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의 빈국 엘살바도르가 7일(현지시간) 세계에서 처음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맥도날드 등 일반 소매점에선 비트코인 결제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암호화폐 가격은 전 세계 거래시장에서 폭락세를 연출했다.

엘살바도르는 2001년 법정 통화로 채택한 미국 달러와 함께 이날부터 비트코인을 공용 화폐로 인정했다. 물건을 사고 팔 때 비트코인을 사용할 수 있고 정부 세금 역시 코인으로 납부할 수 있다. 이발 등 서비스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엘살바도르는 국민의 70%가 은행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해외 이민자들이 보내오는 송금액이 작년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 달할 정도로 송금 의존도가 높다. 결제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국민들의 수수료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란 게 정부의 판단이다. 엘살바도르의 전체 인구는 680만여 명, 1인당 GDP는 작년 기준 3794달러였다.

나이가 40세에 불과한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비트코인을 사용하면 이민자들이 본국 송금을 훨씬 저렴하게 할 수 있고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라면서 비트코인 도입을 강력히 추진해왔다.

하지만 국민들 사이에선 부정적인 반응이 훨씬 많다. 대다수가 암호화폐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수차례 여론조사에서도 70% 안팎이 “비트코인의 법정화폐 도입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면 국민 부담이 커질 것이란 이유다. 돈세탁 등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민간 불법 거래의 문을 열어 제치는 조치”라는 성명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법정통화 인정을 하루 앞두고 한 번에 200개씩, 총 400개의 비트코인을 매입했다. 매입 당시 시세로 따지면 약 2000만달러 규모다. 정부는 7일 오전에 또 150개(약 700만달러어치)를 추가로 매수했다. 부켈레 대통령은 “저가 매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정식 통용을 앞두고 전국 곳곳에 비트코인을 달러로 입출금할 수 있는 현금입출금기(ATM)를 200대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트코인 결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소매점이 훨씬 많다는 게 현지 언론의 보도다. 한 소매 상인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다수가 정보 부족 때문에 비트코인을 받아도 될 지 걱정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암호화폐의 대장 격인 비트코인 가격이 7일(현지시간) 글로벌 시장에서 급락했다. 코인베이스 제공
암호화폐의 대장 격인 비트코인 가격이 7일(현지시간) 글로벌 시장에서 급락했다. 코인베이스 제공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 가격은 이날 급락했다. 전날까지 이어오던 급등세가 반전한 것이다.

미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이날 정오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개당 4만7000달러 선에 거래됐다. 24시간 전과 비교해 9%가량 떨어진 수치다. 비트코인 가격은 전날만 해도 5만2000달러를 훌쩍 넘었다.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과 도지코인, 카다노, 이오스 등 알트코인 가격은 더 빠지고 있다. 24시간 전 대비 10~20% 정도의 폭락세를 보이고 있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도입 발표 후 급등세를 탔으나 막상 현실화하자 차익 매물이 쏟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라’는 증권가의 격언 그대로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