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에 설계비 미반영
"사업 재검토 땐 2028년에야 감염병병원 세울 수 있을 듯"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 등을 목적으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내놓은 7천억원을 관리하기 위한 위원회가 기부금 납입 4개월 만에 첫 회의를 연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보건복지부와 함께 기부금관리위원회를 구성할 위원 15명을 선정하는 작업을 마쳤다고 9일 밝혔다.

중앙의료원 관계자는 "다음 주 첫 회의를 여는 것을 목표로 위원들과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올해 4월 28일 이 회장 유족들은 국가 감염병 대응 역량 강화를 주문하며 중앙의료원에 7천억원을 납입했다.

이 중 5천억원은 '세계 최고의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에 써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애초 중앙의료원과 복지부는 6월 안에 기부금관리위원회를 출범시킬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양 기관이 위원회의 인적 구성을 두고 견해차를 보이며 일정이 석 달 가까이 지연됐다.

중앙의료원은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회의 사무처장을 지낸 신영수 서울의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선임하고,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인 오명돈 서울대 감염내과 교수 등을 위원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는 퇴직 관료를 중심으로 여러 학회에서 추천받은 인사들로 구성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부자인 삼성 측에서는 이 위원회에 참가하지 않는다.

양측은 내주 기부금관리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위원 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다.

다만 위원회가 구성돼도 당장 내년에 감염병병원 설계에 착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거액의 기부금이 들어온 만큼 기존 사업 계획을 재검토하겠다면서 중앙의료원이 요구한 3천737억8천만원 중 1천629억8천만원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이 중앙의료원 이전과 중앙감염병병원 건설 부지 매입 대금이다.

나머지 미반영 금액 중 중앙감염병병원 구축사업 예산은 2억5천만원이며, 이 중 2억4천100만원은 설계비, 900만원은 시설부대비다.

이렇게 되면 당장 내년 설계 용역에 착수하기 어려워 전체 사업 추진 일정이 지연된다.

중앙의료원은 사업비 적정성 재검토 결과 내년 설계비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중앙감염병병원은 일러도 2028년에 준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복지부와 중앙의료원이 목표했던 2026년보다 2년 넘게 늦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삼성 기부금 5천억원을 이유로 정부 예산이 깎인 것을 두고 정기현 중앙의료원장은 지난달 24일 국회 토론회에서 "몇천억 들어왔다고 온갖 이해 관계자들이 불나방처럼 붙고 기획재정부는 기부금을 자기 돈인 양 검증하겠다고 나선다"며 "하루라도 빨리 중앙감염병병원을 만들겠다는 것이 공허한 약속으로 휴짓조각이 돼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기부금이 포함되면서 앞서 확정된 총사업비가 변경돼 사업비 규모가 적정한지 타당성을 재검토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긴급한 사회경제적 필요에 의한 경우 재검토를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 재정당국과 협의를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감염병병원이 2026년까지 완공되는 데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서 5천억 받은지 4달만에야…감염병병원기금위 출범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