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서원대 교수
김병희 서원대 교수
시골에서 농사짓는 외삼촌댁에 놀러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조금이나마 거들고 싶어 논에 가시는 외삼촌을 따라 나섰다.

그런데 타고 가던 경운기가 농로에서 갑자기 멈춰버렸다. 외삼촌은 종종 있는 일이니 걱정 말라며 당황해하는 나를 안심시키더니,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박사니까 어떻게 좀 해 봐!”

말문이 막힐 수밖에. 외삼촌은 박사라고 하면 모든 걸 다 아는 만물박사로 생각하신 듯하다. 크크크.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박사학위가 있다고 해도 자기 전공 분야 외에는 모르는 것이 태반이다. 어쩌면 외삼촌도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조카에게 농담으로 그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아마도 경영자에 대해 사원들이 생각하는 기본 태도도 만물박사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이사님이나 사장님이 만물박사처럼 해법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원들도 많은 것이라는 뜻이다.

경영자 스스로 비장의 히든카드가 있어야 한다거나 사원들에게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해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영자도 많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자문해드렸다. 경영자가 항상 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고, 때로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광고 ‘두 가지 문제’ 편(2014)에서는 대학 측에서 입학생에게 무엇을 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두 가지 문제입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wo questions).”

헤드라인에서 이렇게 질문한 다음 곧이어 답을 제시했다.

“만약에 당신이 셰익스피어보다 똑똑하다면, 우리는 당신에게 학위를 줄 것입니다.” 비주얼 없이 군청색 바탕에 카피를 흰색으로 제시해 간명하게 마무리한 광고다.

어떠한 시각적 장치도 없이 카피만으로 완성한 광고지만, 광고를 본 입학 지원자나 가족들은 그렇잖아도 입학하고 싶은 대학에 대해 더 큰 기대를 가질 것 같다.

영국의 명문대에서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지은 4대 비극의 하나인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를 패러디했으니 상관성도 높다.

셰익스피어보다 똑똑하다면 학위를 주겠다고 했으니, 입학 지원자나 재학생 모두에게 호기심을 유발하는 동시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게 하는 메시지다.
옥스퍼드대학교의 광고 ‘두 가지 문제’ 편 (2014)
옥스퍼드대학교의 광고 ‘두 가지 문제’ 편 (2014)
프록터 앤 갬블(P&G)의 팸퍼스(Pampers) 기저귀의 광고 ‘오줌’ 편(2019)에서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대사를 패러디했다.

베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드러냈으니 표절이 아닌 패러디다. “오줌을 싸든 안 싸든 우리는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To pee or not to pee. We got the answer).”

아기가 오줌을 싸면 부모의 스마트폰에 알려주는 루미(Lumi) 시스템이 팸퍼스 기저귀에 내장돼 있어, 오줌을 싸든 안 싸든 문제없다고 강조한 메시지다.

구글과 P&G는 기저귀를 갈아줘야 할 때 스마트폰 앱으로 부모에게 알려주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공동으로 만들었다. 양방향 카메라로 아기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동시에 실내 온도나 습도까지 부모에게 알려준다는 루미(Lumi) 시스템이다.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아기 돌봄을 스마트폰에 맡기는 격이니, 한국의 엄마 아빠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이 광고의 카피에는 물음표가 없다. 그렇지만 조금 더 생각하도록 하는 의문형 카피를 써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팸퍼스 기저귀의 광고 ‘오줌’ 편 (2019)
팸퍼스 기저귀의 광고 ‘오줌’ 편 (2019)
두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의 스티커 메시지는 질문하기(Questioning)다. 모르거나 의심나는 대목을 물어보는 것만이 질문은 아니다.

교수들은 정답을 알면서도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져 학생 스스로가 정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마찬가지로 경영자 역시 답을 가지고 있더라도 직원들에게 질문을 던져 각자가 생각해보도록 유도해야 한다.

수사법에 평서문을 의문문으로 바꾸는 의문법(疑問法)이 있듯이, 질문은 호기심을 유발하고 심사숙고하게 만든다.

질문을 할 때도 정교하게 해야 한다. 전혀 생소한 내용이나 너무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은 곤란하다. 곧바로 답이 떠오르는 ‘답정너’ 질문이 좋다.

답정너란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젊은이들의 신조어다.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할만한 내용을 질문해도 좋겠다.

영어에서 평서문으로 말하고 나서 마지막에 “안 그래(isn’t it?)” 하고 묻는 부가의문문처럼 말이다. 부가의문문은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동의를 유도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경영자는 모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이제 그런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질문에 답하고 모든 해결책을 제시하려다가 ‘훅’ 가버린 정치인의 사례도 많다.

또한, 질문하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 질문을 정교하게 할수록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정도도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경영자들은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어떻게 질문할 것인지 심사숙고(深思熟考)해야 한다. 나폴레옹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심사숙고할 시간을 가져라. 그러나 일단 행동할 시간이 되면 생각을 멈추고 돌진하라.”

옥스퍼드대학교 광고와 팸퍼스 광고에서도 ‘답정너’ 질문을 했지만, 그 광고가 나오기까지 창작자들은 심사숙고하는 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겠는가. 결국, 질문을 정교하게 잘 하면 질문에 이미 답이 들어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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