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에 사는 40대 김모씨는 지난달 서울 서초동의 한 공증사무소를 찾았다. 부모님으로부터 빌린 전세금 2억원에 대해 차용증을 쓰고 공증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는 “부동산 가격이 뛰면서 전셋값이 급등해 할 수 없이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게 됐다”며 “용인은 물론 주변 분당 등에서 믿고 맡길 만한 공증사무소를 찾지 못해 부득이하게 서초동까지 가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수년 새 부동산값이 급등하면서 공증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공증인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관련 차용증은 물론 상속·금전대여 관련 공증이 많아졌는데도 공증인 수는 뒷걸음질친 것이다. “소비자들로선 공증사무소를 이용하는 데 들여야 할 시간과 노력이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수요 늘었는데, 공급 꽉 막혀

집값 뛰어 찾는 사람 느는데…공증인이 없다
12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전국에 등록된 공증사무소는 329곳이다. 10년 전(389개)과 비교해 15.4% 줄었다. 공증사무소는 1997년(216개)부터 매년 10~20개 늘어나 2009년(417개) 최대치를 기록한 뒤 2010년(397개)부터 서서히 감소했다.

공증이란 공증인이 특정 사실 또는 법률관계를 공적으로 증명하는 것을 가리킨다. 유언 내용을 문서로 남기는 ‘유언 공증’, 부모와 자식 간 ‘상속 공증’, 돈을 빌릴 때 쓰는 ‘차용증 공증’과 ‘채무변제 공증’이 있다.

공증인 수가 줄어든 데엔 2010년 시행된 ‘공증인 정원제’ 영향이 크다. 이전에는 모든 법무법인이 변호사법에 따라 공증 업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법무법인이 급증하면서 국가 사무인 공증 업무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부실 공증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가 허락한 별도의 공증인만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공증인 정원제가 시행되면서 신규 인가가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이다. 국내 공증인은 법무부 장관이 임명해 공증 업무만 취급하는 ‘임명공증인’과 법무법인 및 법률사무소가 인가를 받은 ‘인가공증인’으로 나뉜다.

임명공증인이 되거나 인가공증인의 공증 담당 변호사로 지정받으려면 판사·검사·변호사 경력이 10년 이상 있어야 한다. 이 제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임명공증인은 86명, 인가공증인은 190개로 제한된다. 현재 전국의 공증사무소는 300곳이 넘어 이미 정원을 초과했다.

“신규 진입 허가하라” 요구도

수년간 계속되는 ‘부동산 불장(불같이 뜨거운 상승장)’은 공증 시장에도 호황을 불러왔다. 아파트, 빌딩 등을 유언 공증과 상속 공증으로 정리해두려는 이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상속 전문 변호사는 “집값, 빌딩 가격이 뛰자 소유자 사후에 ‘뒷말’이 나오지 않게 공증으로 재산 분배를 확실히 해두려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정이 이런데도 공증인 신규 인가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보니 “기존의 공증인들만 노났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변호사들의 반발도 크다. 한 중견 로펌 소속 변호사는 “우스갯소리로 공증인 중 누군가가 죽지 않으면 새 공증 인가가 나오지 않을 것이란 말까지 있다”며 “먹거리가 줄어든 법조계에선 변호사 수천 명이 공증업무 인가를 받으려 기약 없이 대기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일각에선 지역에 따른 공증인 쏠림 현상을 문제로 꼽기도 한다. 지방에서는 서울과 달리 상대적으로 공증사무소를 찾기 힘들어 공증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초동 일대에만 공증사무소가 대략 100곳이 있다. 반면 강원도엔 6곳, 제주도엔 3곳뿐이다. 지방 광역시 가운데 부산과 대전은 20곳 미만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방에서는 사무장이 공증 업무를 대신하는 ‘공장식 공증사무소’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찾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