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신궈지(SMIC)는 중국 반도체 굴기의 선봉으로 꼽히는 기업이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미국이 중국 기업에 대해 각종 제재를 가장 많이 퍼부은 영역이 반도체다. 중국은 중신궈지를 중심으로 반도체 투자를 늘리면서 기술 자립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 5위 파운드리

중신궈지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5위를 달리고 있다. 점유율은 5% 안팎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TSMC가 50%, 삼성전자가 20% 수준으로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와 대만 UMC가 7~8%씩이며 중신궈지가 그 다음이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수탁생산이라고도 한다. 반도체를 제품 기준으로 나누면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구분할 수 있는데, 글로벌 시장 규모로 보면 비메모리가 70%고 메모리가 30% 정도로 비메모리 시장이 두 배 이상 크다.

반도체는 매년 막대한 설비 투자를 해야 하는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비메모리는 종류가 다양해서 설계와 생산이 분업화돼 있다. 설계 전문업체는 공장인 팹이 없다는 의미에서 팹리스, 생산 전문업체는 파운드리라고 부른다.

반도체 투자 몰아주기 수혜

중신궈지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중국이 국가적으로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은 반도체 부문에 있어선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국가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반도체 산업 육성 의지를 본격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낸 게 2014년 반도체산업 발전 추진 요강을 내놓은 것이다. 2014년에 1390억위안(약 24조원) 규모 국가반도체산업투자펀드를 조성했고 2019년에도 2040억위안(35조원) 규모 2차 펀드를 조성했다. 이 반도체 펀드들을 '빅 펀드'라고 부른다.

2차 빅펀드가 1차와 다른 부분은 선택과 집중이다. 1차 빅펀드는 반도체를 하겠다는 기업들에게 '묻지마' 투자를 했다. 정부와 민간에서 2조원 넘는 자금을 유치했다가 작년에 도산한 우한훙신반도체처럼 '먹튀' 사례도 속출했다.

2차 펀드는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목표다. 특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반도체에 투자하는 흐름을 보면 2차 빅펀드의 절반 이상이 중신궈지로 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신궈지는 현재 베이징에 620억위안(약 11조원)을 들여서 반도체 공장 4개를 짓고 있다. 선전에는 165억위안(약 2조6000억원)을 투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주력 공장이 있는 상하이에는 800억위안(약 14조원)을 들여서 초미세공정 공장을 새로 짓기로 했다. 또 천진과 닝보 같은 주요 거점들에도 총 200억위안(약 3조5000억원)을 투자하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알려진 것만 더해도 30조원이 넘는다. 해당 프로젝트들마다 각 지방정부가 매칭 투자를 하고 있으며 '빅펀드' 자금도 투입된다.

중신궈지는 중국 국유기업 중에서도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기업이다. 중국 국유기업은 국무원 국유자산관리위원회 아래 있는 중앙기업과 각 성이나 시가 보유한 기업으로 구분한다. 중신궈지의 최대 주주는 중국정보통신과학기술이라는 국가기관이고 지분 11.8%를 갖고 있다. 1차 빅펀드인 국가반도체산업투자펀드가 갖고 있는 투자회사인 신신투자회사가 10.2%를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정부 보유 지분이 20%를 조금 넘는다.

실적 개선에도 주가는 횡보

작년 매출은 274억위안(약 4조7000억원)이었다. 2019년 대비 25%가량 늘었다. 순이익은 43억위안(약 7000억원)이었고 2019년보다 2.4배 급증했다. 이런 추세가 올 상반기에도 이어졌다. 상반기 매출은 160억위안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22% 커졌다. 순이익은 52억위안으로 278% 급증했다.

실적 개선은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같은 기술 발전으로 반도체가 더욱 많이 쓰이고 있는데다,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대되면서 관련 기기 시장도 커졌다. 파운드리업계의 증설은 이런 수요 증가를 따라잡기엔 아직 부족해서 당분간 실적 호조가 계속될 것으로 중신궈지는 전망했다.

중신궈지는 현재 중국본토 상하이거래소 커촹반(종목코드 688981)과 홍콩거래소(00981)에 상장돼 있다. 커촹반은 선전거래소 촹예반과 함께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과학기술기업 중심 시장이다. 중신궈지는 2004년에 뉴욕과 홍콩에 동시 상장했다가 2019년 뉴욕 상장을 자진 폐지했다. 그 다음 작년 8월 상하이에 입성했다. 당시 530억위안(약 9조원)을 조달했다. 상장 첫날에는 공모가보다 3.5배 오른 82위안을 기록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주가는 계속 50위안대에 머물러 있다. 주가 55위안 기준 시가총액은 4300억위안(약 75조원)이다. 실적이 좋은데도 주가가 안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제재를 꼽을 수 있다.

미국의 집중적 제재는 최대 부담

중신궈지는 현재 두 가지 제재를 받고 있다. 하나는 반도체 관련 소재 부품 장비 거래를 제한하는 조치다. 미국 기업이든 외국 기업이든 중신궈지와 거래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신궈지는 반도체 장비 중에서 핵심 장비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장비업체들을 육성하고 있지만 아직 기술 격차가 큰 상황이다.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세계에서 네덜란드의 ASML 밖에 만들지 못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구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신궈지는 초미세공정에서 현재 14㎚ 공정에 막 돌입한 상태다. 세계 1위와 2위인 TSMC와 삼성전자는 5㎚ 공정에서 모두 ASML의 장비를 쓰고 있다.

미국은 지난 3월 ASML이 중신궈지와 맺은 공급 계약을 올해 말까지 연장하는 걸 승인해 줬다. 하지만 EUV 노광장비가 아니라 기존에 공급하던 장비 범위 내에서만 허가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자국 반도체 소재·장비업체들에게 SMIC와의 거래를 일부 승인해 주고 있다. 자국 반도체 소재 장비업체들이 실적이 악화되자 지속적으로 정부에 거래 허가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SMIC가 미국으로부터 받는 다른 제재는 투자 제한이다. 중국 군과 관계있는 기업에 대한 미국인과 미국 기업의 투자를 금지하는 조치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작년 11월에 나왔던 제재다. 당시에는 국방부가 투자 금지 기업 리스트를 작성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담당 부서를 재무부로 바꾸고 중신궈지를 포함해 블랙리스트 기업 59개를 내놨다. 지난달 2일부터 시행됐다. 해당 리스트 기업에 투자하려면 재무부 허가를 받아야 하며 기존 투자자들은 1년 내에 지분을 팔아야 한다. 다만 중신궈지가 뉴욕증시에서 이미 떠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투자 제한 제재는 장비 구매 제한보다는 영향이 적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인재 영입에 박차

중신궈지는 2019년에 14㎚ 공정 개발을 마쳤다고 발표했다. 실제로는 지난해 5월부터 화웨이에 14㎚ 공정의 스마트폰 AP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AP,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는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 칩이다. 중신궈지는 2011년에 40㎚ 수준이었는데 2015년에 28㎚로 들어갔다. 4년 뒤인 2019년에 다시 14㎚로 끌어올렸다. 5㎚인 TSMC나 삼성전자에 비하면 세대로는 3세대, 햇수로는 5년 이상 뒤쳐져 있는 상황이다.
중신궈지를 주목하는 점 중 하나는 인재 부분이다. 중신궈지의 최고경영자(CEO)는 TSMC 출신의 량멍쑹이다. 량멍쑹은 TSMC에서 1992년부터 2009년까지 일했고, 2011년 삼성전자로 옮겼다가 다시 2017년 중신궈지로 이직했다. 그가 합류한 뒤 2년이 지난 2019년 중신궈지는 14㎚ 공정을 개발해 냈다. 중신궈지는 또 지난 7월 전체 직원의 20% 정도 되는 4000여명에게 특별 스톡옵션도 지급했다. 한 주당 행사 가격이 20위안이니까 현재 주가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