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희 동생들 "백건우 부녀, 재정 능력 충분한데 6인실 고집"

원로배우 윤정희 방치 논란
윤정희 동생들 "한 달에 한 번만 연락 가능해"
백건우 측 "윤정희 동생들, 심적 불안 초래 가능성"

배우 윤정희와 피아니스트 백건우 부부. /사진=한경DB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는 배우 윤정희가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딸로부터 방치됐다는 논란이 'PD수첩'을 통해 재점화됐다.

지난 6일 방송된 MBC 'PD수첩'은 '사라진 배우, 성년후견의 두 얼굴'이라는 부제로 배우 윤정희 방치 논란을 통해 성년후견 제도의 현주소를 전했다.

성년후견인은 질병, 장애, 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성인에게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후견인은 법정대리인 역할을 하며 법원이 지정한 범위 안에서 신상과 재산, 상속에 관한 권한을 갖는다.

백건우 부녀는 2019년 5월 프랑스에서 아내 윤정희의 형제자매들과 후견인 선임을 두고 법정 분쟁을 벌였다. 윤정희의 동생들은 공동 후견인을 신청했으나 지난해 11월 파리고등법원의 판결로 윤정희의 딸 백진희(44) 씨가 최종 승소했다. 공동후견인으로는 프랑스의 한 후견협회가 선임됐다.

윤정희는 2019년 1월 어머니의 부고를 접하고 국내에 귀국해 장례를 치렀다. 한국에서 동생들과 지내던 윤정희는 단기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져 하루에도 몇 번씩 백건우에게 연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백건우는 피곤하다며 연락을 피하겠다는 메시지를 윤정희의 여동생에게 보내기도 했다고.

여동생은 "(백건우가) '나는 언니를 안 보겠다'고 했다. 언니가 자기에 대해 물어보면 생각나지 않게 (말) 하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윤정희 동생들은 그해 4월 29일 갑자기 나타난 백건우와 딸 백 씨에 의해 윤정희가 서둘러 프랑스로 향했고 즐겨 사용하던 가방과 치매약까지 그대로 놓고 떠나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윤정희의 딸 백 씨는 프랑스 법원에 윤정희의 후견인 선임을 신청했다. 백 씨는 자택 근처에 집을 매입해 윤정희를 돌보겠다고 했다.

프랑스 법원은 윤정희의 딸 손을 들어줬다. 가족 우선주의라는 원칙이 민법으로 정해져 있으며 가족 중 배우자, 직계가족, 같이 거주하거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친지, 지인 순으로 후견인을 찾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정희의 후견인이 딸이 된 후 윤정희 동생들의 연락은 철저히 제한됐다고 동생들은 주장했다. 전화는 2주 전 요청해 한 달에 한 번, 만남은 한 달 전 요청해 3개월에 한 번 가능했다.

남동생 손병욱(58)씨는 2019년 9월 병원에 입원한 윤정희를 만났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넉 달 만에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나. 얼굴이 완전히 허옇더라"라고 떠올렸다. 당시 윤정희는 화장실에 가려다 대퇴부 경부가 골절됐고 이후 탈수증으로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생들은 윤정희를 요양병원 독방에서 보살피고 싶어 했지만 백건우는 6인실을 고집했다고 주장했다. 동생 손 씨는 "배우자가 힘든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윤정희는) 시설이 좋은 요양시설에서 지낼 만큼 재정능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윤정희는 서울에 자신의 명의로 된 총 시세 44억 원에 달하는 아파트 2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철옹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굉장히 드문 경우인데 후견인의 권력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후견인이 된 후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부분"이라며 "넓게 교류하도록 돕는 것이 후견인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윤정희 후견인 측은 동생들이 윤정희의 사진을 촬영하고 배포한 뒤 경제적 이득을 취하거나 이미지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했다. 또 배우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영화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해 심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딸 백 씨는 'PD수첩'에 "제대로 된 세상이라면 진실을 보도할 거다. 저도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 논란을 키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어 "선생님과 동료가 집에 오는 건 절대 안 된다. 아픈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거다. 베가 보호해 드리고 있으니 성가신 일을 벌이고 싶다면 저와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건우는 "어쨌든 딸이 법적 보호자니 그쪽에서 한마디 하는 것은 맞다"며 후견인에 대해 "나와 딸이 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이후 제작진이 수차례 연락을 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윤정희 딸 백 씨는 지난해 10월 서울가정법원에도 윤정희의 후견인을 자신으로 선임해달라는 성년후견개시 심판을 청구했다. 동생 측은 "윤정희가 보고 싶다"며 이해관계없는 제삼자를 후견인으로 선임해달라고 요청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1단독 장진영 부장판사는 윤정희 남동생 손 씨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여 지난 3월 8일 참가인 자격 참여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윤정희 동생들은 앞으로 법원에서 진행될 후견인 선임 절차에 정식으로 참여하게 됐다.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하거나 법정에서 진술하는 등 적극적으로 다툴 기회를 얻게 됐다.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백건우 /사진=TV조선

'PD수첩'에 앞서 지난 5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출연해 윤정희와 연애부터 최근 근황을 공개했다. 백건우는 "영화배우랑 피아니스트가 유럽에서 만나서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고 사람들이 완전히 영화라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투병 중인 윤정희는 프랑스에서 딸과 함께 요양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하며 "눈빛을 보게 되면 (삶이) 지워져 가더라. 같이 있는 사람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게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또 "그렇게 활동하던 여배우가 앞으로 영화를 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슬픈 거다. 날이 갈수록 영화를 더 사랑하게 되는데 그것을 계속 못하는 게 너무 가슴 아프다"고 했다.

한편 윤정희는 1960년대 큰 인기를 얻은 전설적인 영화배우다. 2010년 영화 '시'로 16년 만에 복귀해 각종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제2의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알츠하이머 투병 사실이 알려졌고, '시' 촬영 당시 이미 병을 앓고 있던 상태였다.

"우리 누나를 구해주세요"라며 윤정희의 남동생이 "누나가 프랑스에 홀로 방치됐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일었고 윤정희와 백건우는 해외 연주 등에 늘 동행해 '잉꼬부부'로 유명했던 터라 큰 충격을 안겼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