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리 10% 웃돌던 美 투기채권…3%대로 곤두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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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익 맞추라' 압박에 기관들 매수
하이일드 채권 금리 연 3.53% '역대급'
아예 평가등급 없는 북유럽 채권 사기도
빌 그로스 "현금 외 채권도 쓰레기 통에"
하이일드 채권 금리 연 3.53% '역대급'
아예 평가등급 없는 북유럽 채권 사기도
빌 그로스 "현금 외 채권도 쓰레기 통에"
‘일단 사라’
미국 월스트리트에 채권 투자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 받는 채권에 기관투자가들의 매수세가 붙은 것이다. 작년 봄 연 10%를 훌쩍 넘었던 미국의 투기등급(하이일드) 채권 수익률이 연 3%대까지 곤두박질했다.
미 채권 시장에서 과거엔 잘 취급하지 않던 작은 기업의 채권까지 사재기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량 등급 채권만으로는 도저히 기대 수익률을 맞출 수 없어서다.
블룸버그 바클레이스에 따르면 미 투기등급 채권의 평균 수익률은 최근 연 3.53%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저치다. 이달 초 현재 연 3.82% 수준으로 소폭 상승했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직전과 비교하면 1%포인트 이상 낮은 숫자다. 이 채권 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최고 연 22.81%, 팬데믹 직후였던 작년 3월엔 연 11.57%까지 치솟았다. 투기등급 채권 금리가 역대급으로 낮아지면서 채권 운용역들에겐 커다란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기대 수익을 맞추지 못하는 것은 물론 향후 부실화 가능성 부담까지 떠안게 돼서다.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슈로더의 데이비드 크누슨 미주 신용조사 책임자는 “지금 시장에서 수익률 기대치를 맞추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금융회사 경영진은 채권 운용역들을 대상으로 “더 높은 성과를 내라”고 압박하고 있다. 다른 자산 가격이 대부분 많이 뛴 상태여서 마땅한 운용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운용역들이 역대급으로 낮은 수익률을 보이는 투기등급 채권에 주목하고 있는 배경이다. ‘트리플 C’ 이하의 하이일드 채권을 매입하면, 높은 등급의 채권보다 조금이라도 수익을 더 낼 수 있다.
올해 초만 해도 투자자들이 트리플 C 등급을 사들일 경우 연 2.79%포인트의 추가 수익(스프레드)을 기대할 수 있었다. 바로 위 등급의 채권과 비교해서다. 하지만 지난 7월 이 추가 수익은 연 1.51%포인트로 축소됐다. 2007년 등 예외적인 시기를 빼놓고선 지난 20년래 가장 낮은 수치다.
일부 투자회사는 색다른 투자 전략을 취하고 있다.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매닝&네이피어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작년 가을부터 S&P 등 3대 평가사에서 등급을 매기지 않는 회사채를 골라 투자하고 있다.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데도 거래 빈도가 낮은 회사채를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다만 이를 위해선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3대 신용평가사가 평가하지 않는 채권에 투자하는 대신 연 5% 정도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일반 하이일드 채권의 평균 수익률 대비 최대 1.5%포인트 정도 높다.
다만 유동성이 낮은 채권을 보유하는 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시장 침체기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채권을 시장에 매각해야 하는데 유동성이 낮은 채권을 파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전체 채권 투자에서 제한적으로만 이런 전략을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북유럽 은행들이 신디케이션(차관단 구성) 방식으로 발행하는 투기등급 채권 물량이 급증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금융정보 회사인 스탬데이터에 따르면 고수익-고위험의 노르딕(북유럽계 주관) 채권 발행액은 올 들어 160억달러 규모로 집계됐다. 역대 최대인 것은 물론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전체보다도 5%가량 많다. 크리스티안 판데 혼 악틱증권 기업금융 책임자는 “조금이라도 수익률을 높이려는 미국 투자자들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발행 물량이 크게 늘었다”며 “전체 발행 물량의 10%를 미 투자자 한 곳이 가져간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엔 보기 어려웠던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도 미국 국채 등 채권을 쓰레기에 비유했다. 그는 이달 3일 투자전망 보고서를 통해 “높은 가격과 낮은 금리를 고려할 때 채권은 투자 쓰레기”라고 혹평했다. 미 중앙은행(Fed)이 조만간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에 나설텐데,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 금리는 급등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예측이다.
그는 “현금은 오래 전부터 쓰레기였지만 이제는 새로운 경쟁자가 생겼다”며 “중·장기 채권펀드는 분명 그 쓰레기통에 포함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미국 월스트리트에 채권 투자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 받는 채권에 기관투자가들의 매수세가 붙은 것이다. 작년 봄 연 10%를 훌쩍 넘었던 미국의 투기등급(하이일드) 채권 수익률이 연 3%대까지 곤두박질했다.
미 채권 시장에서 과거엔 잘 취급하지 않던 작은 기업의 채권까지 사재기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량 등급 채권만으로는 도저히 기대 수익률을 맞출 수 없어서다.
블룸버그 바클레이스에 따르면 미 투기등급 채권의 평균 수익률은 최근 연 3.53%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저치다. 이달 초 현재 연 3.82% 수준으로 소폭 상승했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직전과 비교하면 1%포인트 이상 낮은 숫자다. 이 채권 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최고 연 22.81%, 팬데믹 직후였던 작년 3월엔 연 11.57%까지 치솟았다. 투기등급 채권 금리가 역대급으로 낮아지면서 채권 운용역들에겐 커다란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기대 수익을 맞추지 못하는 것은 물론 향후 부실화 가능성 부담까지 떠안게 돼서다.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슈로더의 데이비드 크누슨 미주 신용조사 책임자는 “지금 시장에서 수익률 기대치를 맞추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금융회사 경영진은 채권 운용역들을 대상으로 “더 높은 성과를 내라”고 압박하고 있다. 다른 자산 가격이 대부분 많이 뛴 상태여서 마땅한 운용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운용역들이 역대급으로 낮은 수익률을 보이는 투기등급 채권에 주목하고 있는 배경이다. ‘트리플 C’ 이하의 하이일드 채권을 매입하면, 높은 등급의 채권보다 조금이라도 수익을 더 낼 수 있다.
올해 초만 해도 투자자들이 트리플 C 등급을 사들일 경우 연 2.79%포인트의 추가 수익(스프레드)을 기대할 수 있었다. 바로 위 등급의 채권과 비교해서다. 하지만 지난 7월 이 추가 수익은 연 1.51%포인트로 축소됐다. 2007년 등 예외적인 시기를 빼놓고선 지난 20년래 가장 낮은 수치다.
일부 투자회사는 색다른 투자 전략을 취하고 있다.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매닝&네이피어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작년 가을부터 S&P 등 3대 평가사에서 등급을 매기지 않는 회사채를 골라 투자하고 있다.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데도 거래 빈도가 낮은 회사채를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다만 이를 위해선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3대 신용평가사가 평가하지 않는 채권에 투자하는 대신 연 5% 정도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일반 하이일드 채권의 평균 수익률 대비 최대 1.5%포인트 정도 높다.
다만 유동성이 낮은 채권을 보유하는 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시장 침체기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채권을 시장에 매각해야 하는데 유동성이 낮은 채권을 파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전체 채권 투자에서 제한적으로만 이런 전략을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북유럽 은행들이 신디케이션(차관단 구성) 방식으로 발행하는 투기등급 채권 물량이 급증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금융정보 회사인 스탬데이터에 따르면 고수익-고위험의 노르딕(북유럽계 주관) 채권 발행액은 올 들어 160억달러 규모로 집계됐다. 역대 최대인 것은 물론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전체보다도 5%가량 많다. 크리스티안 판데 혼 악틱증권 기업금융 책임자는 “조금이라도 수익률을 높이려는 미국 투자자들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발행 물량이 크게 늘었다”며 “전체 발행 물량의 10%를 미 투자자 한 곳이 가져간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엔 보기 어려웠던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도 미국 국채 등 채권을 쓰레기에 비유했다. 그는 이달 3일 투자전망 보고서를 통해 “높은 가격과 낮은 금리를 고려할 때 채권은 투자 쓰레기”라고 혹평했다. 미 중앙은행(Fed)이 조만간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에 나설텐데,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 금리는 급등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예측이다.
그는 “현금은 오래 전부터 쓰레기였지만 이제는 새로운 경쟁자가 생겼다”며 “중·장기 채권펀드는 분명 그 쓰레기통에 포함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