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는 총 두 대의 방사광가속기가 가동 중이다. 두 대 모두 포항공대 캠퍼스에 자리 잡고 있다. 3세대 원형가속기(PLS-Ⅱ), 4세대 선형가속기(PAL-XFEL)로 불리는 방사광가속기들은 단백질 구조 분석을 포함해 반도체, 배터리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되고 있다.
생김새부터 다른 두 대의 가속기 사진 오른쪽의 커다란 도넛 모양이 3세대 가속기다. 원형의 3세대와는 다르게 4세대(사진 왼쪽)는 1.1km의 직선 통로로 이뤄져 있다.  /사진=포항가속기연구소
생김새부터 다른 두 대의 가속기 사진 오른쪽의 커다란 도넛 모양이 3세대 가속기다. 원형의 3세대와는 다르게 4세대(사진 왼쪽)는 1.1km의 직선 통로로 이뤄져 있다. /사진=포항가속기연구소
지난 8월 24일 포항공대(포스텍) 캠퍼스에 위치한 포항가속기연구소를 찾았다. 국내에서 가동 중인 방사광가속기는 총 두 대다. 3세대 원형가속기(PLS-Ⅱ)와 4세대 선형가속기(PAL-XFEL)다. 두 대 모두 포항가속기연구소에서 관리, 운영한다.

셀트리온 ‘렉키로나’ 개발에 핵심 역할 한 3세대 가속기

포항공대를 둘러싸고 있는 산등성이를 오르자 커다란 도넛 모양의 3세대 가속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3세대 가속기에서 좀 더 위로 올라가니 2016년 가동을 시작한 4세대 가속기가 보였다. 두 대의 가속기는 생김새부터 확연히 달랐다. 3세대는 둘레 280m의 원형으로, 4세대는 1.1km의 직선 통로로 이뤄져 있다.

1995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3세대 원형가속기는 당시 미국,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3번째로 만든 가속기다. 드론을 통해서만 한눈에 확인이 가능한 육중한 몸집의 원형가속기는 총 36개의 빔라인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빔라인은 원의 접선처럼 가속기 밖으로 쭉 뻗어 있다.

기자가 PLS-Ⅱ를 찾은 날에도 여러 대학 연구소와 기업이 빔라인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는 총 31개의 빔라인이 작동 중이며, 각각은 서로 다른 연구에 사용된다. 박용준 포항가속기연구소 기획실장은 그중 셀트리온이 코로나19 치료제인 ‘렉키로나’를 개발할 당시 사용했던 빔라인으로 안내했다. 빔라인 끝에 위치한 초록색 연구실에 들어서자 거대한 실험 장비들이 눈에 띄었다. 하루에 최대 1000장의 사진을 얻을 수 있는 자동화 설비다.

셀트리온은 PLS-Ⅱ를 이용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스파이크 단백질의 수용체결합도메인(RBD)과 후보물질의 결합구조를 0.27 나노미터 수준에서 밝혔다. 박 실장은 “신약 개발은 결국 시간 싸움인데 방사광가속기가 구조를 파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험실 규모에서 사용하는 ‘X선 결정’ 방식의 경우 단백질 구조를 확인하는 데 10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반면 PLS-Ⅱ는 10분이면 가능하다. 대략 60배 차이다.

세계 최초 비아그라 작용 기전 규명… 신약 개발 원동력 돼

X선 결정 방식과 방사광가속기의 기본적인 원리는 동일하다. 단백질에 빛을 쪼여준 뒤 빛의 회절무늬를 이용해 구조를 분석한다.

그럼에도 성능에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단백질에 쏘는 빛의 에너지 때문이다. 3세대 가속기는 태양의 1억 배, 4세대 가속기는 100경 배(1018)에 이르는 빛을 발사한다. 3세대의 경우 전자총에서 전자를 발사하면, 직선 형태의 통로(선형가속기 파트)를 지나면서 빛의 속도(초속 30만km)의 99.5%까지 가속한다. 이후 원 형태의 통로로 진입해 전자가 운동방향을 바꾸게 되면(저장링 파트) 접선 방향으로 매우 강력한 빛, 방사광이 방출된다. 연구자들은 방사광을 이용해 물질을 관찰한다(빔라인 파트).

지금까지 3세대 가속기가 구조를 밝혀낸 구조 단백질은 1500여 개에 이른다. 가장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은 ‘비아그라’다. 2003년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는 PLS-Ⅱ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비아그라의 작용 기전 원리를 규명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당시 이 연구는 네이처의 표지를 차지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박 실장은 “약물의 작용 기전을 밝히는 것은 신약 개발에서 매우 중요한 단계”라며 “이 논문으로 비아그라보다 강력하고 선택적인, 즉 부작용이 적은 PDE저해제 개발 붐이 일었다”고 말했다.

세포 내 생명현상 볼 수 있는 4세대 가속기

현재 3세대는 총 3가지 트랙으로 기업 및 연구기관의 사용을 지원하고 있다. 기업이나 연구소가 자체 인력을 활용하면 하루에 10만 원 대의 비용만 지불하면 사용이 가능하다. 포항가속기연구소의 인력을 활용하면 하루에 150만 원 선이다. 마지막은 비공개로 연구를 하는 경우다. 기업이 연구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심사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일부 기업들에서 "비공개 연구트랙을 좀 더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4세대는 3세대만큼 활발하게 이용되지 못하고 있다. 박 실장은 “4세대는 3세대에 비해 제어를 하기가 어렵고 빔라인도 아직 3개뿐”이라며 “지금은 4세대로 단백질을 분석하기만 해도 저명한 학술지에 실릴 만큼 응용 초기 단계”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가 4세대 가속기의 추가 설립을 주장하는 이유는 생명현상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3세대가 미세 구조를 보여주는 ‘사진’이라면 4세대는 물질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영상’이다. 실제 국내 연구진은 4세대 가속기로 모기가 사람에게서 혈액을 뽑아내는 순간이나 애기장대가 땅속의 물을 흡수하는 순간 등을 분석했다. 이런 연구 결과는 약물전달기술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기반 연구가 된다.

박 실장은 “세포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신약 개발 분야에서의 활용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