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화가, 도예가이자 요리사와 미식가로서 다양한 업적을 남긴 일본의 천재 예술가 기타오지 로산진은 요리의 본질에 대해 “식재료가 지닌 본래의 맛을 죽이지 않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원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대표적인 일본 음식을 꼽는다면 단연 ‘스시(초밥)’다.

‘밥과 생선으로 빚어내는 예술’이라 불리는 스시는 200년 전 에도시대만 해도 가난한 일본 상인들이 식초로 간을 해 뭉친 밥에 선도 좋은 생선살을 얹어 간장에 찍어 먹던 하찮은 음식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스시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찾아 먹을 수 있는 소울푸드로 자리잡았다. 스시가 글로벌 푸드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맛의 현지화’보다 ‘일본 맛의 세계화’를 이룬 덕분이다. 일본 도쿄 쓰키지 시장 안에 있는 작은 스시집, 서울 강남구 신사동 골목의 30년 된 스시집, 미국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 있는 고급 스시집에서 느끼는 맛이 크게 다르지 않다.

스시 세계화의 비결은 재료와 만드는 방법에 있다. 주재료는 생선과 밥이다. 생선살을 잘라 숙성시키되 굽거나 튀기거나 찌는 2차 가공을 하지 않아 샐러드처럼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또 식초와 와사비(고추냉이) 외엔 양념과 향신료를 거의 쓰지 않는다. 만드는 법도 쉽다. 밥에 다양한 재료를 얹으면 돼 누구든 쉽게 도전할 수 있다. 먹는 법 역시 간단하다. 보통 젓가락을 사용한다. 서양에선 손가락으로 집어먹는 핑거푸드로 각광받고 있다. 여타 아시아 음식과 달리 국물이나 소스가 흐르지 않아 도시락 등 간편식으로도 제격이다.

누구든 다양한 조합으로 쉽게 응용이 가능한 점도 스시만의 매력이다. 유럽 어종인 연어를 이용한 연어초밥은 열량이 한 개에 30~40㎉다. 일반 초밥(개당 50㎉)보다 열량이 낮아 대표적인 다이어트 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마키(밥과 다진 생선, 야채를 김에 말아 먹는 스시)에 달콤한 서양식 소스를 넣어 만든 ‘캘리포니안 롤’도 변형된 스시의 한 종류다.

한 접시에 여러 종류를 담아 내놓는 작은 스시집부터 포장·배달해 먹을 수 있는 스시 도시락 전문점, 컨베이어 벨트 위로 돌아가는 접시를 골라 먹는 회전 초밥집, 주방장이 그날 가장 좋은 생선들로 빚는 고급 스시 오마카세(주방장 특선)까지 스시 식당은 다양하다. 스시를 먹는 장소와 만드는 사람은 다르지만 예쁜 모양으로 눈을 만족시키고 생선·밥·식초·와사비가 조화를 이룬 오묘한 맛으로 혀를 자극하는 건 비슷하다. 다양한 식재료가 밥과 어우러져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스시를 깊이 들여다봤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