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애평선, 양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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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애평선
양광모
땅과 하늘이 만나
지평선을 만들고
물과 하늘이 만나
수평선을 만들고
나의 그리움과 너의 그리움이 만나
애평선을 만든다
흐린 날,
더 멀리 보인다
[태헌의 한역]
愛平線(애평선)
地天逢作地平線(지천봉작지평선)
水天逢作水平線(수천봉작수평선)
爾我思作愛平線(이아사작애평선)
陰日遠處分明見(음일원처분명견)
[주석]
* 愛平線(애평선) : 애평선. 시인의 자가어(自家語:자기 스스로가 만든 말)를 한자어로 적은 것이다.
地天(지천) : 땅과 하늘. / 逢(봉) : 만나다. / 作(작) : ~을 만들다. / 地平線(지평선) : 지평선.
水天(수천) : <바닷>물과 하늘. / 水平線(수평선) : 수평선.
爾我思(이아사) : 역자가 ‘爾我之思(이아지사)’, 곧 ‘너와 나의 그리움’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陰日(음일) : 흐린 날. / 遠處(원처) : 먼 곳. / 分明(분명) : 또렷하다, 또렷하게. / 見(견) : ~이 보이다. ※ 이 구절의 “遠處” 이하는 원시의 “더 멀리 보인다”를 살짝 고쳐 한문식으로 옮겨본 것이다.
[한역의 직역]
애평선
땅과 하늘이 만나 지평선을 만들고
물과 하늘이 만나 수평선을 만들고
너와 나의 그리움이 애평선을 만든다
흐린 날에 먼 곳이 또렷하게 보인다
[한역 노트]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에 말은 알아도 뜻은 몰랐던 단어가 제법 있었을 것이다. 역자의 경우는 어른들이 이따금 사용하던 욕설이나 어른들이 부르던 노래에 특히 이런 말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모르는 게 워낙 많아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어쩌다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혼나기 일쑤였던 터라, 뜻도 모른 채 익혀 따라 쓰고 따라 부르고는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호로자식’이니 ‘유정천리’니 ‘무정천리’니 하는 말뜻을 알 턱이 없었던 역자의 어린 시절은, 누가 떠밀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까마득한 세월 속에 묻혀버렸다.
“지평선”이나 “수평선”은 역자가 한번 본 적도 없이, 그러니까 뜻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이미 이 말은 알고 있었더랬다. 지평선이라는 말은 고모와 큰누나가 자주 불러서 귀에 익숙해졌던 유행가인 <지평선은 말이 없다>를 통해 알게 되었고, 수평선이라는 말은 그즈음 여름방학이 되면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왔던 <진주조개잡이>라는 외국곡의 노랫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그 당시에도 들었던, 빌리본 악단이 연주한 <진주조개잡이>는 지금도 역자가 즐겨 듣는 연주곡 가운데 하나이다.]
애평선은 시인의 자가어(自家語:자기 스스로가 만든 말)이므로 당연히 이 시를 통해 처음으로 만나게 된 말이다. 명색이 중문학이 전공인 역자 역시 자가어 만들기가 수월하지 않은데, 중문학이나 한문학과는 거리가 먼 시인이 한자로 된 자가어를 만들었다는 것은 뉴스거리가 되기에 충분할 듯하다. 세월이 가면 언젠가 이 시로 인하여 애평선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등재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지평선은 땅과 하늘이, 수평선은 물과 하늘이 만나서 이루어진 선이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시인이 만들어낸 이 “애평선”은 사랑과 하늘이 만나서 이루어진 선이 아니라, 나의 그리움과 너의 그리움, 곧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만나 이루어진 선이다. 나는 나고 너는 너지만, 우리는 또 ‘우리’로 맞닿아 있어 하나처럼 보이는 사랑의 감정 상태, 그것이 바로 시인이 의도한 애평선의 뜻이 아닐까? 이 시에 대한 칼럼을 강하게 권했던 역자의 벗 하나는, 애평선이 매우 야한 광경을 떠오르게 할 수도 있다고 했으니, 관점에 따라 애평선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흐린 날에는 먼 곳이 잘 안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시인은 애평선이 “흐린 날, / 더 멀리 보인다”고 하였다. 흐리다고 하면 우리는 보통 날씨만 떠올리기 쉬우나 마음자리가 흐려도 “흐린 날”이 된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흐린 날이라면,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어 눈물이 나기도 할, 그리움이 짙은 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날은 멀리 있는-만나지 못하므로- 님의 모습이 더욱 또렷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더 멀리” 보이는 것이 된다. 또 다른 각도에서 흐린 날 더 멀리 보일 수 있는 것은, 얼굴위의 눈이 아니라 마음속의 눈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눈으로 보자면 고작 5km 정도에 불과한 지평선이나 수평선까지의 거리도 멀게만 여겨지지만, 마음으로 보자면 천 리 길도 겨우 지척(咫尺)으로 여겨질 따름이다.
시인이 끌고 온 지평선과 수평선은 날이 맑은 날 잘 보이고, 애평선은 마음이 흐린 날 잘 보인다. 지평선과 수평선은 대자연이 만들고, 애평선은 사람이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겨우 하나의 점으로 존재한다 하여도, 둘만의 애평선 하나 그어두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지상의 나날 하루하루가 어느 시인이 예찬하였던 ‘소풍’과 같지 않을까 싶다.
4연 8행으로 된 원시를 역자는 4구의 칠언고시로 한역하였다. 1구부터 3구까지 한역시의 끝 글자가 ‘線(선)’으로 마무리 되는 관계로 4구에도 동일한 운목(韻目)의 글자로 압운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의 압운자는 ‘線(선)’과 ‘見(견)’으로 보면 된다.
※ 다음 주는 추석인 관계로 칼럼을 한번 쉬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푸근한 명절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21. 9. 14.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양광모
땅과 하늘이 만나
지평선을 만들고
물과 하늘이 만나
수평선을 만들고
나의 그리움과 너의 그리움이 만나
애평선을 만든다
흐린 날,
더 멀리 보인다
[태헌의 한역]
愛平線(애평선)
地天逢作地平線(지천봉작지평선)
水天逢作水平線(수천봉작수평선)
爾我思作愛平線(이아사작애평선)
陰日遠處分明見(음일원처분명견)
[주석]
* 愛平線(애평선) : 애평선. 시인의 자가어(自家語:자기 스스로가 만든 말)를 한자어로 적은 것이다.
地天(지천) : 땅과 하늘. / 逢(봉) : 만나다. / 作(작) : ~을 만들다. / 地平線(지평선) : 지평선.
水天(수천) : <바닷>물과 하늘. / 水平線(수평선) : 수평선.
爾我思(이아사) : 역자가 ‘爾我之思(이아지사)’, 곧 ‘너와 나의 그리움’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陰日(음일) : 흐린 날. / 遠處(원처) : 먼 곳. / 分明(분명) : 또렷하다, 또렷하게. / 見(견) : ~이 보이다. ※ 이 구절의 “遠處” 이하는 원시의 “더 멀리 보인다”를 살짝 고쳐 한문식으로 옮겨본 것이다.
[한역의 직역]
애평선
땅과 하늘이 만나 지평선을 만들고
물과 하늘이 만나 수평선을 만들고
너와 나의 그리움이 애평선을 만든다
흐린 날에 먼 곳이 또렷하게 보인다
[한역 노트]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에 말은 알아도 뜻은 몰랐던 단어가 제법 있었을 것이다. 역자의 경우는 어른들이 이따금 사용하던 욕설이나 어른들이 부르던 노래에 특히 이런 말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모르는 게 워낙 많아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어쩌다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혼나기 일쑤였던 터라, 뜻도 모른 채 익혀 따라 쓰고 따라 부르고는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호로자식’이니 ‘유정천리’니 ‘무정천리’니 하는 말뜻을 알 턱이 없었던 역자의 어린 시절은, 누가 떠밀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까마득한 세월 속에 묻혀버렸다.
“지평선”이나 “수평선”은 역자가 한번 본 적도 없이, 그러니까 뜻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이미 이 말은 알고 있었더랬다. 지평선이라는 말은 고모와 큰누나가 자주 불러서 귀에 익숙해졌던 유행가인 <지평선은 말이 없다>를 통해 알게 되었고, 수평선이라는 말은 그즈음 여름방학이 되면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왔던 <진주조개잡이>라는 외국곡의 노랫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그 당시에도 들었던, 빌리본 악단이 연주한 <진주조개잡이>는 지금도 역자가 즐겨 듣는 연주곡 가운데 하나이다.]
애평선은 시인의 자가어(自家語:자기 스스로가 만든 말)이므로 당연히 이 시를 통해 처음으로 만나게 된 말이다. 명색이 중문학이 전공인 역자 역시 자가어 만들기가 수월하지 않은데, 중문학이나 한문학과는 거리가 먼 시인이 한자로 된 자가어를 만들었다는 것은 뉴스거리가 되기에 충분할 듯하다. 세월이 가면 언젠가 이 시로 인하여 애평선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등재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지평선은 땅과 하늘이, 수평선은 물과 하늘이 만나서 이루어진 선이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시인이 만들어낸 이 “애평선”은 사랑과 하늘이 만나서 이루어진 선이 아니라, 나의 그리움과 너의 그리움, 곧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만나 이루어진 선이다. 나는 나고 너는 너지만, 우리는 또 ‘우리’로 맞닿아 있어 하나처럼 보이는 사랑의 감정 상태, 그것이 바로 시인이 의도한 애평선의 뜻이 아닐까? 이 시에 대한 칼럼을 강하게 권했던 역자의 벗 하나는, 애평선이 매우 야한 광경을 떠오르게 할 수도 있다고 했으니, 관점에 따라 애평선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흐린 날에는 먼 곳이 잘 안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시인은 애평선이 “흐린 날, / 더 멀리 보인다”고 하였다. 흐리다고 하면 우리는 보통 날씨만 떠올리기 쉬우나 마음자리가 흐려도 “흐린 날”이 된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흐린 날이라면,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어 눈물이 나기도 할, 그리움이 짙은 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날은 멀리 있는-만나지 못하므로- 님의 모습이 더욱 또렷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더 멀리” 보이는 것이 된다. 또 다른 각도에서 흐린 날 더 멀리 보일 수 있는 것은, 얼굴위의 눈이 아니라 마음속의 눈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눈으로 보자면 고작 5km 정도에 불과한 지평선이나 수평선까지의 거리도 멀게만 여겨지지만, 마음으로 보자면 천 리 길도 겨우 지척(咫尺)으로 여겨질 따름이다.
시인이 끌고 온 지평선과 수평선은 날이 맑은 날 잘 보이고, 애평선은 마음이 흐린 날 잘 보인다. 지평선과 수평선은 대자연이 만들고, 애평선은 사람이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겨우 하나의 점으로 존재한다 하여도, 둘만의 애평선 하나 그어두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지상의 나날 하루하루가 어느 시인이 예찬하였던 ‘소풍’과 같지 않을까 싶다.
4연 8행으로 된 원시를 역자는 4구의 칠언고시로 한역하였다. 1구부터 3구까지 한역시의 끝 글자가 ‘線(선)’으로 마무리 되는 관계로 4구에도 동일한 운목(韻目)의 글자로 압운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의 압운자는 ‘線(선)’과 ‘見(견)’으로 보면 된다.
※ 다음 주는 추석인 관계로 칼럼을 한번 쉬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푸근한 명절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21. 9. 14.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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