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원그룹에 따르면 차병원에서 미혼여성의 난자 동결보관 시술 건수는 2010년 14건에서 2019년 493건으로 10년간 35배가 늘었습니다. 시술을 받은 여성의 70%는 35세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른 완경 일어나는 여성에서 공통적인 유전자 변이 발견
여성은 태어날 때 약 200만 개의 난자(난모세포)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2차 성징이 일어난 이후에는 40만여 개로 줄고, 한 달에 1개씩 건강한 난자가 배출되죠. 보관된 난모세포 중 손상된 DNA를 가진 경우는 체내에서 알아서 제거됩니다. 난모세포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제거되는데요. 노화에 의해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시스템의 효율이 떨어지고, 손상된 DNA가 더 많이 축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난모세포의 곳간이 줄어들고 완전히 고갈되면 완경에 이르게 됩니다.
평균적으로는 47~52세 정도에 완경을 맞이하는데요. 약 4%의 여성은 40~45세 정도에 조금 이르게 완경을 하기도 하고, 평균을 훌쩍 넘은 나이에 이 일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차이는 유전과 다양한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른 완경의 약 50%는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며, 나머지 절반은 어린 시절의 영양 부족이나 흡연, 과체중 등의 환경적 요인에 영향을 받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40~60세의 유럽 여성 20만 명의 완경 시기와 유전자를 모두 분석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8월 4일 자에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 이른 완경을 한 이들에게서 약 290개의 공통된 유전자 변이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생식 수명에 관여한다고 알려진 유전자의 5배에 해당하는 수입니다.
연구진은 이후 또 다른 30만 명의 여성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해 완경 시기를 결정하는 유전자 변이가 일치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연구진은 그중 ‘CHEK’이라는 유전자에 주목했습니다. 이 유전자는 손상된 DNA를 가진 세포의 분열을 막고 사멸을 유도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입니다. 크게 CHEK1과 CHEK2로 나뉘는데요, CHEK1은 손상된 DNA를 복구해 세포를 살려내는 데 관여했으며, CHEK2는 손상된 DNA를 가진 난모세포를 제거하는 것과 연관돼 있었습니다. 분석 결과, CHEK2 유전자의 기능을 상실한 여성의 경우 평균 3.5년 정도 완경이 늦어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연구진은 CHEK 유전자의 기능을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 쥐 동물모델에서 CHEK1 유전자를 더 넣어주거나, CHEK2 유전자를 아예 제거하는 두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러자 CHEK1 유전자의 양이 늘어난 쥐와 CHEK2 유전자가 제거된 쥐 모두 난소에 난자가 좀 더 오래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만큼 완경 시기가 늦춰진 것이죠. 또 난자의 방출을 유도하는 호르몬에도 더 강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관찰됐습니다. 완경 늦춰 불임에 새로운 치료법 제시할까
불임 전문가인 쿠틀룩 옥타이 미국 예일대 의대 교수는 이번 연구가 완경 시기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옥타이 교수는 “(CHEK1을 추가하는 것과 같이) DNA 복구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은 완경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CHEK2를 제거하는 것은 위험한 제안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CHEK2와 같은 유전자는 저장된 난모세포 중 DNA에 문제가 생긴 난모세포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이런 유전자의 활성을 낮추거나 제거하는 경우 손상된 난모세포를 사전에 제거하는 일종의 ‘검문소’를 없애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우려되는 사항은 유방암과 같이 여성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암 발생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으면 유방암 발생 확률도 함께 높아지는데요. 완경 시기가 늦춰지면 그만큼 에스트로겐이 활발히 분비되는 시기가 늘어나기 때문에 유방암 발병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죠.
연구를 주도한 캐서린 루스 영국 엑서터대 교수는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조기 완경을 진단할 수 있는 유전자 변이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완경을 늦추는 치료는 좀 더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