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합 "산재 발생 입증책임, 근로자에게 있어"…기존 법리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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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근로자 A, 사망 원인 모호해...유족 "산재" 주장
1심 "업무상 재해", 2심 "업무상 재해 아냐" 엇갈려
전원합의체 "업무상 재해 발생 입증은 근로자가"...기존 법리 재확인
1심 "업무상 재해", 2심 "업무상 재해 아냐" 엇갈려
전원합의체 "업무상 재해 발생 입증은 근로자가"...기존 법리 재확인
업무상 재해가 발생한 경우, 업무와 사고(재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을 입증할 책임은 근로자에게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존 대법원 판결의 법리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는 9일 사망한 근로자 A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유족급여및장의비 부지급 처분 등의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공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사망한 근로자 A는 2014년 2월 24일 한 회사에 입사해 휴대전화 내장용 안테나 샘플을 채취하고 검사하는 품질관리 업무를 수행해 왔다. A는 입사한지 2달이 채 안된 2014년 4월 동료와 함께 10분 동안 5Kg 박스 80개를 2개씩 화물차에 싣는 일을 한 후 사무실로 향하다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나 대동맥류 파열로 심장이 멈춰 사망하고 말았다.
A의 유족은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지만 공단은 “급격한 작업환경 변화는 없었고,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부지급처분을 내렸다. 이에 유족이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A는 2월 입사 이후 주 6일을 일했으며, 8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8시 30분까지 근무했다. 일요일에도 같은 시간 출근해 오후 5시 반까지 근무했고, 발병 전 8주 동안은 주 평균 69시간을 근무한 데다 휴무일은 6일에 불과했다.
이런 점을 근거로 1심 서울행정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안테나 검사는 정밀을 요하는 작업이라 정신적 긴장감이 요구되고, 제대로 휴식을 못 취한 채 계속 근무해서 육체·정신적 피로가 쌓였을 것"이라며 "그런 와중에 박스를 옮기는 일은 격렬했을 것이고, 이로 인해 혈압이 급격하게 상승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2심은 1심을 뒤집고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A가 사망 당시 만 25세의 젊은 나이고, 입사 후 총 1개월 25일을 근무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업무도 컴퓨터 입력이 주였고 △동료들도 ‘정신적 긴장감을 요하는 업무가 아니었다”고 증언한 점 △박스를 싣는 작업도 업무가 아니었고 선의로 도와주다가 발생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단순히 업무시간이 길다는 것만으로 과중한 업무를 수행했다고 볼 수 없다”며 “A의 사망은 자발성 개인질환”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이 사건은 고인의 사망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해와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에 대한 입증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의 문제로 이어졌다. 기존 대법원 판결은 입증책임이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에게 있다고 봤다. 결국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합으로 회부한 것이다.
대법원 전합은 기존 법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상당인과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해당 재해를 사업주의 책임으로 귀속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보험급여의 지급을 주장하는 측이 증명책임을 부담한다고 보는 것이 전반적인 보상체계에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입증책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소수(4인) 대법관들은 "산재보험법의 입법 경위나 입법 취지, 법 개정 과정을 살펴보면 입법자들의 의사는 증명책임을 전환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다수의견은 "입법자들에게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하고 원심을 확정지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업무와 재해 사이 입증책임이 근로자에게 있다고 명시하는 규정은 없다"며 "하지만 근로자가 인과관계까지 증명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온 점을 고려해 전합에 붙여 논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진석/곽용희 기자 iskra@hankyung.com
사망한 근로자 A는 2014년 2월 24일 한 회사에 입사해 휴대전화 내장용 안테나 샘플을 채취하고 검사하는 품질관리 업무를 수행해 왔다. A는 입사한지 2달이 채 안된 2014년 4월 동료와 함께 10분 동안 5Kg 박스 80개를 2개씩 화물차에 싣는 일을 한 후 사무실로 향하다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나 대동맥류 파열로 심장이 멈춰 사망하고 말았다.
A의 유족은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지만 공단은 “급격한 작업환경 변화는 없었고,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부지급처분을 내렸다. 이에 유족이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A는 2월 입사 이후 주 6일을 일했으며, 8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8시 30분까지 근무했다. 일요일에도 같은 시간 출근해 오후 5시 반까지 근무했고, 발병 전 8주 동안은 주 평균 69시간을 근무한 데다 휴무일은 6일에 불과했다.
이런 점을 근거로 1심 서울행정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안테나 검사는 정밀을 요하는 작업이라 정신적 긴장감이 요구되고, 제대로 휴식을 못 취한 채 계속 근무해서 육체·정신적 피로가 쌓였을 것"이라며 "그런 와중에 박스를 옮기는 일은 격렬했을 것이고, 이로 인해 혈압이 급격하게 상승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2심은 1심을 뒤집고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A가 사망 당시 만 25세의 젊은 나이고, 입사 후 총 1개월 25일을 근무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업무도 컴퓨터 입력이 주였고 △동료들도 ‘정신적 긴장감을 요하는 업무가 아니었다”고 증언한 점 △박스를 싣는 작업도 업무가 아니었고 선의로 도와주다가 발생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단순히 업무시간이 길다는 것만으로 과중한 업무를 수행했다고 볼 수 없다”며 “A의 사망은 자발성 개인질환”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이 사건은 고인의 사망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해와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에 대한 입증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의 문제로 이어졌다. 기존 대법원 판결은 입증책임이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에게 있다고 봤다. 결국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합으로 회부한 것이다.
대법원 전합은 기존 법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상당인과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해당 재해를 사업주의 책임으로 귀속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보험급여의 지급을 주장하는 측이 증명책임을 부담한다고 보는 것이 전반적인 보상체계에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입증책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소수(4인) 대법관들은 "산재보험법의 입법 경위나 입법 취지, 법 개정 과정을 살펴보면 입법자들의 의사는 증명책임을 전환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다수의견은 "입법자들에게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하고 원심을 확정지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업무와 재해 사이 입증책임이 근로자에게 있다고 명시하는 규정은 없다"며 "하지만 근로자가 인과관계까지 증명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온 점을 고려해 전합에 붙여 논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진석/곽용희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