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사옥 [사진=연합뉴스]
네이버 사옥 [사진=연합뉴스]
올 하반기 '조직문화 개선'을 역점 과제로 제시한 한성숙 네이버 대표의 구상에 빨간불이 켜졌다. 네이버 산하 공익재단 해피빈에서 직장 내 괴롭힘 논란이 불거져서다. 당사자 양측 입장차가 커 조사를 통해 사안을 파악하기로 했지만 조직 내 잡음이 이어져 귀추가 주목된다.

"직장 내 괴롭힘에 정신 치료" vs "사실과 달라"

7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해피빈에서 근무했던 일부 전직 직원들은 2015년부터 A실장으로부터 폭언과 괴롭힘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2015년 이후 총 15명이 회사를 떠났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A실장의 폭언 때문이라고도 했다. 일부는 폭행까지 당했다고 진술했다.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진정서를 제출한 상태다.

이에 따르면 전직 직원들은 A실장이 회의 중 소리를 지르며 손찌검을 해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는 일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A실장이 신체나 외모를 소재로 한 농담을 해 모욕감을 느낀 경우도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문제의 최종 책임이 조직관리 책임자인 최인혁 해피빈 대표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간 A실장의 괴롭힘을 최 대표에게 알렸지만 오히려 개인 실적을 언급하는 등의 태도로 방관했다고 부연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A실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강력 반박했다. 그는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기관을 통해 폭언, 폭행 내용의 사실 여부에 대한 확인 절차를 조속히 밟아주길 요청한다"며 "사실과 다른 보도에 회사 및 개인 생활을 이어나가기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해피빈에서 근무 중인 직원 10여 명도 "해피빈의 업무 분위기 상 회의 자리에서의 폭행, 모욕 등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며 "퇴사한 직원들이 악의적으로 사실이 아닌 내용을 증언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네이버도 자체 조사에 나섰다. 네이버는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네이버 직원 사망사건을 계기로 출범한 '판교 정보기술(IT) 사업장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네이버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절차를 시작하기는커녕 가해자 말만 듣고 사실무근이라 반박부터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 [사진=연합뉴스]
한성숙 네이버 대표 [사진=연합뉴스]

한성숙 대표 '조직문화 개선' 첫 손에 꼽았건만…

네이버는 올 상반기 한 직원이 자택 근처에서 숨진 채로 발견돼 홍역을 치렀다. 현장에서는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내용 등이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 네이버 노조는 "고인이 생전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위계에 의한 괴롭힘을 겪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네이버는 뒤늦게 최인혁 대표와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책임 리더 직무를 정지시켰다.

한 대표도 올 2분기 실적발표 후 이어진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부분에 대해 하반기 최우선적으로 개선해나가겠다"며 '조직 문화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카카오, 쿠팡과의 경쟁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도 내부를 먼저 들여다보겠다고 공언했다. 더 이상 네이버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한 대표의 의지가 담긴 대목이라 평가 받았다.

하지만 이 같은 공개 발언이 나온 지 불과 두 달여 만에 또다시 직장 내 괴롭힘 이슈가 불거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는 직장 내 괴롭힘뿐 아니라 임금 체불 문제도 정치권과 정부로부터 지적받고 있다. 비대해진 조직 규모에 걸맞게 시스템을 반드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네이버의 노무 이슈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10일 오전 서울 민주노총에서 '판교 IT 사업장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1.8.10 [사진=연합뉴스]
10일 오전 서울 민주노총에서 '판교 IT 사업장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1.8.10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지난 7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동부로부터 네이버 특별감독 조사결과 자료를 받고 이를 공개했다. 올해 5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숨진 직원은 상사의 폭언과 모욕적 언행, 과도한 업무 압박, 왕따 등을 지속적으로 당했을 뿐 아니라 수당 체불도 상습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골자였다. 네이버가 최근 3년간 재직·퇴직 근로자 4828명에게 미지급한 연장·야간·휴일수당은 86억7000여만원에 달했고, 주 52시간 근무제 미준수는 물론 임신 중인 여성근로자에게 야간·휴일근로를 지시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노 의원은 "전 직원 4명 중 1명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사실은 최고경영진이 이를 방치하고 묵인했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기본적 인권을 무시한 네이버에 대한 국정감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 철저한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도 고용부가 지난달부터 네이버에 여러 차례 체불금액 청산을 지도했지만 네이버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얼마 전 안타깝고 비극적인 네이버 직원 극단 선택 이후 폭언·폭행·성희롱 등 직장 내 괴롭힘 노동법 위반도 다수 적발된 만큼 위반사항에 대한 적극적이고 신속한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반면 네이버는 노 의원이 짚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에 대해 불리한 처우를 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회사에 신고된 건에 대해서는 모두 신고자와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 가능한 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86억7000여만원 임금체불과 관련해서는 "수당을 미지급한 경우는 없다"고 반박했다. 2018년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면서 업무의 시작 및 종료 시간 등을 개인이 스스로 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기준 근무 시간인 주 40시간 미만 근무자에 대해서도 별도 급여 차감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기준근로시간 초과 근로 방지를 알리고 파악하는 노력 등은 다소 부족했다며 후속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