 아리파 아마디(가명)는 이날 아침 청바지와 탈레반의 눈엣가시가 될만한 옷들을 전부 불태웠다. 그는 "오빠가 나가서 부르카(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를 사다 줬다"며 "난 울면서 청바지를 태웠고 동시에 희망도 같이 불태웠다"고 말했다.
아마디는 지난 20년간 서방의 지원을 받는 아프간 정부 아래서 교육과 고용 등 일상에 자유를 누린 세대다. 열심히 노력해 파라에 있는 세관 사무소에 취직했지만, 3주 만에 일자리를 잃었다. 탈레반이 사무실을 떠나라는 요청에 여성 상당수가 쫓겨났기 때문이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