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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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등 4대 공적 연금의 부실이 우려한 것보다 훨씬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1~2025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올해 6조6763억원인 3대 직역연금 (공무원·사학·군인연금)의 적자는 2025년 11조2499억원으로 2배 가량 치솟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같이 적게 부담하고 많이 받는 방식으로 잘못 설계됐기 때문이다.

이런 적자를 메우기 위해 필요한 국민 세금이 올해에만 7조원, 2025년에는 11조원으로 추정된다. 연금 지출은 ‘자기부담 원칙’에 따라 자체조달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큰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다보니 관련법에 따라 공무원연금은 2001년, 군인연금은 1973년부터 세금 지원을 받고 있다. 이 정부 들어 공무원 숫자가 급증한 점을 감안하면 향후 ‘세금 땜질’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더구나 그간 흑자를 유지해온 사학연금마저 2023년 8000억원대의 대규모 적자를 시작으로 부실이 본격화된다.

3대 직역 연금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다. 아무리 긍정적 시나리오를 돌려봐도 20년 내에 적자전환 하고, 30~40년 뒤에는 기금 고갈이 불가피한 것으로 계산된다. 지금 20~30대라면 돈만 내고 연금은 받지도 못하는 기막힌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치명적 문제점을 잘 알기에 역대 정부는 인기없는 일임에도 모두 연금개혁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YS는 1차 공무원 연금 개혁, DJ는 1차 국민연금 개혁과 2차 공무원연금 개혁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2차 국민연금 개혁을 밀어붙였고 이명박 대통령은 3차 공무원연금 개혁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더 내고 덜 받는' 4차 공무원 연금 개혁안을 관철했다.

유독 현 정권만 그 어떤 연금에도 손대지 않고 있다. 2년전 경사노위가 제시한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국회 논의가 유보된 점을 빌미로 추진 자체를 중단하는 황당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제시된 안들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질책한 데 따른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개혁은 해야 하지만 국민부담이 늘어서도 안 된다'는 식의 이율배반적인 목표를 제시한 대통령을 만족시킬 마법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달아오른 대선판에서도 온갖 퍼주기 공약이 난무할 뿐 시급한 연금개혁을 말하는 후보는 찾기 힘들다. 유승민 국민의힘 후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부호 정도만 제한적 범위의 연금개혁을 언급을 했을뿐이다. '지속가능 방향으로의 과감한 연금개혁이 필요하다'며 개혁을 약속했던 윤희숙 의원은 아쉽게 중도사퇴했다.

대통령 임기 말인 지금이 연금개혁에는 오히려 적기다. 굳이 지지율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시기인 데다, 여당은 과반의석을 갖고 있다. 야당이 반대할 이유도 없다. 보험료는 다소 올리고 지급액은 낮춰야 한다는 개혁방향도 분명하게 제시돼 있다. 마음만 먹으면 임기내 연금개혁이 충분한 여건이다. 직장인의 ‘유리지갑’을 터는 ‘전 국민 고용보험’식의 생색내기보다 공적연금의 ‘밑빠진 독’을 수리하는 게 훨씬 다급한 국정과제다. 지금 여야 정치권과 전문가로 구성된 공적연금 개혁특위를 구성해야 한다. 임기내 연금개혁을 안한 유일한 정권이라는 비난과 책임공방에 두고두고 시달릴 일을 자초해서야 되겠나.

백광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