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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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민사부는 9일 김 모 부사장이 한국투자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이연성과급 지급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연성과급이란 성과급을 한 번에 지급하지 않고 여러 해에 걸쳐 나눠주는 제도다. 증권사들은 일반적으로 성과급의 60%를 지급하고 나머지 40%는 이후 3년간 분할 지급한다. 단기 성과를 위해 고위험 사업을 추진하는 부작용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증권사는 채권이나 대체투자 등 분야와 시장 상황에 따라 성과가 극명히 엇갈린다는 점도 이연성과급 제도가 도입된 배경이다. 지난해 최고 실적을 기록했더라도 올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당해 연도를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한다면 실적이 좋을 때 퇴사하는 '도덕적 해이'가 나올 수 있다. 증권사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쌓아놓은 이연성과급에서 손실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인센티브 제도를 운용한다.

그러나 도입 취지와 달리 증권사가 좋은 성과를 낸 임직원의 퇴사와 이직을 막고 성과급 지급을 거절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근로자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6년부터 증권사를 상대로 이연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는 임직원들의 소송도 늘어났다. 2019년 10월 정모씨 외 13명이 IBK투자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이연성과급 지급 소송에서 승소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소송에서 패소한 증권사는 소송가액 21억8000만원의 70%를 지급했다.
[단독] "성과급 35억 달라"…'증권가 연봉킹' 결국 패소
김 부사장의 경우 2019년 미래에셋으로 이직하면서 한투증권에서 재직하던 시절 쌓아둔 35억9400만원의 성과급을 받지 못해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지금까지 제기된 증권가 이연성과급 미지급 관련 소송 중 최대 규모였다.

법원은 한투증권이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퇴직한 경우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회사 규정에 명시했다는 점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DB금융투자와 대신증권을 상대로 제기된 이연성과급 지급 소송에서도 ‘퇴직자에게 성과급을 주지 않는다’ ‘성과급 지급일 전 자발적으로 퇴사하면 잔여 이연성과급이 사라진다’고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경우 증권사가 승소했다.

김 부사장은 미래에셋으로 이직할 당시 전 직장에서 받지 못한 이연성과급을 고려해 연봉을 높여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연봉 21억300만원을 받았고 올 상반기에만 16억6700만원을 수령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 부사장 측은 이번 소송의 결과에 따라 본인에게 돌아가는 금전적 손실이나 이득은 없으며 증권업계의 관행을 바꾸기 위해 소를 제기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 부사장이 소송에서 이길 경우 전 직장에서 계약한 연봉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식의 이면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증권가는 이번 소송 결과로 인해 이연성과급과 관련한 갈등이 일단락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액 연봉의 임원들이 이직할 때 기존 직장에서 포기한 이연성과급을 고려해 몸값을 올려 계약을 하기 때문에 소송에서 패소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며 "앞으로 이직시 성과급 대신 기본 연봉을 높이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09월09일(13:24)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