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일상화된 재택근무
수시로 화상회의·업무일지 작성
보고서 작성횟수도 급격히 늘어
"예전에 없던 마감시간 생겼다"
기업 절반은 "업무 효율성 하락"
업무시간보다 성과 측정에 집중
다른 10대 그룹 계열사의 김모 인사담당 부사장은 얼마 전 직원들의 생산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순환 재택근무를 도입한 지 1년이 지나면서 업무 집중도가 떨어진 결과다. 현업 부서에서 “효율적으로 일할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는 호소가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맞춤형 근태관리’ 강화하는 기업들
3일 경제계에 따르면 지난해 초 발생한 코로나19는 국내 기업들의 근무 방식을 순식간에 바꿔놨다. 먼 미래의 일처럼 들렸던 재택근무는 어느새 일상이 됐다. 지난 7월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된 이후 삼성 현대자동차 LG SK를 비롯한 상당수 대기업에서는 전체 인력(사무직 기준)의 20~50%가량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재택근무 방식은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만큼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과거로 되돌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재택근무를 도입한 기업 대부분은 사내 인트라넷 접속 여부로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기업들이 운영하는 인트라넷은 자동으로 직원 접속시간이 기록돼 출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접속 후 일정 시간 인트라넷에서 입력 등의 작업이 전혀 없으면 자동 로그아웃되기 때문에 장시간 자리를 비우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한 중견 정보기술(IT) 업체는 최근 재택근무 직원들에게 컴퓨터 카메라를 켜고 근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퇴근 때 그날 진행한 업무를 기록한 일지를 제출하도록 한 회사도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다. 보고서 작성 횟수가 늘어난 회사도 많다. 예전에는 구두로 보고하던 사안도 정식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정착되는 성과 중심 인사평가
기본적인 근태를 관리하는 시스템은 구축됐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고민에 빠져 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과거와 같은 생산성을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매출 상위 600대 기업(130개 회사가 응답)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재택근무 시행 이후 “업무 효율성이 떨어졌다”고 답한 비율은 46.1%에 달했다. “높아졌다”는 답변은 10.1%에 그쳤다. 한 대기업 사장은 “최근 CEO(최고경영자) 모임에서 ‘월급루팡’(월급만 받고 일을 안 하는 직원을 일컫는 신조어)이 늘어나고 있어 당황스럽다는 얘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기업들은 구글 등 글로벌 기업처럼 철저히 성과를 앞세우는 평가체계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기업의 인사관리 및 근무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모두 같은 공간에서 일할 때는 근무 태도나 노력하는 모습 등 객관적 지표에 담을 수 없는 부분도 평가에 반영할 수 있었지만 비대면 근무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객관적 지표만 인사평가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인사담당 임원은 “이제 근무 장소와 상관없이 ‘성과’로 증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사무실에서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에 따른 재택근무 일상화로 OKR(목표 및 핵심 결과지표) 근무 방식이 정착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OKR은 구글 등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성장동력으로 알려진 성과 관리 기법이다. 조직이 정한 목표에 맞춰 단계별 성과지표를 정해 이를 달성하도록 조직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직원들에게 높은 유연성과 자율성을 부여하되 성과로 평가하는 구글식 평가기법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재택근무가 자리잡으면서 성과 위주로 평가 기준이 옮겨가고 있다”며 “글로벌 기업처럼 성과를 얼마나 도출해내는지에 초점을 둔 OKR 방식이 자리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경민/남정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