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후계자 선정 시 고려해야 할 요소는 개인 역량보다는 기업에 대한 애정과 헌신입니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사진)은 “단순히 경영 역량만으로 후계자를 뽑았다가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사례가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기업 승계는 일반 상속과 달리 ‘기업가 정신’의 대물림이자 ‘제2의 창업’”이라며 “창업세대의 고령화로 중소·중견기업의 세대 교체가 빨라지고 있어 후계자 선정과 육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최고 기업 승계 전문가인 조 원장은 독일 퀼른대 법학박사(경제공법) 출신으로, 기업은행 초대 IBK경제연구소장과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를 거쳐 2019년부터 중견기업연합회 산하 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200년 이상 장수기업 1800여 개가 있는 독일을 비롯해 미국 일본 이탈리아 등 기업의 사례를 토대로 최근 저서 《가족기업의 성공승계 전략》을 출간했다. 해외 300여 개 서적과 논문을 참조해 6년에 걸쳐 집필한 것으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과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이 추천사를 썼다.

그는 이 책에서 후계자 선정 기준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관심과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후계자로서 특권과 혜택을 누리기 앞서 기업과 근로자를 섬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나이나 성별보다는 경영 기술, 재무관리 역량 등이 더 중요한 변수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진국의 장수기업일수록 후계자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이 책에서 예로 든 230여 년 된 맥주 천연원료 제조회사 독일 조바스&손의 경우 후계자는 반드시 △4개 국어 이상 구사 △5년간 관련 분야 외부 경력 △해외지사 근무와 현장근무 경력 등을 갖춰야 한다.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은 △자력으로 명문대 졸업 △해운사관학교 입학 △세계 금융 중심지 실무 경험 등의 조건을 지켜야 한다.

조 원장은 후계자 선정 시기에 대해선 “자녀들 간에 역량 격차가 크다면 더 뛰어난 자녀를 빨리 후계자로 지정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장기간 경쟁을 통해 선정해야 하지만 선정 시기를 놓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세대가 일상적인 대화에서 “언젠가는 사업을 접겠다”는 식의 부정적인 말을 2세에게 절대로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또 자기의 경영 스타일을 닮은 후계자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많은데,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창업자의 성공 요인이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후계자를 회사 내에서만 교육할 경우 직원과의 소통이나 내부 사정 파악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으나 전략적 마인드와 대외 네트워크는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후계자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면 5~7년 정도 외부에서 근무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을 추천했다.

한편 그는 책에서 150년 이상 된 독일 장수기업을 비교·분석한 결과 △고유 사업 분야에 집중 △적극적인 연구개발(R&D) △전문가 육성 △협력사 상생 △해외 시장 중시 등의 공통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해외 명문 장수기업은 대부분 승계 관련 엄격한 원칙을 세우고 이를 지켜 나가고 있었다”며 “국내 664만 개 중소·중견기업에서도 원만한 승계로 기업의 영속성이 이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