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경기 김포시 한 택배업체 터미널에 마련된 CJ대한통운 김포 택배대리점장 이모씨 분향소 주변에 전국 택배대리점 점주들이 보낸 근조화환이 줄지어 놓여 있다. 이씨는 노조를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달 3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연합뉴스
1일 경기 김포시 한 택배업체 터미널에 마련된 CJ대한통운 김포 택배대리점장 이모씨 분향소 주변에 전국 택배대리점 점주들이 보낸 근조화환이 줄지어 놓여 있다. 이씨는 노조를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달 3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경기 김포에서 택배 대리점을 운영하던 40대 이모씨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택배노조원들의 집단 괴롭힘을 못 견디겠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하자 택배노조의 갑질 행태를 둘러싼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규모가 작은 영세 대리점주를 대상으로 과도한 택배 수수료 인상을 요구한 뒤 이를 거부하면 태업에 나서고, 가족에게까지 욕설을 퍼붓는다”는 게 택배 대리점을 운영하는 업주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택배 대리점은 택배기사와 위탁 계약을 맺고 있는 탓에 노조의 집단행동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

○수수료 올려달라며 폭언·태업

"택배노조, 아들·딸에게까지 욕설 퍼부어"…충격받아 대리점 접기도
1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씨는 2006년부터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 택배기사로 일했다. 2013년 회사 측 제안을 받아 김포 장기동에 택배 대리점을 차렸다. 김포한강신도시 입주 시기와 맞물려 배송 물량이 증가하면서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는 18명까지 늘어났다. 김포의 한 택배 대리점주는 “김포장기점은 처음에 젊은 택배기사끼리 사이가 좋고,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전했다.

화목했던 김포장기점에 갈등이 불거진 것은 지난 5월 택배 기사 12명이 노조에 가입하면서부터다. 노조에 가입한 뒤 이들은 자신들이 받는 배송 수수료를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김포장기점은 배송 건당 택배회사에서 856원을 받아 기사와 대리점이 각각 88.8%(760원)와 11.2%(96원)비율로 나눠 가졌다. “기사들이 자신들 몫의 수수료율을 95%(813원)로 맞춰달라고 압박했다”는 게 지역 택배업계의 설명이다. 이는 일반적인 택배 대리점의 기사 수수료율(88~90%)보다 높은 비율이다.

‘정상영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이씨는 노조 요구를 거부했다. 노조는 그때부터 욕설과 태업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무겁거나 부피가 큰 물품부터 배송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남은 물품은 이씨와 비노조 택배기사 몫이었다.

노조원들은 이씨를 돕는 비노조 택배기사에게도 “X 싸놓으신 것 처리하세요” 등 폭언을 했다. 이씨는 유서에 “집단 괴롭힘과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태업에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며 “너희들(노조원)로 인해 죽음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있었단 걸 잊지 말라”고 적었다. 이씨와 친분이 있던 한 대리점주는 “노조원이 일을 하지 않아 장기대리점에는 물품이 하루 1.5~2t씩 쌓여 있었다”며 “노조원들은 택배 분류 작업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대리점장 자리를 두고 노조원과 이씨가 다툼을 벌였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올초 택배 담당 구역을 나누는 ‘분구’ 협상이 결렬되면서 일부 택배기사와 이씨가 갈등을 겪었다”며 “분구 협상과 수수료 인상이 모두 결렬되자 노조원들이 아예 대리점장을 끌어내리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일부 지역만의 일 아냐”

택배노조의 갑질 사례는 김포장기점만의 일이 아니다. 전북 익산에서 9년간 택배 대리점을 운영하던 김모씨는 지난 3월 대리점 문을 닫았다. 1년 반 동안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갑질’을 견디다 못해 내린 결정이었다. 이곳에 소속된 택배기사 10명 중 노조원은 5명이었다. 이들은 김씨에게 “택배 수수료를 올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무를 거부하고 폭언을 퍼부었다고 한다. 김씨는 “아들과 딸 등 가족에게도 욕을 하는데 가족 전체가 충격을 받아 대리점을 관두게 됐다”고 했다.

대리점과 택배 기사가 겪는 갈등의 밑바닥에는 복잡한 고용 구조가 깔려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7년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의 노조 설립을 허용했다. 그 뒤로 택배 회사에서 받는 수수료를 두고 대리점주와 노조 간 갈등이 커졌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현재 택배 회사(원청)는 대리점과 도급계약을 맺고, 대리점은 기사들과 위탁 계약을 맺고 있다. 특수 고용직인 택배기사들은 일하는 만큼 대리점이 책정한 수수료를 받는다. 기사들이 단체행동에 들어가 일하지 않더라도 대리점주들이 업무를 강제할 방법이 없는 구조다.

대리점 관계자들은 “민주노총 같은 거대 노조가 단체 행동에 나서면, 작은 대리점 차원에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수도권의 한 택배 대리점주는 “대리점 가운데 영세한 곳이 많아 노조가 상급단체를 업고 강하게 나오면 제지할 방법이 없다”며 “같이 일하는 기사들 가운데 노조에 가입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기만 바랄 뿐”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노조는 공포 그 자체”라고 덧붙였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고인의 발인이 끝난 뒤 2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양길성/장강호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