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마치고 '야간 투잡' 뛰는 직원 해고해도 되나
최근 '투잡'을 뛰는 직장인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회사가 이를 허용해야 하는지를 놓고 법적 분쟁도 확산되는 모양새다. 지난 2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알바콜과 함께 직장인 회원 69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선 20.4%가 ‘코로나 이후 직장을 다니면서 부업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플랫폼 업체의 증가,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인한 소득 감소 등이 '투잡러'가 크게 급증한 원인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사업주들은 이런 추세가 달갑지 않다.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고, 업무상 재해 발생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근로자들은 코로나19 사태 속에 직장이 나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고 느끼는데다 퇴근 이후 사생활에까지 사업주가 개입할 권리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직장인이 업무 시간이 끝난 후 다른 야간 겸업을 하면서, 회사의 겸직 중단 요청을 듣지 않았다면 회사가 그 근로자와 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 "회사 겸직 중단 요청 무시한 근로자와 계약해지는 정당"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유환우)는 지난 8월 20일 신한카드 주식회사 계약직 직원이었던 A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청구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노동위원회와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 A는 1993년부터 이 회사를 다니다 2018년 희망퇴직을 하게 됐다. 이후 2018년 10월 회사 재취업 프로그램에 따라 시간제 관리지원 계약직으로 재입사해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근무조건은 주 14시간 근로에 연봉 3000만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A는 한 지자체와 공무직 경비 근로계약을 맺고 2019년 1월 1일부터 3조 2교대 경비원으로 근무를 시작하면서 '겸직'을 시작했다. 경비일을 시작하고 나서 열흘이 지나서 A는 회사에 겸직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회사는 "경비원 업무가 교대제 근무라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면 건강 악화나 사고 발생 위험성이 증가한다"며 불가를 통보했다. 그럼에도 A는 회사와의 면담 자리에서 "노무사와 논의해 대응하겠다"고 답변하며 투잡 강행 의지를 보였다.

회사도 강경대응에 나섰다. 회사 측은 "겸직을 금지하고 있는 사규에 따라 겸직 불가를 통보했으므로 1개월 이내 겸직업무가 중단돼야 한다"며 "겸직 사업장에서 퇴직했음을 증명하는 건강보험 자격상실 확인서 등 객관적인 서류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A가 이를 거부하자 회사는 결국 "고용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A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지만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신청을 기각하자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회사는 A가 계약직이었던 점을 들어 기간제 계약의 만료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희망퇴직 프로그램 자료를 보면 '근로계약이 희망퇴직 이후 정년까지 잔여기간의 1/2까지 갱신될 수 있다'고 명시돼 있고 실제로 상당수 직원이 근로계약을 갱신한 점을 보면 정당한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라고 판단했다. A에게 정당한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므로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을 '해고'라고 본 것이다.

결국 회사가 A를 '해고'한 데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근로자를 해고하기 위해서는 회사에 징계 관련 규정이 있는 것에 더해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해야 한다.

A는 "근무시간 내 겸직과 달리 근무시간 외 겸직은 승인신청이나 허가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근무시간 내 겸직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A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무시간 외 근로라고 해도 회사의 업무에 부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금지된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회사 운영규칙에 따르면 계약직 직원이 근무시간 내에 겸직업무에 종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며 "근무시간 외에 겸직업무를 하는 것은 △업무에 부당한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거나 △회사의 손익에 상반되는 이익을 취할 우려가 있거나 △회사의 불명예가 될 수 있는 경우 금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A가 업무를 마치고 곧바로 겸직 사업장에서 야간 경비 근무를 하거나, 반대로 야간 경비 근무를 하고 회사에 출근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데, 이렇게 되면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고 무리한 근로로 건강이 악화되거나 업무를 수행하면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A는 "다른 직원은 겸직을 하고 있다"며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해당 직원은 고정 주간근무에 해당하고 근무일에 겸직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겸직이 승인된 것"이라며 일축했다.

◆부업이 주업에 부정적 영향 끼치느냐가 관건

기본적으로 근로시간 내에 겸직을 하는 것은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퇴근 이후 개인적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근로자의 자유다. 주말이나 퇴근 후 비정기적으로 배달 알바를 뛰는 경우는 '겸직'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자신의 일상을 기록에 남기는 '브이로그'나 '유튜브' 같은 것도 사생활의 연장이라, 직장 비밀을 유출하거나 재미를 위해 회사 명예를 크게 실추시키는 정도가 아니라면 문제 삼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무런 제한 없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업무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경우가 문제다.

기본적으로 법원도 퇴근 후 시간은 사생활에 속하므로 겸직을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게 법원의 입장이다. 서울행정법원(2001.7.24. 선고 2001구7465 판결)은 제조업체 근로자가 다방 영업을 하다 징계를 받은 사안에서 “기업질서나 노무제공에 지장이 없는 겸직까지 전면적·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겸직 때문에 지각과 조퇴횟수가 많고 근태관리에 비협조적이었다면 징계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본업에 얼마만큼 영향을 주느냐가 징계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본업에 영향을 줬다고 징계가 무조건 정당하지도 않다. 특히 해고까지 가는 경우에는 사회 통념상 더 이상 근로계약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수준으로 근로자가 성실의무 등을 위반한 경우여야 한다.

판례를 살펴 보면 △기자가 신생 경쟁매체를 설립하는 데 적극 가담한다던가 △직원이 꽃집을 운영하면서 회사 직무나 직위를 부당하게 이용한 경우 등엔 당연히 해고 사유가 됐다.
하지만 △자원봉사센터 직원이 외부 대학에 출강을 나갔지만 미리 승인 받은 경우 △근로자가 대통령 선거 당시 선거대책위 활동을 했다고 해도 회사에 특별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해고할 수 없다고 본 판결도 있다.

결국 △회사에 겸직 시 징계 규정이 존재하는지 △부업이 주업에 영향을 끼쳤는지 △징계를 할 정도의 사유가 되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다. 회사에 '겸직 시 해고' 규정이 있다고 무조건 해고되는 것도 아니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인사관리 부서장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사업장에서 업무상 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사용주를 형사처벌하는 상황에서 투잡을 뛰는 직원들이 사고를 내면 기업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겸직을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생산직 근로자를 하면서 유튜브도 함께 하고 있는 한 근로자는 "사생활까지 회사가 간섭할 수 있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했다.

대부분의 투잡 근로자들은 쉽게 일을 찾을 수 있는 대리운전·택배기사·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한 노무사는 "주52시간제 근로는 근로자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그 휴식권을 근로자들이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별도로 힘을 들여서 다른 일을 찾게 만드는 것이 옳은 정책 방향인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