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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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 제재로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 SMIC이 나홀로 질주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를 등에 업고 내실을 다지는 한편 '반도체 굴기'를 포기하지 않은 중국 정부의 적극 지원을 받고 있어서다.

SMIC이 中 반도체 희망

사진=EPA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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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업계에 따르면 파운드리 세계 5위권 업체인 SMIC은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간) 8억7000만달러(약 10조2700억원)를 투자해 상하이 자유무역 시험구에 신규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매월 12인치 반도체 원판(웨이퍼) 10만장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이 공장에선 차량용 반도체에 주로 탑재되는 28나노미터(nm·10억분의 1m) 칩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SMIC은 베이징과 선전에도 신규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대만 디지타임즈는 "SMIC의 상하이와 베이징‧선전 공장 건설 총 투자액은 1226억위안(약 22조원)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SMIC의 이 같은 투자는 '반도체 굴기'를 꿈꾸던 중국 정부의 계획은 차질을 빚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굴기의 상징이던 칭화유니그룹과 화웨이 등이 미 정부 제재로 각각 '자금'과 '기술'을 지원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칭화유니가 2200억원 규모 회사채를 갚지 못해 파산·법정관리를 선언한 배경에는 미국이 금융시장에서 자금 흐름을 차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화웨이도 미국의 지적 재산이 투입된 반도체 칩 공급을 받지 못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된 상태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이 기회

이런 가운데 SMIC은 중국 정부의 유일한 희망으로 꼽힌다. 미 제재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구형 반도체 기술에 SMIC의 먹거리가 있어서다. SMIC 최대 주주는 정부 기관(지분 11.8%)으로 사실상 국가가 운영하는 국영기업이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립률을 70%로 끌어올릴 목표로 여전히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 정부는 기회를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에서 보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와 달리 최첨단 기술이 필요치 않다. 삼성전자나 대만 TSMC보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SMIC이 차량용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이유다. 실제 SMIC는 미 제재로 장비 확보에 어려움이 따르는 고품질 반도체 생산 대신 28나노 구형 기술 반도체 생산에 힘을 쏟고 있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28나노 반도체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스(AP) 등에 주로 쓰인다"며 "SMIC은 탄탄한 중국 내 수요를 바탕으로 28나노에서 실적을 쌓아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SMIC의 질주 배경이 되고 있다. SMIC은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쇼티지(공급부족) 현상이 시작된 지난해 매출이 2000년 설립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에도 매출과 순이익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2.3%와 278.1% 증가한 160억9000만위안(3조665억원)과 52억4100만위안(9510억원)을 기록했다.

미국의 반도체 압박이 심해질수록 화웨이 등 자국 기업들이 SMIC에 의존하는 비율이 커지는 것도 실적 증가의 배경이다. 실제 SMIC의 지난 2분기 지역별 매출을 보면 중국이 62.9%를 차지해 전년 대비 7.3%포인트나 늘었다. 중국 과학기술분야의 최고 학술기구인 중국공정원의 우한밍 연구원은 "현재 중국 내 반도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SMIC 8개에 맞먹는 생산능력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에서 SMIC은 지난 1분기 4.7%에서 2분기 5.3%로 늘었다. 글로벌 파운드리 상위 10곳의 기업 중 점유율을 가장 많이 끌어올렸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제재로 다른 나라에서 반도체 칩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SMIC 물량에 의존하는 구조가 반복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