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시간은 정말 바이든 편일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입장에선 수모였다. 지난달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 테러로 숨진 13명의 미군 장병 유족들을 만나려 했지만 바로 거절당했다. 간신히 유해 귀환식 직전에 일부 유족들과 개별 면담을 했지만 살얼음판 분위기였다. 오히려 그 행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혀 구설에 올랐다.

혹 떼러 간 바이든 대통령이 혹을 붙이고 온 사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치고 들어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프간 테러로 해병대원 아들을 잃은 다린 후버 씨는 워싱턴포스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리 얘기를 이미 다 알고 몇 번이고 애도를 표해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으며 체면을 구겼다.

[특파원 칼럼] 시간은 정말 바이든 편일까
그야말로 바이든의 수난시대다. 자신의 전공인 외교 분야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것도 어느 누구보다 자신 있다던 아프간 사태가 발목을 잡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일사천리로 아프간 철군을 결정할 때만 해도 여론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20년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아프간 정부 실상을 제대로 몰랐다. 미군 철수 결정 열흘도 안 돼 탈레반에 수도 카불을 내주고, 아프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바로 도망갈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후폭풍은 컸다. 테러로 미군 13명이 목숨을 잃었고 아프간에 있는 미국인을 모두 대피시키지 못했다. 미국을 도운 아프간 현지인 구출은 꿈도 꾸지 못했다. 얼마나 급했는지 예정일보다 하루 일찍 철수한 미군은 아프간에 무기와 장비도 두고 왔다.

당시 미국은 “소프트웨어 등을 제거해 탈레반이 그 무기를 쓸 수 없을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결국 허언이 됐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우리는 모든 군사 물품이 어디로 갔는지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상당수가 탈레반 손에 넘어갔다”고 실토했다.

미국은 20년간 아프간에 2조달러를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허망했다. 미국인들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베트남전 패망을 떠올리게 됐다. 여기저기서 “바이든 정부가 이 정도일 줄을 몰랐다”거나 “역대 최악의 무질서한 철수”란 비판이 쏟아졌다. 당연히 바이든 대통령의 인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지율이 취임 후 7개월여 만에 최저치인 40%대 초반으로 추락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래도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믿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 것으로 생각한다. 철군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하더라도 많은 미국인이 철수 자체에 대해선 여전히 찬성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동시에 국면 전환도 시도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과 4조달러대 규모의 인프라 투자 법안이 ‘믿는 구석’이다. 백신으로 코로나19를 잡고 인프라 건설로 경제를 살리면 사람들 기억 속에서 아프간은 사라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생각처럼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백신 접종 거부율이 여전히 20%대인 가운데 델타 변이 확산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급기야 9일(현지시간) 100인 이상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직원들에게 백신을 맞게 하라는 극약 처방을 내놨다.

인프라 법안도 첩첩산중이다. 공화당은 1조달러의 물적 인프라 예산은 찬성하지만 3조5000억달러 규모의 인적 인프라 예산은 반대하고 있다. 지원군이어야 할 민주당은 사분오열돼 있다. 민주당 중도파 의원들은 3조5000억달러인 인적 인프라 규모가 너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중도파의 좌장격인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인프라 법안이 후손들에게 큰 짐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기고문까지 썼다.

반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민주당 진보파들은 인적 인프라 예산 규모가 3조5000억달러 이상이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3조5000억달러 예산이 대폭 삭감되거나 최악의 경우 인적 인프라 예산 전체가 의회 문턱을 못 넘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상황이 이런데도 모든 일이 바이든 대통령의 기대대로 순조롭게 풀릴지 지켜볼 일이다.

테러 위험 늘었다 느끼는 미국인 급증

미국인들이 느끼는 테러 위험도가 2001년 9·11 테러 이후 낮아졌다가 최근 10년 사이 다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9·11 이후 미국 사회가 더 좋아졌다는 생각도 후퇴했다는 쪽으로 돌아선 것으로 조사됐다.

워싱턴포스트는 9·11 테러 20년을 맞아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ABC방송과 함께 미국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02년만 해도 9·11 테러로 인해 미국이 더 발전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55%였다. 2011년엔 이 수치가 39%로 하락한 뒤 이번엔 33%로 더 떨어졌다. 반대로 더 나빠졌다고 응답한 비율은 2002년 27%에서 2011년 42%로 늘어났고 이번엔 46%로 상승했다.

테러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느끼는 비율도 최근 10년 새 낮아졌다. 2003년엔 67%가 테러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겼지만 2010년엔 48%로 뚝 떨어졌다.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이 2011년 사살된 뒤 안전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64%로 급등했다가 이번에 49%로 다시 하락했다. 이에 비해 테러 위협으로부터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003년에 27%였다가 이번 조사에서 41%로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