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긱스 지음
배동근 옮김
바다출판사
496쪽│1만9800원
자원봉사자로 그 광경을 지켜봤던 호주의 논픽션 작가 리베카 긱스는 왜 고래가 해변에 떠밀려 오는지 궁금했다. 인간 역사 속 고래의 기록부터 최근의 과학적 발견까지 고래에 대한 모든 것을 그러모았다. 그 결과물이 《고래가 가는 곳》이다. 레이첼 카슨이 1962년 발표한 《침묵의 봄》에 비견되는 환경 문학이란 평가와 함께 2021 앤드루 카네기 메달 등 여러 상을 받았다.
고래는 커다란 덩치로 인해 오랜 옛날부터 인간의 눈에 띄었다.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는 8000년 전부터 인간이 고래를 사냥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이 고래의 생태를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책은 서정성 가득한 문장을 바탕으로 우리가 몰랐던 고래의 모습을 밝힌다. 지금 이순간에도 69만 마리의 죽은 고래가 바다로 가라앉고 있다. 이를 ‘고래 낙하’라고 한다. 처음엔 상어가 뜯어 먹다 점점 내려가 심해에까지 이른다. 죽은 고래는 심해 생태계를 살리는 자양분이 된다.
고래는 세계 대기 질에도 영향을 준다. 위아래를 오가며 바다를 휘젓는 고래는 유기물질의 순환을 돕는다. ‘바다의 숲’인 플랑크톤을 번성하게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플랑크톤이 1% 증가하면 20억 그루의 다 자란 나무가 갑자기 생긴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고래 한 마리는 탄소 흡수 효과로 볼 때 1000그루의 나무와 맞먹는 역할을 한다.
고래의 귀를 보면 나무의 나이테처럼 나이를 알 수 있다거나, 각각의 눈에 2개씩 동공이 있어 고래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사실도 새롭다. 크릴을 잡아 먹는 혹등고래의 젖은 핑크빛에 버터 맛이 나고, 성게 불모지에서 먹을 것이 없어진 범고래는 털북숭이 팝콘을 먹어 치우듯 해달을 잡아먹기도 한다.
상업적 포경은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 회원국을 대상으로 전면 금지됐다. 이후 향유고래와 혹등고래 개체 수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위협으로 인해 고래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정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대기 중 늘어난 이산화탄소는 바다를 산성화해 고래들의 먹이인 크릴을 줄어들게 했다. 고래는 배에 치이고, 버려진 어망에 걸린다. 수중 석유 탐사 중 사용된 고출력의 저주파는 고래에게 굉장한 소음으로 다가온다.
산업용 독성 물질에 중독되고, 고래 뱃속에선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발견되기도 한다. 인간이 내다 버리고 잊어버린 것들은 어디로 사라진 게 아니라 고래 몸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책은 소셜미디어가 어떻게 자연을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사람들은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여기저기에 케른(원추형의 돌탑)을 쌓곤 한다. 이는 새들의 근거지를 파괴하고, 기어 다니는 무척추동물의 서식처를 교란하고, 토양 침식을 야기할 수 있다. 저자는 “날것 그대로의 자연을 만나서 자연의 이상적인 모습을 담아 보겠다는 욕망이 얼마나 자연을 망가뜨리는지에 대한 성찰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책의 원제는 ‘Fathoms’. 물의 깊이를 재는 단위면서 의미 등을 헤아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바다는 지표면의 3분의 2를 차지하지만 그 깊이만큼이나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감춰져 있다. 책은 그 속으로 뛰어들어 인간과 고래, 우리 지구가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드러낸다. 이런 이해를 통해 자연을 보는 시선과 삶의 방식을 다시 돌아보라고 말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